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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로 세계 철강역사 다시 쓰다 글로벌 파워피플 ⑯ 락시미 미탈 아르셀로미탈 회장

도일 남건욱 2013. 9. 9. 11:19


M&A로 세계 철강역사 다시 쓰다
글로벌 파워피플 ⑯ 락시미 미탈 아르셀로미탈 회장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아들까지 3대 잇는 글로벌 철강왕 … 인도계 기업인의 대부


인도 출신 락시미 미탈(63)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철강업계 최고의 파워맨이다. 세계 최대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의 주식 41%를 보유하면서 오너 경영인으로서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아르셀로미탈은 2위인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3위인 한국의 포스코를 누르고 글로벌 1위를 차지한 철강업체다. 

미탈은 모국인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 14개국에서 제철소를 운영한다.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맨으로도 유명하다. 인도 국적이면서 아르셀로미탈의 본사는 조세와 비즈니스에 유리한 룩셈부르크에 뒀다. 자신과 가족은 영국 런던에서 산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저택에 속한다.

미탈은 올 3월에 발표된 미국 포브스의 세계 부자 순위에 165억 달러의 재산으로 41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196억 달러로 21위였다. 지난해 주가 하락으로 한 해 동안 40억 달러 이상 재산이 줄었다. 재작년과 비교하면 146억 달러가 감소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2011년 초 그의 재산은 287억 달러까지 이르렀다. 2010년에는 영국과 유럽 최고의 부자이자 포브스 선정 세계 5위의 기업인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유럽의 불황으로 철강 수요가 준 게 결정타였다. 아르셀로미탈이 지난해 37억 달러의 적자를 보면서 그가 41%를 보유한 이 회사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는 이 회사 주식에서 43억 달러를 잃었다. 이르셀로미탈은 218억 달러에 이르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비주력 부문의 자산을 매각했으며 몇몇 공장의 문을 닫았다. 

자회사 미국의 스카이라인 제철을 누코르사에 6억500만 달러에 매각했다. 캐나다 철광산의 지분 15%를 한국의 포스코와 중국철강에 11억 달러에 팔기도 했다. 자구책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적자 공장 2곳의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프랑스 정부의 반대로 포기했다.

미탈은 인도에선 가족 간 재산분쟁에 휘말린 무케시 암바니에 이어 2위의 부자다. 국적이 아닌 거주자를 기준으로 한 선데이타임스의 영국 부자 순위에선 9년째 1위를 차지했다. 재산만 많은 게 아니라 영향력에서도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포브스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선 47위를 차지했다. 2006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도 들었다.

미탈은 세계적인 투자은행 겸 증권회사인 골드먼삭스의 사외이사이며 골드먼삭스 미디어·펌 IP의 이사도 지냈다. 에어버스와 유로콥터 사업을 벌이는 유럽 최대의 항공·방위산업체인 EADS의 이사도 겸직했다. 유로파이터로 한국의 차기 전투기 사업에 뛰어든 바로 그 업체다. 

뿐만 아니라 인도·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남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의 해외 투자 관련 이사와 고문직도 맡았다. 세계철강협회와 세계경제포럼의 이사직도 맡았으며 미국의 켈로그 경영대학원, 인도 경영대학원 이사도 지냈다. 재산이 상당히 줄었음에도 여전히 부와 명예, 그리고 영향력을 동시에 누리는 기업인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다.

포브스 부호 41위에 국제적 영향력 겸비

미탈의 본업은 철강이다. 그의 혈관에는 강철이 흐른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모든 것을 강철로 이뤘기 때문이다. 인도 서북부 라자스탄에서 태어나 서부 대도시 캘커타로 이주한 그는 어려서부터 철강에 익숙했다. 상인 집안 출신의 부친 모한 랄 미탈은 일찍이 강철의 미래를 간파하고 철강산업에 뛰어들었다. 

모한은 두 아들인 프라모드와 비노드를 데리고 철강산업을 계속 확장해 1984년 일본 히타치와 기술 제휴해 뭄바이를 본부로 하는 니폰덴로이스파트라는 철강회사를 창업했다. 현재 JSW이스파트라는 이름의 이 철강회사는 여전히 미탈 가문 소유다. 현재 인도 5위의 철강회사다.

