말이 노인이지 60~70세 청춘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대부분 일이 없다. 정년이 연장돼도 65세가 최대치다. 친구·동료와 여유를 즐기는 것도 고작해야 6개월이다. 가족과 새로운 관계 정립도 쉽지 않다. 이렇게 30년을 지내기 일쑤다. 은퇴 노인이면 누구나 직면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원인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다.
갈등 계기는 은퇴 탓이다. 일과의 이별이다. 일거리가 없어지면서 갈등이 부각된다. 아쉬운 건 고령자에게 맞는 일자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답답하게 살 수만은 없다.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현역 때 테두리를 벗어나야 한다. 인생 2막이란 표현처럼 확연히 구분되는 도전정신이 필수다.
이런 점에서 각광 받는 노년의 새로운 인생살이 중 하나가 ‘6차산업’이다. 요즘 일본의 베이비부머에게 희망적인 도전으로 다가선 화두다. 한 마디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 풍경에 녹아 드는 과감한 선택이다. 외롭고 고달픈 잉여인간의 삶 대신 설레고 열정이 넘치는 생산 주체로서 인생 2막을 여는 시도다.
좀 이르면 중년일 때 떠나는 귀농 열기와 비슷하다. 물론 느닷없진 않다. 귀농한 선배 세대는 예전에도 많았다. 다른 점은 귀농 목적이다. 70~80대는 단순히 노후의 생활무대로 자연을 택했다. 베이비부머와 이후 세대는 농촌에서의 새로운 가치생산을 지향한다. 시골에서 평생직업을 탐색하는 것이다.
6차 산업의 개념은 간단하다. 농업에 부가가치를 얹어 소득 증대를 꾀하는 개념이다. 일본에서도 농업은 사양산업에 속한다. 급속한 현대화·도시화로 농촌지역의 활기를 찾기 어렵다. 늙은이만 넘쳐나고 농지는 방치됐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6차 산업은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다. 6차 산업은 정체된 농업·농촌의 부활 프로젝트다.
1차(단순 생산)와 2차(가공·제조)에 3차(판매·관광) 산업까지 확대했다. 6차란 ‘1×2×3’에서 나왔다. 단순 합계도 6차지만 곱해도 6차다.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융합 개념을 강조해 플러스 알파(+α)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곱셈식으로 이해된다. ‘생산→가공→판매’의 일괄 시스템이라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다. 1990년대 중반에 나온 개념이다. 지금은 일본 농업의 미래로 불린다.
농업·농촌 부활 겸 노후 대비 프로젝트
6차 산업 붐의 계기는 베이비부머의 대규모 은퇴다. 1947~49년생의 800만 1차 베이비부머가 60~65세에 도달한 2000년대 중반부터다. 한창 일할 베이비부머의 퇴직은 국가적 충격으로 비화됐다. 그럼에도 장기 침체와 비용 절감 분위기 탓에 일자리가 부족해지자 누구도 찾지 않는 잉여인간으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생존 위험이 커졌다. 6차 산업은 해결책의 하나로 떠올랐다.
무소득 베이비부머에게 고비용의 도시생활은 부담스럽다. 30~40년 회사에만 얽매였으니 떠나고도 싶을 것이다. 이때 ‘소득+변신’의 카드가 귀농생활이다. 문제는 학습효과다. 무작정 떠나봤자 갈등만 키운 채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전원생활 포기 이후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는 ‘역귀성’이 줄을 이었다. 시골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끌 뾰족한 방안이 필요했다. 이런 와중에 일부 지역에서 확산된 6차 산업의 성공 모델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일본 언론도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특히 방송사들은 주기적으로 6차 산업의 가능성과 성공 사례를 내보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범위를 ‘농업’으로 확장하면 주목도는 훨씬 높아진다. 개별 지자체는 한층 적극적이다. 농촌에선 6차 산업 붐 이후 전담 지원팀이 다각적으로 설치됐다. 귀농 인구의 유입·유도를 통해 농업 부활을 연계하려는 전략이다.
