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Ⅰ - 정부·기업 눈치 안 볼 운용기구 시급
국민연금 적립 기금은 이미 우리나라 1년 예산을 넘어섰다. 2015년에는 5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10년 후면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에 이어 세계 2위 연기금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덩치가 커진 만큼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해 기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에 속해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본부를, 수급을 전담하는 국민연금공단과 분리하자는 게 골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재원(경북 군위·의성·청송) 의원은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을 제출했다.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 책임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냈다.
김 의원은 “운용 기구를 독립시켜야 운용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고 그래야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고 후세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 의원을 3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불안감이 커지면서 국민연금을 아예 폐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오죽하면 이런 주장까지 나오겠나. 왜 이렇게 신뢰를 못 받고 있는지 정부·국민연금공단·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의 수입비(현재가치로 계산한 ‘국민연금수령액/납입 보험료’)가 2라면 사적연금의 수입비는 1에 불과하다. 그것도 인건비·운용비 등 7%의 비용을 차감하면 1에도 못 미친다. 폐지하면 민간 운용사만 혜택을 누리게 되고 노후 대비 등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납세자연맹은 순기능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 이런 극단적 주장보다는 어떻게 잘 운용할 것인지 지혜를 모으는게 현명하다.”
국가가 연금 지급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냈는데.
“지금 국민들 사이에서 내가 낸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팽배하다. 고갈되면 못 받는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지급액이 부족해지더라도 정부예산으로 보전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를 명문화하지 않은 탓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다. 그러니 국가가 지급을 책임진다는 내용을 법으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은 이미 근거법률로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 돈 내고 내가 받아가는 것인데 왜 불안감을 느껴야 하나?”
일찌감치 부과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커질수록 정치권은 이 돈을 사회간접자본(SOC)이나 복지에 쓰려는 시도를 하게 마련이다. 역대 정권에서 그랬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앞으로도 그런 유혹에 빠지는 일이 많을 것이다. ‘너 돈 좀 있으니까 나 사업 좀 하게 빌려줘’하는 식이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예산으로 할 일을 왜 국민연금 기금으로 하나? 국민연금은 세금이 아니다.
주로 이 돈을 활용하자는 측에서 부과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하는데 해외 연기금처럼 적립금이 고갈돼 부과방식으로 바꾸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적립금이 아직 정점에 다다르지 않았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은 곳간 털어먹듯 쓰려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잘 지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기금 운용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는데.
“국민연금 기금 운용은 국민연금 내 기금운용위원회가 총괄한다. 위원회는 정부 6명(위원장인 보건복지부장관 포함),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민간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다. 일단 비상설기구인데다 위원 대부분은 자산운용 전문가가 아닌 가입자 대표 자격으로 참여한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노후보장과 직결되는 국내 최대 공적연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비전문가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 위원 비중이 높아 관치 위험이 상존하는 것도 문제다.”
운용 기구를 분리하면 어떻게 달라지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 아닌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별도의 기구로 만들어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골자다. 일단 기금운용위원회는 상설기구로 만들어야 한다. 인원은 7명으로 축소하고 근로자 대표(2명), 사용자 대표(2명), 지역 가입자 대표(2명), 공익 대표(1명)가 민간의 경제·금융·투자 전문가를 추천해 구성한다.
위원 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재 자산운용 집행기구인 기금운용본부는 분리시켜 별도의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한다. 기금운용공사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법인격은 한국은행과 같은 무자본 특수법인(상업적 활동에 필요한 자본금이 없어, 추후 자본을 분산할 필요가 없는 법인)으로 해야 한다.”
기금운용공사 독립과 수익률 향상의 연관성은.
“운용 기구에 독립성과 전문성을 주고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자는 취지다.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수익률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이 불가능하다. 운용수익률을 1% 올리면 기금성장기 동안 보험료율 2%를 인하하거나, 기금 고갈시기를 9년 연장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수익률을 높이려면 주식 등 대체투자를 늘릴 수 밖에 없다. 보유 주식이 늘면 유동성 문제로 단순 매매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장기적인 투자 플랜이 필요한데 전문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외국계 연기금처럼 주주의견제시(Engagement)와 주주권 행사 등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기금운용의 안정성이 중요하니 채권 등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내외 국채로만 기금을 운용하면 운용 수익률이 현재보다 절반 이상 떨어진다. 무책임한 주장이다.”
주주권 강화 움직임에 대해 반발이 심하다.
“현재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지분율 7%)·현대자동차(6.75%) 등 주요 기업들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하나금융 지주 등에서는 최대 주주다. 투자했으면 기업이 경영을 잘 하고 있는지 주주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백기사 역할 정도만 했다. 기업이 잘하고 있으면 말할 것도 없지만 방만하게 경영하는 걸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
손해를 입지 않도록 잘 감시해야 수익률을 높일 수 있지 않겠나. 이에 대해 정부가 재벌 길들이기에 나선다는 이야기도 있고, 과거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 권력층이 개입한 사례를 들어 도저히 못 믿겠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이는 비합법적인 행위(인사 개입)를 계속하리라는 전제 하에 합법적인 행위(주주권)를 못하도록 하는 것일 뿐 합리적인 반론이 아니다. 기업들도 반대하고 나서는데 국민연금이 주식투자에 나선다고 할 때 대환영했던 그들이다.
주주권 행사는 주주의 당연한 권한인데 왜 못하게 하나? 그러면 또 정치적 중립성이 없으니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정부로부터 국민연금 운용 기구를 독립시키자는 것 아닌가. 당분간 기금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국민연금이 주주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엄청난 사고가 터질 수도 있다.”
해외 연기금과 비교해 수익률이 나쁘지 않다. 국민연금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물론 최근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수익률은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운영성과가 달라질 위험이 있다. 해외 연기금처럼 자산운용 전문가들로 이뤄진 의사결정기구와 별도의 운영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예를들어 기금운용본부장은 외풍에서 자유로워야 하지만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인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1999년 이후 5번이나 교체됐다. 노르웨이 연금펀드는 일관성 있는 자산운용을 위해 최고운용책임자를 14년 동안 딱 한 번 교체했다. 무엇이 더 안정성을 해치는 것인가?”
보험요율을 인상하거나 수급연령을 늦추려는 움직임이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세대 간 부의 이전 현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가급적 후세대에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나도 18살짜리 자녀가 있다. 아마 연금이 고갈될 시점부터 받기 시작할 텐데 왜 걱정이 없겠나? 다만 수급 안정을 위해 급격한 조정은 피해야 한다고 본다. 보험요율·수급연령 조정 외에도 급여 조정, 별도의 완충기금 조성 등의 여러 방안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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