락시미는 더 이상 이 회사와 관련이 없다. 1976년 가족 사업을 떠나 별도 철강회사를 창업했다. 인도네시아에 이스파트인도라는 이름의 철강회사를 세우고 새 제철소를 건설했다. 그가 직접 세운 유일한 제철소다. 나머지는 인수합병(M&A)한 업체다. 1989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그는 신규 제철소를 더 짓기보다 기존 철강회사와의 인수합병으로 회사의 몸집을 키웠다. M&A는 미탈이 세계적인 철강왕으로 오른 원동력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신규 제철소를 짓느니 기존 기업을 합병해 경영 효율을 꾀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미탈이 주도하면서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는 세계 철강업계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나선 덕분에 글로벌 철강 업계에선 국경을 넘는 M&A가 예사가 됐다. 인수합병의 목표는 신기술 획득과 신제품 생산능력 확보다. 이것이 철강 국제 트렌드의 핵심이다. 이런 시너지 효과 때문에 전 세계 철강업체들은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고 체력을 키우는 한편, 활발한 제휴로 합종연횡 하며 생존력을 강화했다. 이는 세계 철강업계의 도도한 흐름이며 성공 기법이 됐다. 

해외에 직접 공장을 세우는 ‘그린필드 방식’은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도 작용했다. 방대한 부지와 거대한 시설이 드는 제철소 건설은 부지 확보를 위한 주민설득과 환경평가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도 지루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포스코도 몇 년 동안 인도에 제철소 건설을 타진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최근 포기했다. 미탈은 이런 복잡한 길을 피해 M&A로 몸집을 키웠다.

미탈이 글로벌 철강왕에 오른 건 2004년이다. 자신 소유의 LNM그룹과 미국이 근거지인 인터내셔널스틸그룹을 합쳐 미탈 철강을 세운 해다. 45억 달러가 투입된 이 M&A를 통해 그는 마침내 세계 1위의 철강기업의 소유주가 됐다. 그의 야망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2005년 경쟁 기업이던 아르셀로와 치열한 인수 경쟁을 거쳐 우크라이나의 크리보리즈스탈을 합병했다. 인수가는 당시 시장 가격의 2배인 48억 달러였다. 승부사 기질이 보이는 대목이다. 아르셀로는 룩셈부르크의 아르베드와 프랑스의 우시노르, 스페인의 아세랄리아가 2002년 합병하면서 생긴 회사다. 

이 회사는 2005년 캐나다의 도파스코를 합병하면서 이듬해 세계 2위의 철강기업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듬해 미탈은 신일본제철·포스코와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마침내 이 회사를 합병해 아르셀로미탈을 세웠다. 100억 달러의 부채를 포함한 380억 달러가 들어간 엄청난 M&A였다. 세계 1위와 2위의 결합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확고한 1위 철강그룹을 세운 것이다.




독일 운테르벨렌본의 아르셀로미탈 공장.


M&A로 기술·생산능력 넓혀 가

미탈은 영국의 부동산 역사도 새로 썼다. 2004년 영국 런던의 쾌적한 부자 동네인 사우스켄싱턴의 켄싱턴 가든 18~19번지에 있는 저택을 5700만 파운드(약 8850억 달러)에 구입했다. 당시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이었다. 런던 한복판의 초대형 녹지대인 하이드 파크의 서쪽에 있는 이 지역은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가 신혼 때 살던 켄싱턴 궁전을 지척에 두고 있다. 

주변에 대사관과 공연시설, 명문 사립학교가 즐비한 쾌적한 부촌이다. 같은 거리 6번지와 9번지의 저택도 1억1700만 파운드(약 1억8200만 달러)와 7000만 파운드(약 1억900만 달러)에 각각 구입해 아들 아디티야(36)과 딸 바니샤(33)에게 주었다. 6번지의 저택도 구입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의 기록을 깼다. 

이 집에서 미탈 가족은 ‘브리티시 드림(성공해서 세계적 부호와 나란히 영국에서 사는 꿈)’을 이뤘다. 미탈 덕분에 그와 자식들의 집이 있는 켄싱턴 가든은 ‘억만장자의 가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처럼 인도는 물론 중동과 러시아의 신흥 부호들이 너도나도 런던에 집을 구하는 덕분에 런던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다.

