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진정한 자아 찾기

도일 남건욱 2014. 5. 16. 16:11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진정한 자아 찾기
공병호 자유주의 경제학자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걷기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가 쓴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은 걷기에 관한 유명인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 그리고 저자의 단상을 정리한 책이다. 걷기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실천한 니체·랭보·루소·칸트·간디 등의 이야기가 이 책의 품격을 높이고 내용을 풍성하게 만든다.

걷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걷는 동안만이라도 우리는 주변과 관계를 끊을 수 있다. 그 관계란 어리석은 관습일 수도 있고, 일상의 권태로움일 수도 있고, 반복으로 인한 피로함일 수도 있다. 그런데 걷기가 주는 진정한 자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자신보다는 명성·물질·지위 등과 같은 외부적인 것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걷기는 이런 것이 가리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걷기가 주는 또 다른 혜택은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걷다 보면 포기하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오랫동안 걷다 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는지,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는지를 더 이상 알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낀다.”

걷기에 깊이 매료된 인물은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그는 놀라운 지구력을 갖춘 건각(健脚)이었다. 1879년 9월에 쓴 편지에서 니체는 걷고 또 걷는 사람임에 대해 말한다. “겨우 몇 줄만 빼놓고 전부가 다 길을 걷는 도중에 생각났으며, 여섯 권의 공책에 연필로 휘갈겨 썼다네.” 니체에게 걷기는 활동의 조건이자 삶의 조건이었다. 그는 걷기가 자신의 집필 활동에 핵심적인 요소임을 <즐거운 학문>이란 저서에서 말한다. 

“우리는 책 사이에서만, 책을 읽어야만 비로소 사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야외에서, 특히 길 자체가 사색을 열어주는 고독한 산이나 바닷가에서 생각하고, 걷고, 뛰어오르고, 산을 오르고, 춤추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다.” 니체에게 걷는다는 것은 높아지는 것이며, 기어오르는 것이며 올라가는 것을 뜻했다.

걷기가 가진 매력 가운데 한 가지는 안과 밖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고 뒤섞이게 만들어 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어떤 풍경 속에서 살 수 있으면 천천히 소유하고 멋진 경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걷기의 매력은 느림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것이다. “풍경은 풍미와 색깔, 향기가 뭉친 덩어리이고, 몸은 여기서 활력을 얻는다.”

19세기 프랑스 상징파를 이끈 천재시인이자 서른 살에 요절한 시인 랭보는 걷기를 삶의 한 부분으로 만든 인물이다. 랭보는 “난 그저 걸어 다니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라고 자신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걷기에서 찾았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도보 길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럴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당나귀를 타고 세벤 지방을 여행하다>는 책에는 그 이유를 짐작하게 만드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제 제대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혼자 도보 여행을 해야만 한다. 여러 명이 함께, 혹은 심지어는 두 명이 함께 보도 여행을 할 경우 도보 여행은 이름만 도보 여행이 되고 만다. 도보 여행은 혼자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유명인들은 혼자 걷기를 즐겼다. 함께 걷는 것은 걷기가 아니라 소풍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다고 해서 진정으로 혼자 걷는 것일까? 저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더한다. 혼자서 걷기 시작한 사람은 즉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함께 걷고 있음을 깨우치게 된다. 

혼자 걸을 때에도 육체와 영혼이 항상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걷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곳곳에서 말을 걸어오는 대상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숲, 나무와 꽃, 언덕 등은 모두 걷는 사람에게 이런 저런 대화의 소재를 던져준다. 그래서 혼자 걷는다고 해서 혼자가 아니다.

칸트는 걷기를 생의 마지막 날까지 집요하게 추구했다. 칸트는 걷기를 통해서 건강을 물론이고 위대한 학자라는 과실도 수확할 수 있었다. 칸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가벼운 걷기에 해당하는 산책은 일상의 반복을 벗어나서 삶의 경쾌함과 영혼의 온화함을 다시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걷기의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왜, 걷기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리고 걷기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도와준다. 멋진 걷기를 위한 철학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