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방사능 측정도 스마트폰으로 값싸고 쉽게”

도일 남건욱 2014. 8. 8. 17:20

누구는 위험하다고 말하고, 다른 어떤 이는 다 괜찮다고 타이른다. 당장 모든 일본인이 열도에서 ‘탈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일본행 항공권이 쌀 때 일본 관광을 다녀오면 좋다는 이들도 많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떠오른 일본 방사능 문제는 지금 그 누구의 말을 들어도 석연찮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무엇이 진짜이고 거짓인지 가리기 어렵다. 정보의 진실을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많다.

직접 보면 어떨까. 누구의 말도 못 믿겠다면, 두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 많은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있잖은가. 고재준 FT랩 대표가 전자파를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EM 체커’와 방사능 계측기 ‘스마트 가이거’를 개발한 까닭이다.

ft_4_600

△ 고재준 FT랩 대표

“방사능 문제는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아요. 적어도 원자력 발전소가 존재하는 한은 계속 우리를 계속 괴롭힐 것이고요. 그래서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이런 제품도 마련해뒀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누구나 언제든지 원할 때 구입해서 쓸 수 있도록 말이지요.”

FT랩에서 개발한 스마트 EM 체커는 생활 속 전자파를 측정할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다. 스마트 가이거는 방사능을 측정해준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스마트폰의 이어폰 잭에 끼우고, 앱 장터에서 응용프로그램(앱)만 내려받으면 된다. 앱은 안드로이드용과 아이폰용 모두 있으니 누구나 쓸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에서도 방사능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수산물의 안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검역 당국에서 방사능 검사를 하고 일본산 수산물의 유통을 제한하고는 있지만, 막연한 공포까지 잡을 길은 없다. 보통 방사능 측정기의 가격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 값싼 계측기도 수십만원에서 100여만원을 호가한다. 방사능 계측기는 일반 사용자를 위한 제품은 아니다.

FT랩이 개발한 스마트 가이거는 크기가 어른 손가락 한 마디 정도다. 들고 다니기 편리하게 디자인됐다. 스마트폰에 연결해 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방사능 측정기에 대한 사용자의 부담감을 해소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싸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3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이 싼 점은 좋지만, 계측 성능은 어떨까. 기존 고가 장비와 비교해 크게 떨어지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있으나 마나다. 측정 성능에 관한 고재준 대표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수십만원 짜리 장비와 비교해 같거나 오히려 더 나은 성능을 냅니다.”

ft_5_600

△ GM가이거밀러 튜브 방식 측정기. 실리콘 반도체형 측정기. ‘스마트 가이거’(왼쪽부터)

스마트 가이거가 방사능 계측기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가격도 낮춘 비결을 알아보려면, 우선 방사능 계측기의 원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방사능 계측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GM가이거밀러 튜브 방식과 반도체 센서방식이다.

GM가이거밀러 튜브 방식은 가스 튜브에 고전압을 걸고, 감마선이 지나가면 방전이 일어나도록 한 원리다. 방전될 때마다 방사성 붕괴를 측정한다. 만들기도 어렵고, 가격도 100만원대로 비싸다. 민감도나 신뢰성은 높은 편이다. 넓은 면적에 반응 속도도 빠르다는 점에서 일부 특수 영역의 산업용으로만 쓰인다. 작게 만들기 어려워 개인이 쓰기에는 어렵다.

반도체 센서 방식은 말 그대로 실리콘 반도체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반도체는 구조적으로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붙여 만든다. 이 접합면을 ‘PN 접합(정션)’이라고 부르는데, 감마선이 PN 접합부로 입사하면 전류가 흐르는 원리를 이용한 기술이다. 반도체에 미약한 전기적인 이벤트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를 감지해 방사성 붕괴를 측정하는 원리다. GM가이거밀러 튜브 방식 계측기와 비교해 반도체 방식은 값이 싸다. 크기도 작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개인용 장비도 수십만원을 호가하고, 수치를 표시해주는 반응 속도도 느린 편이다.

