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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애완동물 보철] 첨단기술로 만든 개·고양이 의족

도일 남건욱 2015. 12. 30. 14:47

[진화하는 애완동물 보철] 첨단기술로 만든 개·고양이 의족 

탄소섬유, 3D 프린팅까지 사용 … 수의학교 교육 과정에 동물 보철 도입도 

스튜어트 밀러 뉴스위크 기자

지난 9월 말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동물구조팀은 주인에게 학대당하던 저먼 셰퍼드 노아를 구출했다. 노아는 곧바로 VERGI 동물 응급병원으로 후송됐다. 그 병원의 새러 드워스트 박사는 “노아가 당한 학대와 방치의 증거를 보자 치가 떨렸다”고 말했다. 노아는 오른쪽 앞발 끝에 발바닥과 털이 없었다. 그 부분의 뼈가 드러나고 조직이 감염된 상태였다. 드워스트 박사는 “처음엔 노아의 어깨 부분을 절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절단은 심하게 부상한 개의 표준 치료법이다. 그때 한 동료가 애완동물 인공 다리와 보장구(PALS)라는 회사를 설립한 빌 비클리에게 연락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비클리는 10년 넘게 사람의 의족과 의수를 연구했다. 그러다가 3년 전 동물 보철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2000년대 초 새로 등장한 분야였다. 콜로라도주에서 오소페츠를 설립한 마틴과 에이미 카우프만 부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에서 K-9 오소틱스 앤 프로스테틱스를 설립한 제프 콜린스, 버지니아주에서 애니멀 오소케어를 설립한 데릭 캄파냐가 동물 보철의 선구자였다.

가장 잘 알려진 회사는 오소페츠다. 2002년 카우프만 부부의 사촌이 사랑하던 애완견 슈나우저가 뇌졸중에 걸려 잘 걷지 못해 보장구가 필요했다. 그들은 차고에서 다리 지지대를 만들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오소페츠를 전업으로 삼았다. 현재 직원이 21명이며 한 달에 치료하는 동물환자가 200마리다. 그들은 동영상, 사진, 수의사가 제공하는 진료 기록을 사용해 남미·유럽·아시아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0년대 초 새롭게 등장


▎세 다리로 어렵게 걷는 개를 보다가 의족이나 보장구로 자연스럽게 걷는 개를 보 면 보철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비클리 대표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부분의 동물 보철은 무겁고 투박해 자연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클리 대표는 오랜 실험 끝에 탄소섬유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강하고 유연하며 다리를 절단한 달리기 선수들의 블레이드에 사용하는 소재다. 비클리는 여러 업체에 연락했지만 그들은 말도 안 된다며 웃어 넘기거나 대규모 제작만 가능하며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드보테크’라는 회사의 대표 한스 드보에게 음성 메일을 남겼다. 그 회사는 탄소섬유를 사용해 올림픽용 봅슬레이와 군용 비행기, 고급 스포츠카를 제작하는 일에 참여한다. 그가 소규모 업체를 추천하거나 소개해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드보 대표는 “난 개 세 마리를 기르는데 동물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비클리에게 ‘비용은 나중에 걱정하고 한번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고 돌이켰다. 그들은 여러 차례의 실험 끝에 몸집에 기초한 탄성률을 계산해 개의 다리 역할을 하는 탄소 섬유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뒷다리의 경우 윗부분은 덜 유연하고 끝부분은 좀 더 유연하게 처리했다. 그 다음 부드러운 착지를 위해 다리 끝에 실리콘젤을 주입한 컵 패드를 부착했다.

이 분야의 다른 선구자들도 혁신에 뛰어들었다. 오소페츠는 개의 다리를 스캔해 3D 모델을 만든다. 그 다음 기계를 사용해 발포 고무로 최종 형태를 만들고 플라스틱으로 진공 밀폐한다. 비클리 대표는 2년 만에 지역사회에서 알려졌다. 그는 개의 보철이 전문이지만 동물원의 플라밍고의 무릎 보장구와 양의 보철 다리를 만들기도 했다. 개 의족 제작에 약 1500달러, 연간 유지비로 100달러가 든다(개는 의족을 연결하는 끈을 자주 물어 뜯는다). 휴스턴의 수의사 브라이언 빌 박사는 “우리가 동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그가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말했다. “탄소섬유는 유연하고 더 자연스런 느낌을 준다. 개는 탄소섬유 의족으로 실제로 뛰어다닐 수 있다.” 빌 박사는 비클리 대표가 만드는 보장구(예를 들어 주문형 지지대)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보철이 정교한 해결책이라면 보장구는 수술하지 않고 동물이 걸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관련 기업들은 사업의 80∼90%가 보철이 아니라 보장구라고 말했다).

이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라 정식 교육이나 면허 프로그램이 없다. 애완동물의 보장구와 보철의 효과에 관한 연구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빌 박사는 “대다수 수의사는 동물의 다리를 절단한 뒤 나머지 세 다리가 튼튼해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철의 효과를 알면 그런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드워스트 박사는 “개가 세 다리로 걸어다니다 보면 관절염에 잘 걸려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2009년 수의학을 배울 땐 보철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노아를 처음 봤을 때 곧바로 절단을 생각했다.

다행히 노아가 찾아 왔을 때 드워스트 박사는 새로운 보철 기술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현지의 동물구조단체는 노아의 새로운 다리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보철에 관한 인식을 제고하는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벌였다. 드워스트 박사는 보철 다리를 부착할 수 있도록 노아를 수술했다. 지금 노아는 네 다리로 걸어다닐 수 있다.

수술 없이도 걷게 만드는 동물 보장구

비클리와 캄파냐, 카우프만 부부는 학술대회에서 수의사들에게, 애완견 클럽과 엑스포에서 개의 주인에게 그런 정보를 전달한다. 에이미 카우프만은 “5년 전보다 인식이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일부 수의학교는 교육 과정에 동물 보철을 도입했다. 캘리포니아대학(데이비스 캠퍼스) 부속 동물병원의 통합의학 서비스 책임자 제이미 페이턴 박사는 학생들이 개와 고양이만이 아니라 가축의 보장구와 보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실습도 한다고 말했다.

페이턴 박사는 미국 재활전문 수의사 협회에서 동물 보장구와 보철에 관한 정보를 학계에 알리는 위원회에서도 활동한다. 카우프만 부부는 동물 보장구와 보철에 관한 교과서를 집필했다. 그 교과서는 내년부터 사용될 예정이다. 에이미 카우프만은 “새 교과서가 수의학교에서 가르치는 표준 프로토콜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턴 박사는 “교과서도 중요하지만 실제 차이를 보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 다리로 어렵게 걷는 개를 보다가 의족으로 자연스럽게 뛰는 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 스튜어트 밀러 뉴스위크 기자 / 번역=이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