일부는 성공 사례 발굴에 사활을 건다. 농촌의 활력을 지키려는 교두보란 인식에서다. 6차 산업의 중추 세력 후보군인 베이비부버를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경합도 뜨겁다. 빈집 소개부터 자금 지원까지 우호적이다. 컨설팅 업계를 필두로 성공적인 시골 안착을 위한 정보·노하우를 제공하는 세미나도 일상적이다.
가뜩이나 도농 격차에 민감한 일본 정부도 나섰다. 6차 산업이 지방 부활, 농업 사수, 고용 확보, 은퇴 해법의 1석4조 효과를 내서다. 국가적 관심사로 떠오른 배경이다. 덕분에 2010년 6차 산업 규모는 1조4400억엔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2011년 ‘6차 산업화법’까지 제정했다. 보조금에 이어 세제 혜택과 인재 육성제도에도 손을 내밀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아베 정부가 미국 주도의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참여하면 6차 산업은 더욱 절실한 정부 과제가 된다. 시장 개방으로 농촌이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하려면 경쟁력을 키울 방안을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 이때 단순 생산의 기존 모델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저가 수입 농산물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신토불이를 내세운 6차 산업의 부가가치를 키우는게 상책이다.
파급 효과는 광범위하다. 중간 유통업자를 빼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 덤을 얹어준다는 계산이다. 당장 농촌 지역의 부활 몸짓을 볼 수 있다. 고군분투 중인 농가로선 추가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뿐 아니라 경영 능력을 강화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농촌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여성·노인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실제 고용 창출에 긍정적 신호가 확인된다. 복합 부가가치가 혼재된 6차 산업화로 농업회사가 증가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서다. 성공 사례에 고무된 새로운 창업 흐름도 보인다.
농촌 인력의 탈출 러시도 막을 수 있다. 고무적인 건 베이비부머의 상생효과다. 퇴직 세대의 직장 경험과 전문성이 마케팅 문외한인 시골 농부와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냈다. 도농 합작품이다. 안착 확률은 높다. 전후 출생의 베이비부머라면 시골 생활에 익숙하다. 대부분 시골 출생으로 고향 회귀의 바람이 크다. 친인척 덕분에 농촌 사정에도 밝다.
성공 사례는 농촌권역이 대부분인 홋카이도에 많다. 그래서 ‘홋카이도 농원 모델’이라고도 부른다. 홋카이도 농원 모델의 핵심은 ‘수동적 하청 구조→자발적 부가가치’로의 방향 선회로 요약된다. 거대 자본의 하청 구조에서 벗어나 농작물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얹어 기간산업화로 육성한 게 주효했다.
선두주자는 ‘진나이홈21’이다. 이 농업법인은 여름 과일인 망고를 겨울에 수확한다. 가격은 개당 7500엔으로 일본 본토 망고보다 2배 이상 된다. 뿐만 아니다. 추위를 이용한 망고의 역발상 재배전략이 알려지면서 영농학교까지 나왔다. 덕분에 농장 인근에 인구도 늘었다. 3년 과정에 본토 지원자가 몰려들자 동네가 젊어졌다.
망고 역발상 재배로 성공
홋카이도의 ‘하나바타케 목장’도 관심 대상이다. 유명 탤런트가 농장 우유로 카라멜을 파는데, 없어서 못 파는 최고 히트작 중 하나다. 기존 유통망을 깨고 생산·가공·상품화로 점포·인터넷 등에서 직판하는 모델이다. 2007년 이후엔 복제품이 범람할 정도로 인기다. 가족경영에서 출발한 교토의 농업생산법인 ‘고토교토’는 경영의 안정을 위해 직판·가공판매에 진출해 파만으로 연간 6억엔 매출을 올린다.
365일 재배시스템을 갖춰 0.4㏊였던 재배면적이 25㏊로 늘었다. 이런 변신은 라면 가게와 직판계약을 한 덕이 컸다. 특히 파를 절단·납품할 때 계절별로 굵기를 달리해 인기를 얻었다. 여세를 몰아 수퍼에도 납품했다. 이밖에 동네마다 한두 곳은 있을 정도로 성공 사례가 확산됐다. 특히 관광산업(지역브랜드)으로도 연결됐다. 고용 유발 효과가 더욱 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