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특히 어떤 혁신이나 창조가 가져올 수 있는 중장기 효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주요한 혁신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효과를
‘벌새효과(hummingbird effect)’라는 이름으로 잘 정리한
책이 선을 보였습니다.
스티븐 존슨,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6가지 혁신), 프런티어
1. 혁신적인 발명이 합리적인 예상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에 훨씬 폭넓은 변화를 끌어냈다.
혁신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지만,
그 혁신이 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까지 끌어내게 된다.
이런 변화의 양상은 진화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2. 요한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독서라는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어 많은 사람이
원시(遠視)라는 걸 알게 됐고, 그로 인해 안경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안경의 수요가 증가하자 렌즈를 제작하고 실험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그 덕분에 현미경이 발명됐다.
또 현미경 덕분에 우리는 우리 몸이 극소한 세포로 구성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꽃가루의 진화가 벌새의 날개 구조를 바꿔놓을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듯이, 인쇄술의 발명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세계를 세포 차원으로까지
확대할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3. 언뜻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카오스이론에서 탄생한
‘나비효과’의 예로 보일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나비가 날개짓하면 미국 동부해안에 허리케인이
불어 닥친다는 것이 나비효과다.
하지만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비효과는 임의적이고 불안한 속성을 띠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실질적으로 찾아낼 수 없다.
그러나 꽃과 벌새 사이에 작용한 관계는 다르다.
꽃과 벌새는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기관계는 물론 요구와 특성까지
완전히 다른 유기체이지만, 꽃이 벌새의 해부학적 특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
4. 이 책에서는 이처럼 영향이 이상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결과, 이른바 ‘벌새효과’를 불완전하게나마 다룰 것이다.
한 분야의 혁신, 혹은 일련의 혁신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속한듯한
변화를 결국에는 끌어낸다.
5. 벌새효과는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예컨대 지난 30년 동안 계속된 인터넷 혁명에서 보았듯이
에너지나 정보의 공유가 크게 증가함으로써 지적, 사회적 경계를
쉽게 넘어버리는 변화의 파도가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든 경우처럼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벌새효과가 있다.
6. 반면 인과관계의 흔적을 뚜렷하게 남기지 않아
파악하기 힘든 벌새효과도 있다.
시간, 온도, 질량에 관련된 어떤 현상을 판단하는 우리의 능력이
크게 약진할 때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한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7. 역사에서 벌새효과를 관찰해보면,
사회의 변화가 언제나 인간의 힘이나 의사결정에서 직접적으로
비롯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다.
물론 정치 지도자나 발명가, 혹은 저항운동가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계획 하에 의도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사회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미국 정치 지도자들이 1956년 고속도로 연방지원법을
통과시킨 덕분에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시스템이 갖춰질 수
있었다.)
8. 그러나 아이디어와 혁신이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들이 거실과 사무용 건물을 시원하게 하려고
했을 때 아메리카 대륙의 정치 지도를 개편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테크놀로지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의
정착지 분포가 극적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로 의회와 백악관을 차지하는 사람들까지 바뀌었다.
또한 구글이 주도한 검색도구의 효율성은 미국 전역에서 지역 신문의
광고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9. 구글의 창립자는 물론 어느 누구도 이런 결과가 닥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웹 광고의 증가가 종이 신문 언론이라는 기본적인 공공자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있는 건 분명하다.
실제로 테크놀로지의 진전이 있을 때마다 이런 격론이 있었다.
예컨대 자동차의 등장으로 우리는 말을 이용할 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나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사라진 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는가?
또 에어컨의 등장으로 우리가 사막에서도 살 수 있게 됐지만
물을 공급하기 위해 어떤 비용을 치뤘는가?
-출처: 스티븐 존슨,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프런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