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책에 익숙한 세대로선 모바일 도구로 정보를 취득하는 것과
책으로 정보는 취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세월이 가도 책이 가진 힘은 중요하다고 보는데
세태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이번 배경에는 '가벼움'이란 키워드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은 가벼움을 사랑하는 세대에 대한
글을 보내드립니다.
질 리포베츠키, [ 가벼움의 시대 ](문예출판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1.
과학서의 평균 발행 부수는 1996년에는 500부였던 것이
2007년에는 2400부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매 감소는
고등교육 기관의 연구자들과 교직자들의 수가 매우 크게
증가하는 시점에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호기심의 폭발”인가?
지적 유행의 필연적 변화를 훨씬 넘어설 만큼 전례가 없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사실 우리는 18세기와 19세기에 시작된 긴 주기에서 벗어났다.
즉 사상의 세계의 찬란한 약속으로 가득 찬 ‘영웅적’인 순간이
이제 끝난 것이다. 그것은 현대적 환멸의 역학에서 추가적인
한 단계이고, 또한 무거운 것에 대한 가벼운 것의 승리를
표현하는 한 단계다.
#2.
또 다른 현상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잘 보여준다.
지난 수십 년 이래로 그것이 예언적인 것이든 비판적인
것이든 참여적인 것이든 간에, 지적인 것은 18세기와
19세기부터 차지하고 있던 상징적 중심성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사실, 지식인들의 힘은 미디어의 힘에 밀렸다.
사회적 토론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미디어이고,
전통적으로 항상 발언권이 가장 세다고 인정받아
온 지식인 대신에 유명 인사를 내세우는 것도 미디어다.
#3.
지금은 TV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지식인들보다
훨씬 유명하다. 지성계의 중요 인물은 계속해서 세계의
큰 사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개진할 수 있고,
심지어는 항상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되었다.
오늘날의 문화적・사회적 생활에서 지식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지식인은 ‘권위를 인정받았고’, 지금도 “선도자”와 동의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사회적 위신을 누리고 있을까?
우리는 스타와 축구 챔피언, ‘창조적 인물’을 좋아한다.
지식인들은 더 이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혁명과 민족 이데올로기가 붕괴하고, 사회생활의 극단적
개인화를 야기하는 소비지상주의적이며 미디어적인
가벼움의 시대는 사유 속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가르치고,
세상의 불의에 항의하려는 양심적 지도자와 위대한
안내자들의 요구를 좌절시켰다.
#4.
더 광의적으로 말하면 지적 생활, 그 자체는 이제 삶의 모델로서
인정받을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발레리가 말했던 ‘정신의 가치’는 무너지는 반면 비즈니스와 돈,
스포츠 오락, 여가 활동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한 가지 생각이 끈질기게 이어진다.
이 모든 이 성의 복잡한 사슬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금 여기서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면 도대체 뭐가
중요하냐는 말이다. 그래서 치유 서적과 기술 서적들이
쏟아지면서 우리의 이해를 돕기보다는 우리에게 제기되는
직접적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인간 세계의 궁극적
진실을 전해 준다고 하는 열쇠에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 속에
각자의 삶에 직접적으로 유용한 것 속에 있다.
사람들은 이론적인 질문보다는 실용적이며 개인적이 삶과
연관된 해결책을 더 원한다. 이제 가벼운 사고 체계를 신성한
것으로 만드는 도구주의적 지식과 위안을 주는 철학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는 대중 서적과 사진집, 철학 ‘요약집’ 가이드북,
어린아이들이 볼 수 있는 짧은 철학 교과서 등이 늘어난다.
심지어는 권위 있는 주간지까지 ‘올여름의 스타,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
같은 종류의 ‘위대한 철학자’ 시리즈를 정기적으로 선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화된 지적 감퇴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해서 조금만,
그리고 빨리 알고 싶어 하며, 아무 노력 없이 복잡한 것에
접근하고, 게다가 즐거움도 느끼고 싶어 한다.
가벼운 것의 문명에서는 지적 호기심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빨리 되고’. ‘골치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존재한다. 심지어는 고급문화와의 관계도 가벼운 것의 틀
속에서 주조된다.
-출러: 질 리포베츠키, [ 가벼움의 시대 ], 이재형 역, 문예출판사, 20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