미탈은 스포츠계에도 유명하다. 올해 2부 리그로 떨어지고 박지성 선수도 떠난 영국 프로 축구팀 퀸즈파크레인저스(QPR)의 지분 34%를 보유하고 있다. 프로축구팀 보유는 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일종의 개인 호사다. 재미있는 점은 미탈의 사위인 아미트 바티아의 가족이 최근 말레이시아 저가항공 에어아시아의 회장인 토니 페르난데스와 인도 자동차 그룹 타타와 손잡고 인도에서 새로운 항공사 영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페르난데스가 바로 QPR의 지분 66%를 보유한 1대 주주다. 페르난데스는 말레이시아 비즈니스맨이지만 이 나라의 소수민족인 인도 타밀계다. 미탈이 전 세계의 힘 있는 인도계 기업인들을 은근히 챙긴다는 관측을 낳는 이유다.

사실 미탈은 영국에 살지만 인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특히 인도 스포츠 진흥에 기부하면서 인도인의 관심을 끌었다. 인도가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 하나, 2004년에는 은메달 하나에 그치는 등 스포츠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자 900만 달러의 진흥기금을 내놓았다. 자신과 조상의 고향인 라자스탄 등에서 교육사업도 벌인다. 미탈은 마르와리라고 불리는 소수민족에 속한다. 이 종족은 상인으로 유명하다. 미탈은 타고난 상인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도 기업인으로 꼽힌다.

아들이 세기의 합병 작업 주역

미탈은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는데 이들을 어릴 때부터 경영에 참여시켰다. 경영 자체를 가족이 하는 전통을 아르셀로미탈에 정착시켰다. 아들 아디티야에겐 그룹의 핵심을 맡겼다. 아르셀로미탈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으면서 M&A와 전략커뮤니케이션도 함께 담당한다.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1996년 우등 졸업했다. 그 뒤 잠시 크레디스위스 퍼스트보스턴이라는 은행에서 M&A를 담당하다 1997년 아르셀로 미탈에 합류했다. 

1999년 미탈그룹의 성장엔진에 해당하는 M&A 부문을 맡았다. 이 업무를 맡으면서 그룹을 세계 최고의 철강업체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2006년 380억 달러를 들여 이룬 미탈과 아르셀로 간의 세계적인 합병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 합병은 그의 협상력과 아버지 락시미의 판단력이 더해진 ‘아버지와 아들’의 가족 합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 일로 아버지의 결정적인 신임을 얻었다. 

지금 아르셀로미탈은 사실상 부자가 공동 경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창업했지만 그룹 성장에는 어린 아들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경영 승계도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2009년 미국 포춘지는 아디티야를 ‘주목해야 할 40세 이하 경영인 40명’의 4번째에 넣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젊은 글로벌 리더 포럼 활동에 열심이다. 이 때문에 대외 활동에 야심이 있어 보인다는 평이다. 2010년 5월 부터 프랑스 명품그룹 PPR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아디티야는 독일 패션그룹 에스카다 오너의 딸인 메가와 결혼했다. 부부가 기부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2008년 런던의 한 병원에 1500만 파운드(약 2330만 달러)를 기부해 미탈 어린이 병원을 건립하도록 했다. 미탈 가문이 비즈니스 성공과 축구팀 지분 소유라는 개인적인 호사에 이어 기부까지 손을 뻗은 것이다. 인도 상인 출신의 사업가가 유럽 최고 부자로 주류 사회에 당당히 입성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탈의 딸 바니샤는 유럽경영대학원 출신이다. 2007년 포브스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상속녀로 꼽았다. 2004년 투자은행가인 아미트 바히아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결혼’으로 보도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1주일간 인도식 잔치로 열린 이 결혼식과 피로연에는 6000만 달러의 비용이 든 것으로 전해진다. 하객이 1000명에 이르렀다. 

바니샤는 2004년부터 경영에 참가, 현재 미타그룹의 지주회사인 LNM 홀딩스의 이사를 맡았다. 그룹의 주력 기업인 아르셀로미탈과 미탈 철강의 이사도 함께 맡고 있다. 락시미는 자식들에게 원대한 목표 설정과 끈기, 그리고 순간적인 판단력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사업 확장을 이 세 가지로 이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탈 가문의 경영 지침이나 다름없는 이 세가지는 미탈을 글로벌 파워맨으로 만든 원동력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