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여기 저기서 ‘드론’ 페덱스·UPS 긴장 성큼 다가선 무인항공기 배달

도일 남건욱 2013. 12. 13. 02:32


여기 저기서 ‘드론’ 페덱스·UPS 긴장
성큼 다가선 무인항공기 배달
박성균 중앙일보 워싱턴지사 기자
아마존 상용화 선언에 영국·호주·중국도 개발 경쟁, 미국선 법제화까지 4~5년 걸릴 듯

호주 벤처업체인 주칼의 드론 배달.


#1. 미국 메릴랜드 볼티모어에 사는 리처드 존스는 자동차로 퇴근하다가 무언가 빼먹은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내 생일 선물을 깜빡 잊고 사지 않은 것이다. 교통 정체가 심한 퇴근 시간대에 몇 마일 떨어진 백화점에 갈 수도 없는 상황. 

하지만 존스는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는 동안 스마트폰의 아마존 앱을 실행한 뒤 아내가 좋아하는 빨간 색깔의 깜찍한 장갑을 골라 주문했다. 20여분 후 집에 도착한 그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기다리니 아마존에서 보낸 배달용 소형 무인항공기 드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선물을 집어든 존스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2. 호주 시드니대 도서관에서 기말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2학년 마이클 브라운. 전공시험 공부를 하다가 열람실에서 중요한 참고도서 몇 권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다른 학생들이 이 책을 이미 대출해 갔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브라운은 스마트폰을 꺼내 도서 판매와 렌트서비스를 하는 업체에 접속, 필요한 책을 신청했다. 잠시 뒤 프로펠러가 달린 배달용 드론이 나타나더니 도서관 앞 잔디밭에 책 꾸러미를 떨어뜨리고는 하늘로 사라졌다. 포장된 책 패키지를 집어든 브라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지만 결코 허구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마존(Amazon)이나 호주 업체인 주칼(Zookal)은 이미 이 같은 서비스 시연에 성공했다. 이어 본격적인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군사용 무기로 사용되던 소형 무인항공기 ‘드론(drone)’이 배달서비스에 투입되며 물류혁명의 개척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드론은 사람이 타지 않고 무선으로 조종하는 비행체다. 드론 배달서비스는 이미 기술적인 문제를 거의 해결됐기 때문에 관련법 등 제도적 장치만 마련되면 바로 배달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피자·케이크부터 책 배달까지 다양해

세계 최대 유통망을 보유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가 12월 1일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드론을 이용한 배달시스템을 준비 중”이라고 공표하자 드론 배달서비스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CBS의 간판프로그램인 ‘60분쇼’에 출연한 베조스는 인터뷰와 함께 드론을 이용한 배달 과정을 생생한 동영상으로 소개했다.

아마존은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드론을 통해 30분 안에 배달할 수 있는 ‘아마존 프라임 에어(Amazon Prime Air)’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프라임 에어’는 ‘우대 고객’과 ‘항공 배달’을 합친 말이다. 드론은 자동항법시스템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조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아마존은 충돌이나 추락 등의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처 방안 등 세부사안을 마련 중이다.

아마존은 우선 물류창고에서 반경 1마일(1.6km) 내에서 약 2.3kg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배달하는 경우를 상정해 드론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최종적으로는 전 세계 100개가 넘는 물류창고에서 드론 배달서비스를 실시하겠다는 야심찬 장기 프로젝트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날개 달린 비행기 형태 드론도 나와

이 같은 서비스가 현실화되려면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아마존 자체적으로 드론 배달시스템을 정교화해야 하지만 관련 법규가 정비되는 데에도 몇 년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상업용 항공 무인기 드론을 운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지난해 찬반양론의 논란 속에 미 연방의회가 2015년부터 미국 영공에서 상업용 무인기 운행을 허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이르면 2년 후에는 드론을 활용할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드론 운행을 관할하는 연방항공청(FAA)이 세부 규정까지 확정하려면 4~5년은 걸릴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일단 의회가 드론 활성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업적 목적의 드론을 활용한 배달서비스도 활성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베조스는 “드론을 활용한 배달 시스템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연방항공청 허가를 받아 앞으로 4~5년 안에 드론 배달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마존의 ‘아마존 프라임에어’ 시스템이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드론을 활용한 배달서비스는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됐다. 미국 외의 여러 나라에서 시험 운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는 호주의 벤처업체인 주칼. 교과서를 판매하거나 빌려주는 업무를 하는 이 회사는 시드니대에서 드론을 활용해 책을 배달하는 시범 서비스를 이미 하고 있다. 

시드니 대학이 후원하는 또 다른 벤처회사인 플러티(Flirtey)가 개발한 6대의 드론으로 최대 2kg의 물건을 시드니 일대 반경 3km에서 배달하고 있다. 주칼은 플러티 외에도 호주의 소셜미디어네트워크인 빔브라(Vimbra)와 협력관계를 맺고 네티즌 고객의 주문을 받고 있다. 이들 업체는 드론배달 서비스를 통해 교육 관련 도서의 배달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여 물류비용과 서비스를 효율화했다.

