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대작, 김용규의 데칼로그

도일 남건욱 2015. 10. 21. 08:32
“십계명은 구속의 명령이 아니라 자유의 선언이다.”
지난 해인가 ‘생각의 시대’라는 책을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저자 김용규 씨가 집필한 책인데
해박한 지식을 잘 엮어서 쓴 멋진 책입니다.
2002년에 펴낸 책을 이번에 개작해서 낸 책이
‘데칼로그’(부제: 김용규의 십계명 강의)입니다.
이 책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왜, 인간은 안식을 구하기 힘든 것일까?”
신학적인 책이면서도 동시에 철학적인 책이라서
기독교 신자가 읽어도 좋고 신앙을 갖지 않은 분들도
읽을 만한 멋진 책입니다.
엄청난 내공을 갖지 않은 저자라면 도저히 쓸 수 없을 만큼
잘 쓴 책입니다. 재야에도 이런 멋진 작가분이 계신 점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십계명이 ‘~하지 말라’, ‘~하라’라는 형식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우리를 규제하고 억합하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계명들은 흔히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내려졌다는 사실을 우선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십계명은 오히려 탐욕이라는 족쇄로 옭아매어 결국에는
파멸로 이끄는 ‘죄(罪)의 마성’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롭게 살게 해주는 ‘열 개의 열쇠’라는 것도 차츰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십계명 안에는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고 선포했던 바로 그 자유에서 오는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하려는 신의 일관된 의지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음을 이내 알게 될 것이다.
3. 그뿐 아니다.
이 책은 폴란드가 낳은 천재 영화감독인 키에슬로프스키가 각 계명을
주제로 해서 만든 열 편의 연작영화 <데칼로그>를 매개로 삼아
전개했다.
그가 십계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영화감독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각 계명에 담긴 심오한 주제들을 현대인의 삶을
통해 영상화하는 데에 빛나는 성취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 그의 작품은 각 계명들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일상적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모형(model)이다.
4. 십계명은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자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살게 한 신이
이번에는 보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 곧 인간의 죄성으로부터
해방되는 영혼의 자유를 선사하려고 내린
‘자유의 선언’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은 우리에게 죄로부터 해방된 삶이
가진 자유와 기쁨을 부여하려는 신의 일관된 의지의 
표출로 보아야 합니다. 
5. 그래야만 십계명이, 계명을 내리면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애굽기 20:2)라는 말로써 자신이 ‘자유를 부여하는
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밝힌 신의 의도와 합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과 복음을 부단히 구약과 연결하던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라고
선포한 말이나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갈라디아서 5:13)라고
교육한 바울의 입장과도 모순 없이 연결되지요.
6. 요약하자면, 노예로 살던 땅 애굽에서 그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시민적 또는 사회적 자유’를 부여했던 신이
이번에는 그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존재의 자유’를
부여하려고 십계명을 주었다는 것이 이 책이 내세우려는 주장입니다.
때문에 본문은, 십계명은 인간을 더욱 죄에 빠뜨리는 ‘죽이는 문자’도
아니고, ‘시민적 사회적 자유의 보존을 위한 선언’도 아니며,
오직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선포’라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은 우리가 ‘존재의 자유’라 이름 붙인
영혼의 자유를 위한 선포이며, 이 같은 해석이 기독교 교리에
가장 합당하다는 거지요.
-출처: 김용규, (데칼로그), 포이에마, 2015.
신앙적인 색체가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지만
근래에 읽었던 책 가운데 인간이란 존재가 궁극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숙제들에 대해 그 원인과 대책을
잘 풀어쓴 책입니다.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파스칼, ‘팡세’
'그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신을
-금전의 신, 사업의 신, 성공의 신, 권력의 신, 현상유지의 신 
그리고 한 주일에 한 번씩 유대교나 기독교의 신을-
섬기고 있다고 보고할 것이다.
-존힉 '종교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