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 홍콩에 거주하면서 일요일마다 이상한 풍경을 봤다. 홍콩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사 도우미들이 홍콩시내 거리로 나와 삼삼오오 모여 휴일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일요일 홍콩 도심은 이 필리핀 가사 도우미들의 세상이다. 놀랍게도 모국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홍콩에서 도우미 일을 하는 필리핀 여성은 10만명이 넘는다. 더욱 놀라운 건 이들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아는 고학력 소지자다.
1960~70년대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내로라하는 부국이었다.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살던 나라였고 우리나라의 롤 모델이었다.
기후가 따뜻하고 관광자원도 풍부해 많은 나라가 부러워했다. 당시 필리핀은 한국에 원조물자를 보내줬다. 서울 장충체육관을 지어준 곳도 필리핀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고, 필리핀은 40위권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자원과 자본이 없어 인력을 수출해 외화벌이를 한 적이 있다. 1963년 한국에서 5000명의 광부와 2000명의 간호사가 서독으로 ‘수출’돼 외화를 벌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중에 독일을 방문했을 때 머나먼 타국에서 고생하는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붙잡고 눈물을 흘린 얘기는 우리나라의 아픈 기억이자 자랑스런 산업화 세대의 희생이요, 진취력이다. 베트남전 파병이나 중동건설 붐 때도 우리 국민의 피땀으로 외화를 벌었다. 대한민국의 아프지만 자랑스런 역사다.
이러한 국민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시절을 겪으면서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며 고도 성장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대한민국은 쉼없이 성장했다.
국내 기업들은 이제 비즈니스 세계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아 전진해 왔다. 자원이 부족하고 리스크가 큰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과감히 투자하고 수출에 나서면서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빠른 결단력과 혁신을 통해 변신을 거듭하며 오늘날의 경제 강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올 한해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저성장으로 인한 어려움, 더불어 최근의 안보문제까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국민이 체감하는 위기 의식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게 ‘불확실의 시대’에서 불을 밝혀주는 등대 역할을 기대한다.
경제성장에 힘쓰면서도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행복한 시대를 열어주는 것.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이다. 이제는 아시아 최고를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를 목표로 대한민국을 이끄는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다시 한번 산업화 세대의 희생에 감사하며 새로운 정부의 슬기로운 리더십으로 현 위기를 잘 극복해주길 바란다. 우리 국민 역시 어려운 상황일수록 대한민국 특유의 저력을 발휘해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전 세계를 향해 도전했으면 한다. 지금의 시대적 상황은 준비된 자에게는 진취적인 도전이며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0년간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승승장구 코리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