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에 관한 책들 중에서
(크리에이티브 마인드)(에코리브르)에서 나온 책을
여러번 읽어도 흥미로운 책입니다.
창조성 분야에서 리더에 해당하는 20인의
개인적 체험을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 가운데 작가이자 교수인 에리카 종(Erica Jong)의
글의 일부분을 보내드립니다.
연휴에 편안한 읽기 되시길 바랍니다.
에리카 종 Erica Jong
작가이자 교수인 에리카 종은 미국의 명성 높은 여자 단과대학인
바너드대학교를 졸업하고 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문학을 전공했다.
#1.
창조성은 굉장히 신비스럽다.
창조적인 사람은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이 무심코 받아들이는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다.
우리는 판에 박힌 학교 교육을 받고 정해진 일상
속에서 자라면서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려니
하고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간혹 모든 것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성향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일상에 의문을 제기할뿐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아주 구체적이며 권위 있는
인물이 강요하는 방식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자기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눈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나도 모른다.
#2.
화가였던 할아버지는 산책을 나가면 꼭 스케치를 하셨다.
센트럴파크를 걷다가 동물원에 들러 동물을
스케치하는 식이었다.
지하철을 타면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그렸다.
왜 그러셨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세상에
대해 대단히 또렷한 이미지가 있었고,
머릿속에 펼쳐지는 그 이미지들을 종이에
옮겨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일들을 모두 일상적으로 여기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작가인 앤서니 버제스(<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는 작곡가이기도 했는데,
날마다 일정하게 곡 몇 마디와 글 몇 줄을 반드시 창작했다.
그것이 음악이든 에세이나 시나리오나 오라토리오나 소설이든
장르에 관계없이 그는 매일 매일의 삶을 기록할 필요를 느꼈다.
이런 창조 활동의 동기는 심지어 그 행위 당사자에게도 신비롭기만 하다.
#3.
내 경우에 창조성을 유발하는 힘은 순전히 근성인 것 같다.
말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시간이 멈춰버리는 몰입 상태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100일에 하루 올까 말까 한 그런 날이면
지구상 최고의 축복을 받은 듯하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날은 순전한 고문이어서
마치 내가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계속하는 이유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지상천국에 와 있는 듯한 그 드문 순간들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것이 내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 작업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그 일을 할 때 진정한
내가 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4.
모든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행운은 누려본 적은 없다.
공인된 방식, 말하자면 다른 이들에게서 물려받은
형식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새로운 형식을 고안하는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인정을 받는다.
나는 칭찬과 물러터진 토마토 같은 야유를 반씩 받아왔다.
비난과 혹평은 늘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게 선구자로서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한다.
#5.
내 책들은 전부 그렇다.
글쓰기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모든 책이 철저한
자기 탐구이자 자기 분석이 된다는 사실인데,
작업을 마치고 나면 전혀 몰랐던 면들이 떠오른다.
집필 과정이 아물리 고되다 해도 늘 보람이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창조성’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데
따르는 최대 난관은 일부 창조적인 사람들이
너무도 치졸하고 쩨쩨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남이 안 되기를 바란다.
이른바 ‘샤덴프로이덴(Schadenfreude:남의 불행에 안도감을
느끼며 기뻐하는 마음을 뜻하는 독일어로, 심리학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심보가 팽배하다.
아마도 그런 게 예술가로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일 것이다.
#6.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손꼽히는
테네시 윌리엄스를 생각해보자. 그의 말년에는 작품을
발표하기만 하면 재앙이라는 평이 쏟아졌다.
아서 밀러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와 몇 년간 알고 지냈는데, 그의 작품은 중국,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모든 곳에서 두루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다들 하루라도 빨리 막을 내리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밀러가 세상을 떠나자 갑자기 위대한
극작가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7.
테네시 윌리엄스의 처지도 비슷했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내 작품이 미칠
영향력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건 사람들이 내게 사실을 말해준 다음의 얘기다.
‘아, 이 책은 이러저러한 사람들에게 이렇고
저런 영향을 미칠 거야.’
이런 식으로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글쓰기에 철저히 몰입할 뿐이다.
내 책 중에는 세간의 사랑을 받아서 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있고, 그만큼 팔리지 않은 것들도 있다.
어쨌든 작업하는 동안에은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명과,
그 소명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만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당신이 나를 살렸어요. 당신 덕분에 별종이라는
느낌이 덜해졌거든요. 나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답니다.
나한테 영감을 줬어요.”
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한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어줬다고 굳게 믿는다.
이제 또 다른 작가들이 그 토대위에서 작업을 해나갈 것이다.
-출처: 허보트 마이어스,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강수정 역, 에코리브르, 96~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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