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Business Book - 우리는 생각과 행동의 주인이 아니다

도일 남건욱 2013. 3. 29. 14:46

Business Book - 우리는 생각과 행동의 주인이 아니다

『자유의지는 없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이따금 통념과 완전히 다른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고정관념을 흔들 수 있거나, 자신의 생각을 더 굳건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자유의지는 없다』는 책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영어 제목은 그냥 『Free Will』인데 말이다.

책에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허친스를 잇는 세계적 석학 샘 해리스의 문제작’이란 문구가 독자를 유혹한다. 제목에 낚인 필자는 일단 책 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를 읽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표적 논객이자 신경과학자로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종교적 도그마의 지적 설계론을 비판한 주요 인물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UCLA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정도에서 벌써 저자가 어떤 인물인지 그림이 그려진다. ‘프로젝트 리즌’의 공동 창립자로서 과학 지식과 비종교적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는데 심혈을 쏟는다는 소개에서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분명해진다.

자유의지는 우리의 도덕·법률·종교·사업·삶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결정적인 주춧돌이다. 흔히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건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없다는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우리를 떠받든 믿음·제도·관습 등 거의 모든 게 허물어진다.

그가 말하는 자유의지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한다. 하나는 우리 모두 자신이 원한다면 이제껏 했던 것과 달리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원천은 외부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명확한 진실을 두고 공부를 많이 한 저자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책의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내용이 등장하지만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몇 문장이 이 책이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다.

‘자유의지란 단연코 환상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게 아니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유의지는 개념적으로 일관성 있게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환상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다.’

작가의 이 같은 말을 접한 사람들 가운데는 내심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접한 순간 “그러면 내가 당신이 쓴 이 책을 스스로 읽기로 결심한 게 자유의지가 아니고 무엇이요?”라고 묻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작가는 대단히 위험한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당신의 행위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면 그 원인에 대해 당신이 책임이 없는 한, 당신은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우리의 의지는 앞선 원인에 의해 결정되므로 우리는 그 원인에 책임이 없거나, 그 원인은 우연의 산물이므로 우리는 그것에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지조차 무의식적 기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또한 자유의지라는 관념은 일종의 감지된 경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철학 문헌들이 접근하는 세 가지 이론(결정론·자유론·양립가능론)을 설명한다. 결정론과 자유론은 만약 우리의 행동이 온전히 배경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면 자유의지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따라서 오늘날 자유의지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유일하게 존중 받는 이론은 양립 가능론이다.

작가는 양립가능론의 대표 사례로 친구인 대니얼 데닛을 든다. 그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비록 무의식적 원인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너무나 당연한데 저자는 사‘ 람들은 자기 사고와 행동의 주인이라고 느끼거나 그렇게 간주하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설명과 아울러 ‘우리가 의식적으로 의도하는 모든 것이 뇌에서 일어난 사건에 의해 초래되는데, 정작 그 사건들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고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을 계속 확장하다 보면 우리는 ‘죄’라는 종교적 개념과 만난다. 그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결론 장에서 저자는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유의지라는 것은 도저히 성립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그는 우리 자신은 스스로 자유의지를 갖고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생각도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을 되짚는 내내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본 어느 일본 사장의 말이 맴돈다. ‘사장은 눈이 오는 것조차 책임을 져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이 책은 읽는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 삶의 굳건한 토대에 해당하는 자유의지에 대한 이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시련을 겪고 난 다음에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유명한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건 자유의지의 발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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