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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Tech - 후임자 부담 줄이려 정책 방향 급선회

도일 남건욱 2013. 7. 18. 13:25


Money Tech - 후임자 부담 줄이려 정책 방향 급선회
美 연준 의장 권력 이양기 자산시장 파장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볼커→그린스펀→버냉키로 바뀔 때마다 금융시장 출렁 버냉키 출구전략 발언은 조급증 탓일 수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와 자산시장이 빠르게 정상화된 건 각국 중앙은행의 공이 컸다. 금융위기 직후 시장의 기능은 마비됐고, 부채의 덫에 빠진 각국 정부는 긴축과 재정지출 확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이런 가운데 중앙은행이 일관되게 경기 부양적인 정책을 이어왔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가 있다.

대공황을 연구한 경제학자인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전공을 살려 제대로 실력을 발휘했다. 기준금리를 재빨리 제로 수준으로 낮췄고, 돈을 찍어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이후 양적완화의 범위는 모기지 채권으로 확대됐다. 주저주저하던 유럽중앙은행(ECB)이 연준의 길을 따랐다. 일본중앙은행(BOJ)은 미국 못지 않은 강력한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차기 의장 재닛 옐런 유력


최근 버냉키 연준 의장의 사임 가능성이 대두됐다. 버냉키가 자신의 거취 문제를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8월 잭슨홀 컨퍼런스 불참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임론이 힘을 얻었다. 

버냉키는 연준 의장에 취임한 2006년 이후 매년 잭슨홀 컨퍼런스의 기조 연설을 했다. 특히 2010년에는 이 자리에서 2차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임명권자인 오바마 대통령도 버냉키에 대해 “생각보다 오래 (연준의장 자리에) 머물렀다”고 언급해 연준 의장 교체를 기정사실화했다.

공식화한 건 전혀 없지만, 이미 후임 연준 의장 후보의 하마평까지 나온다. 그래서 ‘버냉키 이후’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후임자로는 재닛 옐런(현 연준 부의장), 래리 서머스(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티모시 가이트너(전 재무장관), 로저 퍼거슨(전 연준 부의장), 도널드 콘(전 연준 부의장), 스탠리 피셔(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등이 거론된다. 이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재닛 옐런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코노미스트를 상대로 후임 연준 의장을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질문에 답한 36명 중 29명이 옐렌을 버냉키 후임으로 점찍었다. 재닛 옐렌은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04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를 맡았다. 연준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줄곧 강하게 주장한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버냉키와 비슷한 성향으로 볼 수 있다.

재닛 옐런은 미 연준에서 가장 강한 톤의 부양 정책 실시를 주장하곤 했다. 그래서 ‘강성 비둘기파’라는 형용모순의 단어로 불린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제임스 토빈 교수에게 배웠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지언적 입장을 견지한다. 재닛 옐런의 성향으로 보면 부양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 자산시장 전반에 친화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금융시장과의 소통 문제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임박한 민감한 시기에 연준 의장이 교체될 수 있다. 그린스펀과 버냉키 취임 전후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넓게 보면 그리스펀과 버냉키 모두 경기와 자산시장에 친화적인 연준 의장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결과론일뿐 취임 초기에는 이런 평가를 받지 못했다.



취임 초 서툰 발언에 금융시장 혼란 겪기도


그린스펀 의장 취임 직후에는 미국 증시 사상 최악의 폭락 사태 중 하나인 ‘블랙먼데이’가 나타났다. 블랙먼데이가 연준 의장 교체와 직접 연관된 건 아니지만, 간접적인 연결 고리는 있다. 블랙먼데이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필자는 서방 중앙은행 간 공조의 균열이 블랙먼데이를 가져온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블랙먼데이가 발생한 1987년에도 ‘글로벌 불균형’이 국제 사회의 화두였다. 미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부담이 컸지만, 독일·일본 등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던 시절이었다.

1987년 2월 프랑스 루브르에서 G6 중앙은행·재무장관 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서방 선진국들은 독일·일본 등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에 대한 통화가치 절상 압박을 완화(플라자 합의의 종결)시키는 대신 전 세계적인 내수 부양 공조를 결의했다.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의 쌍둥이 적자에 시달린 미국은 씀씀이를 줄이고, 다른 나라들은 내수부양 정책을 써서 미국의 수요 공백을 메우자는 것이 루브르 합의의 취지다. 초기에는 공조가 잘 이뤄졌다. 루브르 합의 직후 미국은 금리를 올렸지만, 영국·독일·일본은 금리를 인하하면서 내수 부양을 했다.

