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설립된 제너럴일렉트릭(GE)은 글로벌 종합가전 기업이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GE를 미국의 10대 기업으로 선정했다. 1878년에 미국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만든 작은 전기조명회사가 모태였지만 기술기반 사업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는 한편 금융업 등으로 영역을 넓혀 오늘에 이르렀다.
해외로도 사업을 확장한 GE가 중국 내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부터다. 2010년 초 제프리 이멜트 CEO는 “20년 전부터 모든 가전제품 생산기지를 중국과 멕시코로 옮겼지만 이득이 적었다”며 “차세대 제품은 미국에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파업도시’ 美 루이빌 ‘GE 도시’로 변신4년이 지난 지금 미국 각지엔 GE의 새로운 생산기지가 들어섰다. GE가 4년간 미국 내 4곳의 냉장고 생산기지 건설에 투자한 돈은 4억3200만 달러에 이른다. 폐쇄 예정이던 켄터키주 루이빌, 앨라배마주 디케이터,테네시주 셀머,일리노이주 블루밍턴의 공장에 친환경 냉장고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1980년대 이후 ‘파업 도시’로 악명을 떨친 루이빌은 ‘GE 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냉장고 외에도 온수기·세탁기·식기세척기 생산라인이 지난해부터 이전을 마쳤거나 이전 중이다. 1973년 2만3000여명이던 이 도시의 GE 근로자는 2011년 1800여명으로 급감했지만 지난해와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늘고 있다. GE는 지난해 7월 뉴욕주 스케넥터디에도 차세대 배터리 공장을 완공했다. 내년까지 미국에 총 10억 달러를 투자해 1300명을 고용한다.
‘중국의 생산비용 구조가 바뀌면서 미국으로 생산기지 이전이 본격화할 것이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이 지적대로 산업국가의 제조업 모국 U턴 현상은 세계적 흐름이다. 수십 년간 해외 아웃소싱 흐름을 이끈 GE의 변신은 미국 제조업의 U턴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GE처럼 1990년대 이후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대거 옮긴 일본·독일 제조 기업의 U턴도 줄을 잇는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은 그간 세계 기업의 생산기지 역할을 맡았다. 저임금의 풍부한 노동력과 사실상 고정된 환율 덕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제조 기업들에게 최적의 생산기지였다. 하지만 근래 중국의 생산비용이 꾸준히 늘면서 생산기지로서 이점이 줄었다. 주된 요인은 인건비 상승이다.
BCG는 보고서에서 ‘중국의 평균 임금은 10년간 급격히 증가했다’며 ‘2015년까지 연 18%씩 올라 시간당 4.5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국 내 최대 생산기지로 꼽히는 양쯔강 삼각주(상하이 등)의 2015년 평균 임금은 6.3달러로 평균치를 크게 상회 할 전망이다.
값싼 인건비로 해외 투자 자본을 유혹한 중국의 노동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더구나 비용은 늘었지만 생산성 향상은 기대만 못하다. BCG에 따르면 중국 근로자의 생산성은 2001~2010년 사이 연 평균 10%씩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앞으로 5년은 8.5% 증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평균 임금 증가율보다 낮은 수치다. 인건비에 더 투자하는 만큼의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렵단 뜻이다.
GE가 U턴을 결정한 것도 중국내 생산으로 돈을 벌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건비뿐 아니라 그간 저렴했던 운송비용이 중국 내 물가 상승으로 뛰었고, 위안화 절상으로 환율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전기·토지 등 인프라 구축과 재고 처리, 품질 관리에 드는 비용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항구 폐쇄와 자연 재해, 지적재산권 침해로 인한 분쟁에 드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중국이 더 이상 최적의 생산기지가 아니다. 또 미국산이 아닌 중국산인 데서 오는 품질 하락이 장기적으로 회사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팔 걷어붙인 오바마 美 대통령왜 다른 곳이 아닌 모국을 대안으로 봤을까. 답은 정부의 강력한 제조업 U턴 지원 정책에 있다. 미국 제조업은 그간 중국에 생산기지를 내주면서 정작 본국에선 일자리 감소, 공장 폐쇄 등으로 위기를 맞았다. 실업률을 낮추고 경기를 부양하는 데 사활을 건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제조업을 부흥시켜 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 전자제품·자동차 등 완성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이 복귀하면 소재·부품 업계도 살아나기 쉽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U턴 기업 지원을 위한 정책안을 내놨다. 수익의 20%에 대한 세금 공제, 3년간 연 20억 달러의 융자 기금 제공, 이전비의 최대 20% 현금 지원 등이다. 복귀 과정에서 쓴 설비 투자비에 대한 세제 혜택 기간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해외 자회사들에 대한 중과세 부가 방안을 추진해 U턴을 유도했다. 비용 절감 목적으로 해외에 나간 제조 기업으로선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다. GE는 냉장고 생산기지 4곳 U턴과 관련해 총 7800만 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는다.
미국 정보기술(IT) 업계 양대 산맥인 애플과 구글 역시 U턴 대열에 동참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해 12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은 미국에서 고용을 창출할 책임이 있다”며 “1억 달러를 들여 미국에 맥(Mac)컴퓨터 생산기지를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지난해까지 맥컴퓨터 대부분을 중국에서 만들었다. 이는 미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에 호응한 것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CEO와 만난 자리에서 “해외 제조 공정 일부를 본국으로 옮길 수 있느냐”고 협조를 요청했다. 구글도 연내 출시하는 안경형 착용 컴퓨터 ‘구글 글라스’를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다른 미국 기업의 U턴도 줄을 잇는다. 미국 빅3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는 본거지인 미국 디트로이트로 주요 생산시설을 옮겼다. 포드도 중국 등지의 생산기지를 2015년까지 미국 오하이오주와 미시간주로 옮긴다.
가전업체인 월풀은 중국 광저우에 있는 믹서기 생산라인을 2011년 9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로 이전했다. 자물쇠 제조사인 마스터록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제조업 U턴의 모범사례로 삼아 직접 밀워키 공장을 찾았다. 듀폰과 캐터필러 등도 U턴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이 U턴하면서 향후 10여년간 연간 생산량이 800억~1200억 달러어치 증가하고 220만~310만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