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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서 나타난 조세저항 정부·여당은 ‘진퇴양난’

도일 남건욱 2006. 7. 4. 01:05
선거서 나타난 조세저항 정부·여당은 ‘진퇴양난’
서민층까지 ‘노무현 정부=중과세 정부’ 인식 확산
많은 사람은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를 ‘표를 통한 조세 저항’으로 해석한다. 정부는 원래 “가진 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보면 가진 자만이 반발한 게 아니다. 서민층까지 현 정부의 세금정책 등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측은 가는 방향은 맞는데 언론들이 협조하지 않고, 국민이 알아주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여 정부가 추진했던 조세제도를 손볼 움직임이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다.
전문가들은 세금을 투기 잡는 수단으로 생각한 어설픈 정책이 오늘의 혼란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대책은 근본적으로 수요공급의 경제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된다. 그러나 정부는 세금폭탄으로 응징하듯 투기를 잡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부동산 투기도 못 잡고 세금 시스템만 혼선을 빚고 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 측은 기존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여당은 세금을 둘러싸고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우리의 세금 시스템이 왜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를 다각적으로 심층 분석했다. 편집자


'세금은 오리털 뽑듯이 거둬라’는 말이 있다. 털 하나씩 살살 뽑아야 오리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세금도 그렇게 거둬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일부 조세정책을 보면 아예 오리털을 한 움큼 잡아 뽑은 꼴이다. 비명이 새어나오고, 저항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노무현 정부 들어 세금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 1인당 조세부담액은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에 308만원에서 지난해 352만원으로 늘었지만 세무학자들조차 수긍하는 수준이다. 인구 증가는 둔화되고 경제 규모는 커지는데, 조세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조세부담률(국민소득에 대한 조세 총액의 비율)은 전년 대비 0.4%포인트 올라 20.2%에 달했지만 2002년(22.7%)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실제로는 오히려 낮은 것으로 봐야 한다.
한편 국민부담률로 살펴봐도 전문가들이 말하는 적정수준을 넘긴 것도 아니다. 2004∼2005년 동안 약 1%포인트 올라 25.6%였지만 일반적으로 보는 적정수준(25.7%)을 넘지는 않았다. 국민부담률이란 국내총생산(GDP)에서 세금과 사회보장성 부담금(국민연금·건강보험료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폭탄식’ 세금이 문제

문제는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보유세 등을 갑자기 그것도 한꺼번에 대폭 올린 것이? 이 때문에 정부가 과도한 증과세 정책을 펴고 있다고 국민이 느끼고 있는 셈이다. 재경부의 한 관료는 이렇게 말을 했다. “몇 년 사이 몇억원이 오른 아파트 몇 채 가진 사람이 세금에 불만을 갖는다면 모르겠지만 서민층까지 조세저항에 가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정부의 홍보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근로자의 절반, 자영업자의 절반 정도가 세금을 면제받고 있는 실정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부가 지난해 처음 신설한 종부세 대상(공동주택+단독주택)을 따져보면 전국 1301만 호 주택의 1.2%인 15만8000여 호에 불과하다. 양도세 역시 1가구 1주택인 약 91%의 실수요자는 양도세가 강화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납세자의 상위 20%가 근로소득세의 75%, 종합소득세의 90% 정도를 납부하고 있다. 근로소득자의 51%, 자영사업자의 48%는 아예 근로소득세나 종합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다.

정부로서는 억울할 일이다. 그래서 정부 내에서 조세정책 홍보가 실패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타깃으로 삼았다는 상위 2% 외에도 대다수 국민이 ‘증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책이 많았던 것을 간과하기는 힘들다. 주택 공시가격 인상으로 2007년까지는 부동산 가격과 상관없이 세금은 자동으로 오르게 돼 있다. 공시가격은 계속 인상되고 과표적용률도 인상되는 상황에서 집값 상승이 없어도 보유세와 재산세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이뿐이 아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신용카드 세제 혜택에서 소득공제율을 20%에서 15%로 인하하도록 소득세법을 개정했다. 신용카드 공제와 의료비 공제의 이중공제 금지 등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이 아니더라도 세금 감면·비과세 축소 등 ‘잘 보이지 않는 증세’는 계속돼 왔다.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1주택 비과세 폐지, 소주세율 인상, 주식매매 차익 과세, 2003년 인하됐던 법인세율 재인상 등 국민이나 기업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세금 이슈가 계속 터지면서 ‘노 정부=증세 정부’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린 실정이다.

세정 불신부터 없애라

5·31 선거로 나타난 민심 이반으로 정부의 조세정책은 크게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 의원들이 정부 조세정책을 비난하고 나서고, 정부도 이대로는 정권 재창출은 요원하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한덕수 부총리는 지난 22일 국회 재경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을 올해 안에는 정책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은 정부가 올 상반기 정책화를 목표로 작성했다가 지난 2월 언론에 유출되면서 뭇매를 맞았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6월 중 발표해 하반기 정책화하겠다던 계획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정부가 마련한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은 학자들이 주장해 온 세제 개혁 방향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일부 언론이 늘어날 세금에만 초점을 맞춰 ‘조세 저항’이 일게끔 호도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이 개혁 방안의 큰 틀은 이런 것이었다.

2009년까지는 소득세, 재산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 인상은 하지 않겠다, 경제 성장에 의한 자연 세수 증가를 유도하겠다, 복잡한 비과세·감면 제도를 축소하겠다, 신규 감세 정책 억제로 세수를 늘리겠다. 또 자영업자 등 과세자 비율을 확대하고, 과세체계 및 신고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대신 1~2인 가구 추가 소득공제를 폐지하고, 현재 14개의 특별 공제 조항 대폭 축소, 비과세·세금 우대저축 축소, 세무조사 비율 확대, 주식양도 차익이 면제되는 소액주주 범위 축소, 파생금융상품에 거래세 또는 소득세 부과, 사설학원에 부과세 10% 징수 등을 통해 세액을 늘려가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조세체계는 너무 복잡해 ‘국민이 설령 세금을 다 내고 싶어도 다 알지 못해 못 내는 구조’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세금을 내는 과세자 비율이 너무 낮아 조세 형평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 소득세 및 법인세를 감면해 준 다음, 감면된 세금 중 농어촌특별 세목으로 20%를 다시 거둬가는 불합리한 과세방식이 여전하다.

국민 절반 정도가 세금을 안 내는 조세 불평등, 낮은 과세 포착률도 고착된 숙제다. 자세히 뜯어보면 정부가 마련했다는 ‘중장기 조세 개혁 방안’은 사실상 증세 내용이 다수 포함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전 국민이 반발할 수준은 아니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은 정책적으로 욕할 것이 못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취지를 국민이 이해하게끔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부 지나친 세금 정책으로 서민·중산층마저 종부세나 보유세 저항에 가담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 정부가 추진했던 조세 개혁은 또다시 정치적 고려에 의해 후퇴한 사례로 남게 됐다. 오히려 일정 소득 수준 이하의 근로소득 계층에 현금을 지급하는 근로소득지원세제(EITC)를 도입하는 등 전형적인 포퓰리즘식 세금 정책까지 들고 나왔다. 세금은 늘리면 욕먹고 감세해도 욕먹는 그런 것이다. 욕 먹었다고, 표 떨어졌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지나친 평등의식이나 빈곤계층을 겨냥한 인기위주의 개혁방안이 득세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이만우 세무학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과세 대상은 확대하고 세율은 낮춰가면서, 복잡한 조세체계를 단순화시켜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아무튼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현 정부의 조세·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가닥을 잡고 방향성을 찾을지가 관심거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