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캐나다의 젊은이 여섯 명이 눈보라가 치는 산허리에 텐트를 쳤다. 이윽고 토론이 시작됐다. 그들은 험난한 캐나다의 산을 탐험하기엔 산악장비에 문제가 많고 지나치게 비싸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자.” 그렇게 탄생한 것이 MEC(Mountain Equipment Co-op : 산악장비협동조합)다. 대학 산악부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MEC는 직원 1500명, 조합원 330만명의 대형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연 매출은 3000억원이 넘는다. 캐나다 전역에 15개 매장이 있고, 13개국에 71개의 공장을 세웠다.
MEC의 성공 비결은 뭘까. 협동조합 천국으로 불리는 캐나다 퀘백주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한 요인일뿐이다. MEC는 질 좋은 등산장비를 값싸게 공급했다. 조합원에겐 최소한의 이윤만 붙여 팔았다. 비조합원이 MEC 물품을 구입하려면 조합에 가입하도록 했다. 가입 출자금은 40년째 5달러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겨냥하지 않았다. 그들(조합원)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들었다. 조합원의 니즈를 충족한 것이다. 유행을 좇지 않고, 장비 무게를 줄이거나 신체와 밀착하는 외투를 개발했다. 사회적 투자도 많이 한다. 총 매출액의 0.5%는 환경 단체에 기부한다. 지역 사회 봉사는 물론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해외에는 MEC처럼 대기업 부럽지 않은 협동조합이 많다.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라보은행, 금융·유통·교육·공업 분야에 240여개 자회사를 둔 스페인 몬드라곤, 오렌지의 대명사 썬키스트, 세계적인 통신사 AP,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스위스 미그로가 모두 협동조합이다. 한국에도 이런 협동조합이 탄생할까. 협동이라는 깃발 아래 뭉친 새내기 협동조합을 취재했다. 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왜 손을 맞잡았을까.
인천햇빛발전협동조합 - 태양전기 팔아 조합원에 이익 배당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깨닫는 계기가 됐죠. 사실 전기는 만드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햇빛발전소의 진짜 목적은 시민이 직접 힘을 모아 전기를 만드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자원의 소중함을 느끼고 절약하는 습관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심형진 인천햇빛발전협동조합(이하 인천햇빛발전) 이사장은 조합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 별로 햇빛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경기 시흥에서는 운영에 들어갔고, 준비 중인 지자체도 10곳이 넘는다. 인천햇빛발전 역시 그 중 하나다.
인천의제21·인천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주축이 돼 1년 간 준비 작업을 거쳐 올해 1월 창립총회를 열었다. 현재 450여명의 조합원과 1억원 가량의 출자금을 모았다. 송영길 인천시장도 취지에 공감해 조합원이 됐다. 현재 송도 LNG 기지 인근 스포츠공원 옥상을 후보지로 골라 설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6월쯤이면 첫 번째 햇빛발전소를 완공할 것으로 보인다.
운영 방식은 간단하다.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햇빛발전소를 짓고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파는 것이다. 수익금은 조합 운영비와 적립에 쓰고, 잉여금은 조합원에 배당한다. 적립금은 에너지 빈곤층 지원과 장학금 지원으로 지역사회에 환원한다. 인천햇빛 발전이 계획 중인 햇빛발전소는 200㎾급이다.
6월부터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올해 5880만원 가량의 수익을 낼 전망이다. 심 이사장은 “배당 시기와 규모는 총회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연 평균 4.5% 정도로 예상한다”면서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발전소 개수와 용량을 늘리면 수익률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햇빛발전은 2015년까지 발전용량을 2㎿까지 늘릴 계획이다.
