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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값 거품 논쟁] 92년 대선 땐 “반값 이하도 가능”

도일 남건욱 2006. 2. 16. 13:41
[아파트 값 거품 논쟁] 92년 대선 땐 “반값 이하도 가능”
다시 보는 故 정주영 회장 공약… 역시 땅값 내리는 게 열쇠

14대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면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하겠다' 는 공약을 내건 故 정주영 국민당 후보.

1992년 초 어느 날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 사무실에 전화가 폭주했다. “정말 아파트를 절반 값에 분양하느냐”는 문의전화였다. 정주영 당시 국민당 대통령 후보가 ‘아파트 반값 공급’을 선거 공약으로 내건 직후다. 때마침 현대산업개발은 전라남도 진주시 평거동에 아파트 분양 계획을 세우고 분양 광고를 낸 터였다. 직원들은 밀려드는 문의전화에 “정부가 땅값을 내려줘야만 가능하다”고 해명하느라 업무를 못 볼 지경이었다고 한다. ‘아파트를 절반 값에 살 수 있다’는 말은 그렇게 서민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재까지 없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파트 반값’ 논란이 한창이다. 돌아보면 선거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주택(아파트) 가격 인하’였다. 정주영 후보가 그랬고, 17대 대선에선 이회창 후보가 ‘아파트 값 30% 인하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몽준 후보도 부친이 내세웠던 공약을 다시 내걸었었다.

92년 정주영 후보가 들고 나온 ‘아파트 반값 공약’은 대선의 핫 이슈였다. 정 후보는 이 논쟁이 불거지자 “실은 반값보다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지만 유권자들이 너무 황당하다고 외면할지 몰라 그냥 반값이라고 한 것(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 중)”이라고까지 했다.

그의 주장은 간단했다. 토지개발공사가 얻는 토지개발 이익에서 30%, 인허가 관련 로비 비용에서 15%, 원가 절감 및 공기 단축에서 10%를 감축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 후보의 공약이 가능한가’를 놓고 찬반 논쟁은 뜨거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아파트 분양가가 ‘상당히’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 전 국민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 후보의 얘기는 ‘공약’보다는 ‘고백’에 가까웠다. 그는 유세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가 아파트를 지어봐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때문에 역으로 대선 경쟁자들에게 “그러면 그동안 현대건설이 폭리를 취해왔다는 말이냐”는 역공을 받아야 했다. 정 후보는 특히 땅값이 분양가를 부풀리는 주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유세를 통해 “토지개발공사가 국민을 상대로 땅장사를 벌여 막대한 눈먼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며 “땅값에서 줄어드는 비용만으로도 큰 절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후보의 낙선으로 ‘아파트 절반 값’ 얘기는 덮였다. 정치 공방 속에 객관적인 검증 절차까지 함께 묻혀버렸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공급하는 상암동 아파트의 분양수익이 분양가의 40%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고 정주영 회장의 ‘공약’이 새삼 재조명을 받았다. 실제로 91년 한국토지공사의 당기 순이익은 9000억원이었다. 정 회장은 토공이 얻는 이 이익을 당시 공급된 아파트 공급 물량으로 나눠보고 “토지개발 이익 30% 절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택지개발권을 민간에 이양해 한국토지공사가 땅장사를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도 여러 시민단체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물론 토공이 얻는 수익의 일정 부분이 아파트 건설 지역의 도로, 상수도 등 기반시설에 재투자된다 해도 이익이 과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아직도 의견은 엇갈린다. 분양가를 대폭 낮춰야 한다는 측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그 반대편에선 “이론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주현 건국대 교수(부동산대학원장)는 “대부분 공영택지 개발이 민간토지를 수용해서 하는데, 토지보상비를 생각할 때 얼마나 토지비용을 낮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 재정이 충분하다면 어느 정도 낮출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