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와 자산시장이 빠르게 정상화된 건 각국 중앙은행의 공이 컸다. 금융위기 직후 시장의 기능은 마비됐고, 부채의 덫에 빠진 각국 정부는 긴축과 재정지출 확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이런 가운데 중앙은행이 일관되게 경기 부양적인 정책을 이어왔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가 있다.
대공황을 연구한 경제학자인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전공을 살려 제대로 실력을 발휘했다. 기준금리를 재빨리 제로 수준으로 낮췄고, 돈을 찍어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이후 양적완화의 범위는 모기지 채권으로 확대됐다. 주저주저하던 유럽중앙은행(ECB)이 연준의 길을 따랐다. 일본중앙은행(BOJ)은 미국 못지 않은 강력한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차기 의장 재닛 옐런 유력
최근 버냉키 연준 의장의 사임 가능성이 대두됐다. 버냉키가 자신의 거취 문제를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8월 잭슨홀 컨퍼런스 불참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임론이 힘을 얻었다.
버냉키는 연준 의장에 취임한 2006년 이후 매년 잭슨홀 컨퍼런스의 기조 연설을 했다. 특히 2010년에는 이 자리에서 2차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임명권자인 오바마 대통령도 버냉키에 대해 “생각보다 오래 (연준의장 자리에) 머물렀다”고 언급해 연준 의장 교체를 기정사실화했다.
공식화한 건 전혀 없지만, 이미 후임 연준 의장 후보의 하마평까지 나온다. 그래서 ‘버냉키 이후’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후임자로는 재닛 옐런(현 연준 부의장), 래리 서머스(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티모시 가이트너(전 재무장관), 로저 퍼거슨(전 연준 부의장), 도널드 콘(전 연준 부의장), 스탠리 피셔(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등이 거론된다. 이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재닛 옐런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코노미스트를 상대로 후임 연준 의장을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질문에 답한 36명 중 29명이 옐렌을 버냉키 후임으로 점찍었다. 재닛 옐렌은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04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를 맡았다. 연준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줄곧 강하게 주장한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버냉키와 비슷한 성향으로 볼 수 있다.
재닛 옐런은 미 연준에서 가장 강한 톤의 부양 정책 실시를 주장하곤 했다. 그래서 ‘강성 비둘기파’라는 형용모순의 단어로 불린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제임스 토빈 교수에게 배웠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지언적 입장을 견지한다. 재닛 옐런의 성향으로 보면 부양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 자산시장 전반에 친화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금융시장과의 소통 문제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임박한 민감한 시기에 연준 의장이 교체될 수 있다. 그린스펀과 버냉키 취임 전후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넓게 보면 그리스펀과 버냉키 모두 경기와 자산시장에 친화적인 연준 의장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결과론일뿐 취임 초기에는 이런 평가를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