환경친화적인 사업 아이템에 수익까지 낼 수 있다고 하니 관심을 갖는 시민이 점차 늘었다. 인천시 역시 적극 돕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인천햇빛발전이 성공적인 협동조합 모델로 자리 잡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단 비싼 임대료가 걱정이다. 햇빛발전소는 대부분 도심 속 공공기관이나 학교의 옥상에 짓는다. 공공기관이 싸게 임대해줘도 될 법하지만 현행법이 발목을 잡는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르면 공공기관 부지를 임대할 때 부지 평가액의 5%를 임대료로 내야 한다. 당연히 도심에 있을수록, 땅값이 비쌀수록 임대료가 오른다. 인천햇빛발전이 수많은 도심 건물을 두고 외곽인 송도에 후보지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햇빛발전소 건설이 활발한 서울에서는 임대료를 내고 나면 도무지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서울시가 최근 조례를 개정해 태양광발전소를 지으면 임대료율을 1%로 낮추도록 했지만 워낙 땅값이 비싸니 1%라도 햇빛발전 사업자에게는 부담이 크다. 심 이사장은 “부지나 건물 가격이 아닌 발전시설 용량을 기준으로 임대료를 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설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심 이사장은 “200㎾급 햇빛발전소를 지으려면 6억원 가량 드는데 계통접속비 등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면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계통접속이란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기존 상업용 송전선과 연결해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기존 계통선로에 송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신주나 변압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발전 시설을 설치하면 이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심이사장은 “임대료나 설치비 부담을 줄이면 햇빛발전은 시민의 안전한 투자처로 각광 받을 수 있다”며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완주한우협동조합 - 직판장 세워 농가·소비자 윈윈3월 21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고산전통시장에 모인 100여명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대부분 완주한우협동조합 조합원인 이들은 조합이 만든 한우판매장 착공식을 자축하기 위해 모였다.
조영호 완주한우협동조합 이사장은 “한우판매장이 완공되면 생산 농가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게 된다”며 “그간 유통 과정에서 40% 넘게 값이 뛰는 걸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이렇게 힘을 합해 첫 삽을 뜨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조합이 만드는 한우판매장은 792㎡(240평) 규모다. 올해 9월에 문을 연다. 이 판매장에서 한우를 현재 시세보다 20~30% 가량 저렴하게 판매할 계획이다. 완주한우협동조합은 한우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를 회복하고, 한우 생산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지난해 12월 3일 설립됐다. 완주군 3개면(고산·비봉·화산면) 한우 생산 농가들이 주축이 돼 현재까지 조합원 99명이 모였다. 출자총액은 6억원에 달한다. 전북도 내 최대 규모다.
조합 측은 출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애초 목표 금액(5억원)을 훌쩍 넘겼다. 조영호 이사장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사료 값 폭등으로 경영난을 겪는 한우 농가들이 감당하기에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1차 출자자 설명회만으로 4억5000만원이 모였다”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힘을 합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협동조합을 순조롭게 설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조합의 주요 사업은 한우 정육점과 식당을 여는 것이다. 조 이사장은 “직접 유통할 수 있는 판매장이 생기면 농가는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돼 좋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한우를 구입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완주한우협동조합은 올해 정육점과 식당 매출 목표를 각각 월 2억원, 5000만원으로 잡았다. 매월 27두 도축이 목표다. 매년 10두씩 늘려나갈 계획이다.
조합원들은 출자액 규모에 따라 1년에 최소 한 마리 이상 출하할 수 있다. 이때 책정되는 가격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공판장인 충북 음성 축산물 공판장 기준가를 적용한다. 조 이사장은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경매가가 낮게 형성되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화~금요일 사이 평균 시세를 적용해 기준 가격을 결정한다”며 “좋은 한우를 생산하는 농가에는 별도의 인센티브를 부여해 품질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합에서는 한우 농가들에게 출하 등급에 따라 1++등급 40만원, 1+등급 30만원, 1등급 20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할 방침이다. 고기와 함께 판매하는 상추·마늘 같은 채소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사용해 채소 농가의 수익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사료사업도 추진 중이다. 지금도 한우협회 완주군지부와 사료회사가 계약해 사료 1포(25kg)당 1000원 정도 저렴하게 쓴다. 이렇게 생산비를 절감하는 것만으로도 월 8000만원의 이득을 보고 연간 1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조합 측 설명이다.
조 이사장은 “협동조합에서 사료사업을 직접 한다면 현재 농협에 주는 수수료를 낮출 수 있어 더욱 저렴하게 사료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료사업은 출자금이 최소 20억원 이상은 모여야 가능한데 이런 사업을 통해 우리 농가들의 사료가격이 내려간다면 다른 지역의 농가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호 이사장은 “유통·판매 등은 전적으로 조합이 담당하고, 농가는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유지하면서 질 좋은 한우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설립 목적”이라며 “무역장벽이 허물어지고,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이 시점에 우리 축산농가가 살 길은 힘을 모으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