스마트 가이거도 반도체 센서 방식을 활용한다. 기존 반도체 센서 방식 계측기에는 반도체와 메모리 외에도 디스플레이나 제품 케이스 등이 포함된다. 생각해보면 디스플레이와 메모리, 프로세서 등은 이미 우리 손안에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 가이거가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비결은 기존 계측기에 포함된 각종 부품을 스마트폰으로 대체한 덕분이다. 스마트 가이거 안에는 방사성 붕괴를 측정하기 위한 실리콘 반도체만 들어 있다. 반도체가 측정한 값을 스마트폰 화면이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고재준 대표가 기존 계측기와 비교해 스마트 가이거의 성능을 자신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짜리 전문 산업 장비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실제로 FT랩 사무실에 준비된 우라늄 물질에 계측기 성능을 시험해봤다. 가격이 100만원 정도인 GM가이거밀러 튜브 방식 계측기와 기존 반도체 계측기, 스마트 가이거 모두 방사성 붕괴를 잡아냈다. 오히려 30여만원 정도인 기존 반도체 센서형 계측기보다 스마트 가이거의 계측 속도가 빨랐다.

보통 자연 속에 존재하는 방사능 수치는 시간당 0.1~0.3마이크로시버트. 음식물의 방사능 허용치는 1Kg당 100베크렐(Bq)이다. 시버트 단위는 방사능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말하고, 베크렐은 방사능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뜻한다. 스마트 가이거는 측정 단위를 시간당 마이크로시버트 단위로 표시해준다.

ft_2_600

△ 인체 유해 기준치보다 약한 방사능을 내는 우라늄으로 ‘스마트 가이거’를 실험해봤다.

ft_6_600

△ ‘스마트 EM 체커’는 전자파 측정 도구다.

“어떤 스마트폰을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계측 오차범위는 5% 내외를 유지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끊임없이 튜닝하고 있어요. 아이폰은 제품 종류가 많지 않아 오차율이 더 적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5~10% 내외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스마트 가이거를 쓰려면, 의심이 가는 물체에 스마트 가이거 표면을 밀착시키는 것이 좋다. 고재준 대표는 대표적인 예로 생선의 아가미 부위를 들었다. 생선의 내장도 방사능이 축적되기 쉬운 부위다. 고가형 방사능 측정기와 달리 스마트 가이거는 매우 좁은 범위의 방사능밖에 잡아낼 수 없는 까닭에 최소한 3분, 여러 차례 측정을 시도하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이라고 고재준 대표는 말했다.

원래 FT랩은 계측기를 개발하는 업체는 아니었다. 디스플레이 생산 설비 중 핵심 시설을 국내 대기업 제조시설에 제공하는 기술업체다. 고재준 대표가 생활형 계측기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한 친구의 투덜거림이 계기가 됐다.

“지난 여름 대학 동기들끼리 모였는데,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방사능 측정기가 너무 비싸다고. 싸고 작게 만들 수 없느냐고 말이지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어요.”

말하자면, 스마트 EM 체커와 스마트 가이거는 고재준 대표와 FT랩의 곁가지 사업인 셈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IT와 전자물리학의 경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연구원의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산물이기도 하다.

보통 휴대용 방사능 측정 장비는 핵종을 구별하지 못한다. 방사능의 알파, 베타, 감마선 중 감마선만 검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스마트 가이거도 마찬가지다. 자연방사능을 차폐하지 않고 식품의 방사능 오염도를 특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만큼 휴대용 방사능 측정 기기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방사능을 검출할 수 있다면, 적어도 몰라서 피해를 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3만원 짜리 스마트폰용 방사능 측정 도구와 전자파 측정 기기가 갖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고재준 대표는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생활형 측정기를 계속 개발할 예정이다. 미세먼지나 햇빛에 포함된 자외선, 수질오염도 등이 후보에 올라 있다.

“누구나 방사능을 쉽게 측정할 수 있다면, 방사능을 취급하는 이들이나 식품 생산자가 국민을 함부로 농락할 수 없지 않겠어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면, 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바로 그 점에 스마트 가이거의 방점이 찍혀 있어요.”

△ 우라늄 방사능 측정 실험 동영상 보기(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