정보기술(IT) 분야의 후발주자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드론을 이용한 시험 배달 서비스에 성공했다. 중국 남부에 있는 광둥성 동광시에서 영업하는 SF익스프레스는 8개 프로펠러가 달린 드론을 이용한 시험 배달 서비스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실행하고 있다. SF익스프레스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드론배달 시스템의 안정성과 상업성이 확인된 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상업적 목적으로 드론을 활용하는 것이 법으로 허용돼 있다. 

하지만 지역 항공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리 쉽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인케이크 베이커리도 프로펠러 6개가 부착된 미니 드론을 구입, 올해 상반기 케이크 배달서비스를 실시했다. 하지만 한창 화제를 모으며 드론배달 서비스를 하던 인케이크는 7월에 지역항공청으로부터 드론 운항 금지 명령을 받았다. 지역항공청이 드론의 안전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일부 관광객 등이 상하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인케이크의 드론에 대해 추락 불안감을 나타냈다고 중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영국 런던의 식당체인점인 ‘요!스시(YO! Sushi)’는 6월부터 일부 웨이터를 사람에서 드론으로 교체했다. 세계 최초로 웨이터의 임무를 맡은 드론의 이름은 ‘아이트레이(iTray)’로, 특수 제작된 쟁반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배달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상업용 드론 이용이 금지돼 있지만 요!스시는 식당에 속한 사유지 영역에서 드론배달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법률적인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종업원이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아이트레이’에 장착된 카메라 2대의 영상을 보며 드론을 조정한다.

사생활 침해, 안전문제 우려도

도미노피자의 영국법인도 6월에 대형 피자 2판을 매장에서 6.5㎞거리에 있는 고객의 집 앞에 10분 만에 배달하는 드론배달 테스트에 성공했다. 요!스시와는 달리 도미노 피자의 드론은 공유지 위의 상공을 날아야 하기 때문에 아직 상업화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도미노 피자는 이번 드론배달을 통해 신속배달 이미지를 강조하는 한편 법적 문제가 해결되면 피자업계에서는 제일 먼저 드론배달 서비스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에서도 아마존에 앞서 2011년부터 드론배달 시범 서비스가 잇따라 되고 있다.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있는 ‘타코콥터(TacoCopter)’는 지난해 3월부터 타코를 드론으로 배달하는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타코는 멕시코 음식으로 미국에서 햄버거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패스트푸드다. 

이 회사는 2010년 전기공학자 스타 심슨 등 MIT대 출신 3명이 설립한 벤처기업으로 드론배달 서비스의 선두업체로 평가 받는다. 타코콥터는 타코로 시작했지만 바닷가재요리 등 다양한 음식을 배달할 예정이다. 미국의 또 다른 벤처업체인 ‘다윈 에어로스페이스(Darwin Aerospace)’도 드론배달 서비스의 선두그룹에 속한다.

이 회사는 헬리콥터를 변형한 프로펠러 형태가 아닌 날개 달린 비행기 형태의 배달용 드론인 ‘브리또 폭격기(Burrito Bomber)’를 개발했다. 지난해 시험배달에 성공한 브리또 폭격기는 고객의 원하는 곳으로 비행한 뒤 소형 낙하산이 설치된 원통에 포장된 브리또를 투하해 음식을 배달한다.

미국에서 다양한 드론배달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하자 페덱스와 UPS등 배달서비스 회사와 연방우체국 등이 긴장하고 있다. 새로운 배달혁명이 일어나면 기존 업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항공운송 업체인 페덱스를 창립한 프레드 스미스는 이른 시일 안에 드론을 도입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페덱스가 소형 무인기를 활용한 드론배달 시스템을 시도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아마존과 주말 배달 협력체제를 구축한 연방우체국도 드론배달 서비스에 대해 우려한다.

드론배달 시스템 앞에 장밋빛 미래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사생활 침해와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드론의 활성화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버지니아주와 같은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경찰 등 정부당국이 감시용 드론을 사용하려는 것도 반대할 정도다. 연방법이 허용하더라도 주 의회에서 까다로운 조항을 만들어 드론의 실질적인 도입을 막을 수 있다.

드론 비행과 관련한 법규가 준비되지 않으면 드론배달 시스템의 도입도 늦어질 수 있다. 연방항공청은 의회가 드론 관련 법안을 통과함에 따라 오는 2015년 9월까지 영공을 드론에 개방해야 한다. 연방항공청은 향후 5년 동안 약 1만 기의 드론이 비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비해야 할 드론 관련 법규가 제정돼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보험업계 등도 드론이 공중에서 충돌하거나 드론 추락으로 인해 건물이나 사람이 피해를 입을 경우 보상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드론(Drone) 드론 제작사 MLB가 1990년대 드론을 제작했을 때 명명한 이름은 ‘UAVs(unmanned aerial vehicles, 무인항공기)’였다. 그러나 UAV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어 널리 쓰이지 못했다. 이후 ‘스파이 비행기(spy plan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드론을 반대하는 이들이 드론의 비호감적인 외모 등의 이유로 ‘살인자 수벌(Killer Drone)’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드론이란 이름의 유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