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상이몽의 외교전을 펼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일본 총리(왼쪽부터). |
동북아시아 정세가 불안하다. 미국·중국·일본의 첨단병기가 속속 동중국해로 집결하고 있는 걸 보면 이러다 진짜 전쟁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차분히 이 상황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를 감도는 물살은 거센 듯 보이지만 수면 아래를 흐르는 조류는 사뭇 다르다. 세 나라가 서로 적당한 선에서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양상을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내치(內治)의 관점에서다. 사실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요즘 유례없이 강한 공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분쟁에 이은 방공식별구역 갈등이 두 나라 안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군사·외교 갈등으로 국내 현안 무마
아베의 군국주의 야욕의 화룡점정은 중국 몫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시진핑의 방공식별구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대와 헌법개정, 역내 군사력 확대에 일조할 뿐이다. 최근 일본 내 비난여론이 높았던 비밀보호법이 순식간에 의회를 통과하고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빛의 속도로 창설된 것도 좋은 예다.
이번에는 순번을 바꿔 아베의 차례다. 아베가 시진핑의 방공식별구역에 맞서 강수를 둘수록 시진핑이 만들어놓은 국가안전위원회는 조기에 체계를 갖추고 안착할 수 있다. 아베가 세차게 중국을 비난하고 미국이 이를 거드는 것처럼 보일수록 중국 내 군경(軍警)조직은 국가안전위원회를 거쳐 시진핑에게 길들여진다.
일본과 중국이 당면한 내부 과제는 향후 적잖은 진통을 예고한다. 중국은 투자와 수출 주도 경제에서 내수경제로 체질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경제 체질을 바꾼다는 것은 구조조정에 다름아니다. 그 과정에서 경제 주체들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들썩이는 집값과 꿈틀대는 물가, 벌어지는 소득격차, 자치구 내 민족갈등 등 당의 지배력을 위협하는 불안 요소는 적지 않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성공에 들떠 있지만 서민들의 삶은 피곤해지고 있다.
17개월째 뒷걸음치는 근로자 임금(기본급 기준), 그런데도 꾸준히 오르는 물가는 서민들의 실질구매력을 갉아먹는다. 주식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가계에 최근의 일본 증시 활황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내년 4월 소비세 인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상당 폭의 기본급 인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부 불만은 더 커져갈 것이다. 양국 모두 이를 돌파하기 위해선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하고, 여론 분열을 막아줄 외부의 적도 필요한 법이다.
일본과 중국이 걷는 길은 서로 다르지 않다. 걸음걸이도 닮았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선언했듯, 중국도 일방적으로 하늘에 선을 그었을 뿐이다. 물론 가는 길이 같다 해서, 쓰는 수법이 동일하다 해서,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것은 아니다. 할퀴기 바쁘다. 그 과정에서 고조되는 서로를 향한 국민적 분노는 아베와 시진핑이 애초 하고 싶었던 일을 밀어붙이는 동력으로 치환될 뿐이다. 이 상황은 동북아 내 보수 우경화하는 집권세력이 국내 정치에서 필승을 하는 게임이다.
다음으로 중국의 시간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주요한 정책을 내놓고 이를 진행할 때는 단기간 내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은 없다. 경제정책이나 사회개혁의 경우 숱한 실험에 실험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10억이 넘는 거대 인구를 상대로 시행하는 정책인 만큼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일단 방향이 서면 조금씩 부작용을 제거해나가며 진행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중국이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어느덧 변해있는 게 중국이다.
외교·안보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조심해왔다. 최근 20년 간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존재감이 얼마나 약해졌는가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단기간 내 대만을 접수하려 들지 않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대만의 힘을 뺐을 뿐이다.
그 세월 대만과 외교를 단절하고 중국에 접속하려는 나라는 하나 둘 늘어 이제 대만과 국교를 맺은 나라는 19개국에 불과하다. 대만 경제 역시 사실상 중국 시장에 예속됐다. 이번 방공식별구역 선포도 마찬가지다. 일단 하늘에 선을 그어놓은 것에서 출발할 뿐이다. 여차하면 잠시 물러섰다가 때 되면 다시 부각시키기를 긴 세월 반복할 것이다.
세번째로 미국의 입장을 살펴보자. 동중국해 분쟁이 미·중 간 전면전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선 확률이 지극히 낮다. 장기 역사적 관점에서 미국의 힘은 약해지고 있고, 중국의 힘은 부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주식에 비유하면 미국이라는 주가는 지속적으로 우하향 추세에 있고, 중국이라는 주가는 우상향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주가의 그래프가 중국 주가의 그래프 위에 있다.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모든 객관적 전력에서 여전히 미국은 중국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이 정면으로 미국에 부딪힐 일은 없다. 어떤 식으로든 회피하려 들 것이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은 미국과 중국의 주가 그래프가 만나려는 순간일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과는 경제·외교 측면에서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아시아 중시 전략(Pivot to Asia)을 선언하며 일본과 손잡고 중국 봉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협조 없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을 헤쳐나갈 수가 없다. 미·중 간 투자협정조약, 더 나아가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라인의 동북아 대륙으로의 연장에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축소 과정에서의 국채시장 안정 문제(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자다)도 마찬가지다.
물론 미국이 보기에 중국의 방공식별 구역은 기존의 동북아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다. 좁혀보면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간 갈등의 연장선으로 보이지만 미국이 여기서 발을 빼면 미·일 관계는 급속히 나빠진다. 일본은 물론이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역시 안보 동반자로서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B52 폭격기를 날려보냈고 ‘일본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언행은 일본과 중국을 향한 것이자, 동시에 동아시아 안보동맹국 모두에게 안심하라고 하는 이야기다.
미국은 중국 어르고 일본 달래고
그러면서도 중국의 입장을 배려해 B52 폭격기의 비행은 이미 오래 전 예정된 훈련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미국 민항기들에게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할 경우 중국 측에 사전 통지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오바마의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수잔 라이스의 11월 20일(현지시간) 연설이다. 이날 연설에서 수잔 라이스는 중국과 신형 대국 관계 구축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여름 시진핑이 오마바를 만나 요구한 신형 대국 관계를 오바마의 안보총책이 재차 확인한 셈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조 바이든 부통령 역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비난했지만, 방점은 오히려 두 나라가 만나서 대화로 잘 풀어보라는데 맞춰졌다. 오바마 입장에선 ‘아베의 뒤를 내가 든든히 받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지만, 아베가 폭주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아베와 시진핑이 댜오위다오를 놓고 실제 무력충돌을 벌이는 경우 오바마의 머리 속은 겉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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