그러나 1987년 하반기에 공조가 깨지면서(내수 부양을 해야 할 영국과 독일의 금리 인상) 블랙먼데이라는 주식 시장의 대폭락이 나타났다. 특히 일본과 더불어 대미 무역수지 최대 흑자국이던 독일의 기습적 금리 인상은 블랙먼데이 발생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볼커에서 그린스펀으로 연준 의장이 바뀐 건 루브르 합의와 블랙먼데이 사이였다. 중요한 시기에 나타난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 교체는 서방 중앙은행 간 공조를 느슨하게 만든 원인이 됐을수도 있다.

벤 버냉키 취임 초기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홍역을 앓았다. 버냉키는 연준 의장 취임 직후 CNBC 앵커와 가진 식사 자리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려는 의지를 트레이더들이 과대평가했다”고 발언했다. 알쏭달쏭한 발언이었지만 시장은 연준이 긴축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해석을 내렸고, 글로벌 증시는 동반 폭락했다.

2006년 5월 다우지수는 8%나 하락했다. 신흥시장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코스피 지수는 17.8% 급락했다. 버냉키 스스로 설화(舌禍)를 부른 셈이다. 능숙한 중앙은행가가 된 요즘의 버냉키를 생각하면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취임 초에는 서툰 구석이 있었다. 초보 연준 의장이 시장과 소통에 실패하면서 글로벌 증시에 큰 충격을 줬다.

요즘도 시장에서는 미국의 출구전략과 관련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가 급등했고, 주식시장도 적지 않게 조정을 받았다. 필자는 이미 글로벌 경제가 미국 연준 의장 교체와 관련된 불확실성이라는 비용을 치렀다고 본다. 6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버냉키는 시장의 일반적인 예상보다 빠르게 출구전략이 시행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물론 ‘경기가 충분히 회복돼야 출구전략을 시행’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를 ‘버냉키 쇼크’로 해석했다.

미국 연준은 실업률이 6.5%로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이 2.5%로 높아져야 기존의 양적완화 정책을 수정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미국의 실업률은 현재 7.6%이고, 물가상승률도 1.4%에 불과하다. 아직 출구전략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는데 왜 버냉키는 성급한 발언을 내놓았을까?

권력 이양기 불확실성 커져

버냉키가 굳이 6월 FOMC에서 출구전략과 관련한 언급을 한 것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어차피 하반기에는 후임 연준 의장 선임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출구전략과 관련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했는데,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다. 버냉키는 사상초유의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돈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결자해지 차원에서 출구전략과 관련한 단서를 제시하려 한 게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봐도 과거 연준 의장들은 통화정책을 어느 정도 정상화시키면서 후임자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1979년에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인플레이션 억제였다. 볼커는 연준 의장을 맡자마자 기준금리를 20%로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볼커는 강력한 긴축 정책의 상징이었다. 이런 볼커였지만 후임자인 그린스펀에게 자리를 넘길 때는 기준금리를 6.5%로 낮췄다. 기준금리를 정상화시키면서 바통을 넘겨줬다.

그린스펀은 볼커와는 정반대의 통화정책을 폈다. 금리를 떨어뜨리면서 자산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썼다. 취임 초에 경험한 블랙먼데이의 트라우마가 이후 20년에 이르는 그린스펀 시대의 정책을 결정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린스펀 풋(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으로 불리는 시장 구제책이 블랙먼데이 직후 단행됐다. 이는 이후에도 그린스펀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자산 버블을 조장했다는 비판도 받는 그린스펀은 2003년 6월에 미국의 기준금리를 당시까지 사상 최저인 1.0%로 낮췄다. 그러나 버냉키에게 연준 의장 자리를 넘겨줄 때 기준 금리는 4.5%였다. 그린스펀 시대를 상징한 초저금리에서 벗어난 후에 권력 이양이 이뤄진 셈이다.

6월 FOMC에서 나온 버냉키의 성급한 발언은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나름의 조급증이 발동된 결과일 수 있다.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양적완화의 축소 가능성을 버냉키 스스로가 언급했을 수도 있다. 미국의 통화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별것 아닌 이슈에도 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민감한 시기에 연준 의장이 바뀔 가능성이 커진 점은 하반기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유력한 후임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는 재닛 옐런의 성향은 자산시장에 우호적이지만, 초보 연준 의장의 소통 실패에서 시장이 큰 비용을 치를 수도 있음을 2006년 버냉키의 긴축 해프닝이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