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마나도의 까와누아 컨벤션센터에 전시된 실러캔스 화석. |
실러캔스는 3억8500만년 전 데본기 중기에 출현해 6500만년 전 백악기 후기에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38년 아직도 생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이유다. 물고기라고 하지만 공기 호흡을 하는 폐어, 그리고 네발 척추 동물에 더 가까운 것으로 분류된다.
근육질의 앞 지느러미 한 쌍은 약 3억9000만년 전 육지로 올라간 최초의 물고기와 사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몸길이 1.8m, 체중 90kg까지 자란다. 잉태 기간이 3년에 이르며 한번에 20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서식지는 서부 인도양과 인도네시아 해안이다. 이 수수께끼의 물고기가 일부일처제로 번식한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9월 18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실린 논문을 보자.
후손 잉태한 암수의 촌수도 멀어
독일 루르대와 뷔르츠부르크대 공동 연구팀은 임신 중인 암컷 몸 속에 있던 새끼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암컷은 모두 2마리로 각각 1991년, 2009년 아프리카 해안에서 잡혔다. 몸무게는 90kg대로 각기 26마리, 23마리의 새끼(배아)를 낳기 직전이었다. 연구팀은 새끼의 유전자를 사람의 친자 확인에 사용하는 기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한 배의 새끼는 모두 수컷 한 마리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암컷이 ‘최소한 일정 기간은’ 일부일처제를 따른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일반적으로는 여러 수컷과 교미하는 편이 유리하다. 수정 성공률이 높아지고 후손 유전자도 다양해지며 가장 좋은 유전자가 후대에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러캔스가 일부일처로 번식하는 이유는 미스터리다. 여러 상대와 짝짓기를 하는 이점에 비해 암컷이 치르는 비용이 더 큰 탓일 수 있다. 예컨대 새로운 수컷을 찾느라 에너지를 더 투입해야 한다거나 포식자의 먹이가 될 위험이나 기생충·질병 등에 감염될 위험이 커진다거나 하는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실러캔스의 유전적 구성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했다. 후손을 잉태시킨 수컷과 암컷은 가까운 친척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러캔스 군집에서 무작위 추출한 대다수의 커플 표본에 비해 촌수가 멀었다. 이는 암컷이 가까운 친척과 짝짓기를 기피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혹은 짝을 선택하는 데 더욱 관련이 깊은 여타의 특징이 있을지도 모른다. 덩치나 형태, 혹은
기생충에 대한 저항력이 그런 특징의 예다.
대다수의 물고기는 몸 밖에서 수정을 한다. 암컷이 물속의 조용한 장소에 알을 낳으면 그 뒤에 수컷이 정자를 뿌리는 것이다. 이때 수컷은 여러 마리일 경우가 많다. 자손은 부모가 돌보지 않고 자기 힘으로 자란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완전히 자란 새끼를 낳는 난태생이다. 과학자들은 전체 임신 기간을 3년으로 추정한다.
일부일처제보다 더욱 큰 수수께끼는 실제로 짝짓기를 하는 방법이다. 수컷은 암컷의 배설강을 뚫고 들어가 정자를 주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삽입을 담당할 기관이 발견되지 않았다. 어쩌면 번식기에만 자랐다 없어지는 특수한 성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보다는 암수가 성기를 아주 특수한 체위로 맞대고 있어야 수정이 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팀은 본다. 사실 이 동물은 물구나무를 서거나 배를 위로 하는 등 어떤 자세로도 헤엄칠 수 있는 8개의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임신 기간이 3년이나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끼를 잡아먹는 행태 탓으로 해석된다. 새끼는 출생 직후 깊은 물속으로 재빠르게 도망쳐야 살 수 있다. 그래서 몸길이가 성체의 3분의 1에 이르는 덩치로 태어나며(난태생), 이를 위해 임신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실러캔스는 1938년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연안에서 산 채로 잡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앞 지느러미 한 쌍에 동물의 다리처럼 근육이 붙어있는 특징적 모습이었다. 길이 1.5m, 무게 52kg의 회청색 몸에는 흰 반점이 여기저기 나있었다. “처음 보는 물고기가 잡혔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것은 남아공 ‘이스트런던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마르조리 코트네이-라티머였다. 학명은 그녀의 이름과 포획장소의 이름을 따서 라티메리아 숄롬니(Latimeria chalumnae)로 지어졌다.
1997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신혼여행 중이던 해양 생물학자 에드르만이 어시장에서 또 다른 종을 발견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몸 색깔이 회청색이 아닌 갈색이었지만 형태는 앞서의 서부 대서양 종과 유사했다. 그 이듬해엔 살아있는 개체가 잡혔다. 실러캔스는 약 80종이 있었지만 모두 멸종하고 서부 대서양과 인도네시아의 2종만 현존하고 있다. 최근 서부 대서양 종의 전체 유전자(게놈)를 분석한 결과 약 3억9000만년 전 폐어와 네발 척추동물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실러캔스는 수심 100~500m의 해저 동굴이나 해저 절벽의 틈새에서 수백 마리가 무리 지어 생활한다. 깊은 물속은 수온이 낮기 때문에 신진 대사율을 낮출 수 있으며 동굴 속은 물의 흐름이 없어서 헤엄치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낮에는 동굴에서 조용히 쉬다가 밤이 되면 먹이 활동에 나선다.
물 밑바닥에 사는 고기를 주로 잡아먹는다. 물속의 용암절벽을 따라 얕은 곳으로 떠오르면서 문어나 오징어,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한다. 상어에 의해 잡아 먹히는 일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어 이빨 자국이 있는 경우도 여럿 발견됐으며 이들이 사는 해역에는 실제로 상어가 많다.
80종 중 2종만 살아남아
연구자인 프릭케에 따르면 1988~1994년 자신이 잠수했을 때는 매번 약 60마리를 셀 수 있었는데 1995년 이 숫자가 40마리로 줄어들었다. 이는 자연적인 개체수 요동일 수 있지만 남획의 결과일수도 있다. 실러캔스는 보통 게르치(oilfish)를 노리는 현지 어부들의 밤 낚시에 우연히 잡히는 수가 많다. 암컷과 수컷이 대략 같은 비율로 잡힌다.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전에는 어부들이 실러캔스를 다시 놓아주었다. 식용으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몸에서 분비되는 기름 성분이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기름기와 요소, 왁스 에스테르 성분이 많아서 소화시키기 어렵고 설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소장 가치가 생긴 후에는 어부들의 행태가 달라졌다. 과학자나 관련 공무원들에게 파는 것이다.
1980년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단체에서 해당 지역 어부들에게 유리섬유로 된 배를 기증했다. 이 배를 타고 고기가 더 많은 곳까지 멀리 나가면 실러캔스 서식지에서 멀어지는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의 모터가 망가지자 어부들은 다시 연안에서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또 다시 실러캔스가 위기에 처한 원인의 하나다. 오늘날 가장 큰 위협은 깊은 바닷속을 훑는 저인망 그물에 부수적으로 잡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멸종 위기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