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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임산부의 체내 박테리아 아기 뇌에 영향 美 신경과학연구 최신 논문

도일 남건욱 2013. 12. 5. 22:58


Science - 임산부의 체내 박테리아 아기 뇌에 영향
美 신경과학연구 최신 논문
조현욱 중앙일보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새끼 밴 쥐로 실험 … 엄마가 스트레스 받으면 박테리아 종류 달라져


임신 중인 여성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질 속의 박테리아에 변화가 생긴다. 이런 박테리아는 나중에 아기의 장에 자리잡은 뒤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이 생쥐 실험을 통해 밝혀낸 사실이다. 11월 중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신경과학협회 (Society for Neuroscience)’ 연례 회의에서 발표된 논문을 보자.

태아는 무균 상태지만 출생할 때 엄마의 질을 통과하면서 처음으로 박테리아를 대량으로 접한다. 출생 후 2~3년간 아기의 미생물 군집이 성숙해가는 동안 면역계도 이와 조화를 이뤄 함께 발달하면서 이들 미생물이 적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의 미생물 군집은 자연 출산한 아기의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상태가 이들이 성숙한 다음에도 유지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두 가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엄마에게 물려받는 박테리아 집단은 아기의 신경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엄마가 임신 중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들 박테리아도 영향을 받는 게 아닐까. 모체의 질 생태계는 스트레스에 어떤 영향을 받을까. 그리고 이런 변화는 아기의 장에 전달되지 않을까.

임산부 스트레스 받으면 유산균 비율도 하락

연구팀은 임신한 쥐 10마리를 대상으로 여우 냄새에 노출시키거나 밤새 우리에 불을 환하게 켜놓는 등의 스트레스를 주었다. 임신 3분기 중 첫 분기 동안 내내 그랬다. 다른 10마리는 정상적인 환경에서 지내게 했다. 그리고 임신 중과 출산 직후에 질 내 박테리아 샘플을 채취해 어떤 종류가 살고 있는 지를 확인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생쥐는 출산 직후 질의 미생물 생태계가 그렇지 않은 생쥐와 크게 달랐다. 박테리아의 종류가 더 다양했으며 질 내의 흔한 박테리아인 유산균의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차이는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새끼들의 장내 박테리아 샘플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새끼 뇌의 시상하부(호르몬 제어와 행동, 수면과 관련된 부위)의 유전자 상태를 분석했다. 어미의 미생물 생태계에 일어난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분석 결과 유산균의 감소는 유전자 20개의 발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산이나 뇌 속 시냅스 연결의 성장과 관련된 유전자가 포함돼 있었다. 뇌에 이런 유전적 변화가 생긴 것은 혈액 속에 다른 종류의 영양성분과 대사산물이 흐르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스트레스로 변화가 생긴 박테리아 생태계를 어미에게서 물려받았기 때문에 말이다.

연구팀은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가 낳은 새끼의 혈액을 분석했다. 그 결과 뇌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자의 숫자가 정상 새끼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뇌를 유해산소의 악영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자의 숫자도 더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뇌가 초기에 어떻게 발달하느냐, 그리고 미래에 스트레스나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게 되느냐를 결정하는 데 말이다. 미생물 생태계는 사용 가능한 영양소의 양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면역계를 통해서, 그리고 면역계와 연결된 장내의 신경발달을 통해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들 세 가지 메커니즘은 모두 연결돼서 함께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이와 동일한 효과가 사람에게도 확인된다면 직접적인 해결책이 있다. 예컨대 특정한 박테리아 혼합세트가 스트레스를 받은 엄마가 낳은 아기에게 이로운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를 출생 직후에 주입할 수도 있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나 임신 중 항생제 복용으로 엄마의 장내 박테리아가 교란된 상태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도 마찬가지다. 원래 아기의 면역력이 약한 것도 유익한 미생물이 우리 몸에 대량 서식할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1월 7일 미국 신시내티 어린이 종합병원 연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생후 6일 된 쥐의 적혈구에는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특정 단백질(CD71+)이 다 큰 쥐의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에서 이 단백질을 제거하자 정상적인 장내 박테리아에 전에 없던 염증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 보스턴 어린이 종합병원의 한 전문가는 “만일 이런 염증반응을 억제할 메커니즘이 없다면 신생아는 완전히 망가져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단백질은 사람의 탯줄 혈액에도 성인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도 연구팀은 이번에 확인했다. 지난해 6월 미국국립보건원은 인체 미생물 전체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한 지도, 즉 데이터베이스를 발표했다. 

1억7300만 달러(약 2000억원)를 들여 5년 간 진행한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의 성과다. 세계 80개 연구소의 200여명이 건강한 미국인 자원자 242명에게서 박테리아·바이러스 등을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인체 미생물의 숫자는 인체 세포의 10배가 넘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종류는 기존에 알려졌던 몇 백 종이 아니라 1만여종으로 확인됐다.

체내 미생물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1만여종

이들 미생물이 인간의 생존과 건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근래에 밝혀지기 시작한 사실이다. 우선, 장내 미생물이 음식 중 단백질·지질·탄수화물 중 많은 부분을 분해한 다음에야 인체는 이들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다. 또한 미생물은 비타민과 장내 염증을 억제하는 화합물 등 인간이 생산하지 못하는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낸다. 

과민성대장증후군에서 천식·크론병, 류머티즘성 관절염, 심지어 비만까지도 체내 미생물 분포와 관계가 깊다. 이를 두고 인간은 산호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생물체의 군집이라는 이론, 인간과 체내외 미생물을 합쳐 하나의 초유기체로 보아야 한다는 이론까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