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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전쟁’의 도곡동 네거리] 최정예 멤버들 “부자를 잡아라”

도일 남건욱 2006. 9. 22. 18:07
[‘금융 전쟁’의 도곡동 네거리] 최정예 멤버들 “부자를 잡아라”
도곡동 부근에서만 5조원 쟁탈전…일반 지역보다 점포 2배나 많아

‘타워팰리스 존’ 안에 있는 빌딩 아래를 보면 은행·증권사 지점 등 금융기관 간판이 즐비하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옛말이 있다. 돈이 가는 곳에는 금융기관이 반드시 따라붙는다. 최근 강남, 그중에서도 도곡동이 새로운 부의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각종 금융기관도 ‘실’처럼 도곡동으로 이동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문제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금융기관이 몰린 점. 당연히 경쟁은 과열될 수밖에 없다. 탄천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된 신흥 부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금융전쟁’ 현장을 들여다봤다.
대한민국의 돈은 탄천을 따라 흐른다.” 은행이나 증권사에 근무하는 금융가 사람들이 은밀하게 주고 받는 말 중 하나다. 이 탄천을 따라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남·분당권의 대표 부자들이 살고 있기에 나온 말이다. 도곡동을 끼고 흐르는 양재천도 알고 보면 이 탄천의 한 지류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양재천은 당연히 ‘탄천 범주’에 포함된다.

이 양재천 옆에 있는 동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도곡동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알다시피 도곡동의 대표적인 고급 주거단지가 바로 타워팰리스이고 그 주변에 도곡렉슬, 삼성래미안 같은 고급 아파트가 즐비하게 버티고 있다.

탄천을 거슬러서 분당 쪽 남으로 내려가면 분당의 대표적 부촌인 정자동 주상복합 벨트와 서현·야탑·미금·오리역 지역의 분당 부자들의 거주지를 만나게 된다. 물론 탄천은 오늘도 도곡동을 휘감아 양재천을 만나 한강으로 천천히 흘러들어간다.

대한민국 금융기관들은 이 탄천 변에 사는 부자들의 호주머니를 겨냥해 이 일대에 주력 지점을 전면 배치했다. 이에 따라 도곡역 네거리 일대는 ‘금융권의 최대 전쟁터’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또한 분당의 정자동을 비롯해 서현역 등에 있는 시중은행들은 “은행들이 너무 많고, 경쟁이 너무 치열해 은행 일을 못해 먹겠다”는 말을 이제 스스럼없이 내뱉을 정도까지 되었다.

강남구 도곡동 네거리 도곡역 주변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은 마천루처럼 치솟아 오른 빌딩들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곳의 명물인 69층짜리 타워팰리스에 우선 눈길이 끌리게 된다. 그런데 그 주변을 둘러보면 놀랍게도 수십 개의 금융기관 점포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이색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곳곳에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간판이 내걸려 있어서다.

도곡동 주민 배인주씨는 “길거리에서 발에 채이는 게 바로 은행·증권사 지점들이고, 그래서 어떤 은행·증권사도 쉽게 이용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실제 도곡동 소재 은행·증권 지점 숫자는 다른 지역의 2~3배는 충분히 된다는 게 이곳 금융권 사람들의 얘기다.

도곡역 바로 옆에 있는 고층빌딩인 군인공제회, 아카데미스위트, 삼성엔지니어링본사(글라스타워) 등에는 금융기관 점포들이 한꺼번에 서너 개씩 들어 있어 마치 서울 명동 한복판의 증권빌딩을 연상시킨다. 굳이 이 같은 ‘증권빌딩’이 아니라고 해도 도곡동 각 빌딩에서 크고 작은 은행·증권·보험사 지점들이 어깨를 서로 맞대고 들어서 있어 마치 이 동네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금융타운 같은 느낌이 든다.

‘타워팰리스 존’만 수신액 2조원

실제가 그렇다. 도곡동 한 동네에만 은행·농협·저축은행 점포가 30여 개나 밀집해 있다. 증권사 점포도 15개쯤 몰려 있다. 보험사도 5곳이나 있다. 면적당 금융기관 점포 밀집도로 따지면 다른 곳의 2배가 넘을 것이란 분석이다.

같은 은행 점포가 몇 발자국만 가면 또 나온다. 예를 들어 도곡역 바로 옆 삼성엔지니어링 빌딩에 국민은행 도곡PB센터가 있지만 서쪽으로 700m쯤에 매봉역 바로 옆에 있는 매봉역 지점을 만나게 된다. 다시 서쪽으로 900m쯤 걸어가면 국민은행 양재역 지점을 만나게 된다. 도곡역에서 북쪽으로 300m만 가면 국민은행 도곡렉슬 지점과 만난다. 지점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동네는 똑같다. 모두 다 도곡동이다.

우리은행은 이보다 더하다. 도곡역에 내리면 바로 만나는 아카데미스위트 빌딩에 우리은행이 있다. 도곡역을 중심으로 반경 800m 이내에 무려 6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이 지점들이 물론 모두 다 도곡동에 있다. 다른 지역 같으면 상상하기도 힘든 풍경이다. 도곡동의 우리은행 지점 관계자는 “이곳은 전국 시중은행들이 모두 몰려 와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지역”이라며 “눈을 돌려 창 바깥을 쳐다보면 은행과 증권사를 합쳐 한꺼번에 20여 곳 이상이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곳”이라고 소개한다.

금융기관 점포의 밀집은 도곡역 주변 고층 빌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현재 아카데미스위트 빌딩에는 제일은행을 비롯해 우리은행과 산업은행 지점이 들어와 있고, 푸르덴셜투자증권도 문을 열고 있다. 언뜻 1, 2층만 보면 무슨 금융빌딩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다. 삼성엔지니어링 빌딩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 도곡PB센터 지점을 비롯해 미래에셋증권·현대증권·대우증권이 골고루 들어와 같은 빌딩 내에서 부자손님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수합병(M&A) 투자를 잘하기로 소문난 군인공제회 빌딩도 언뜻 보면 금융기관 빌딩을 연상케 한다. 한국씨티은행이 들어와 있으며, 우리투자증권과 삼성증권도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동네 지점들의 특징은 알짜 부자들을 위한 PB센터가 주류라는 게 특징이다. 참고로 이 세 빌딩은 ‘도곡동의 백미’라는 별칭을 듣고 있다.

초창기 이 동네에는 금융권 지점이 별로 없었다. 하나은행과 씨티은행이 전부였다. 하지만 2002년 말 타워팰리스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이곳은 부자 동네가 됐다. 실제로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거물들과 부자들이 터를 잡으면서 금융기관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타워팰리스 1~3차·대림아크로빌·삼성래미안·우성캐릭터·동부센트레빌·도곡렉슬·현대아이파크 같은 고급 아파트가 인근에 계속 들어서면서 금융기관 점포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돈에 예민한 후각을 가진 금융기관들이 신흥 부촌을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각 금융기관 점포 설립과 함께 최고의 베테랑들이 ‘부자 사냥’에 나섰다.

지금은 이곳이 은행들, 특히 PB점포들 간 국내 최대 격전지가 됐다. 약 50여 곳의 금융기관 점포들이 뜨거운 전쟁을 매일 벌이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이 동네 PB들은 부자들을 만나 상담하고, 이들을 쫓아다니느라 매일 하루해를 다 보낸다.

은행 중에서는 특이하게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도곡동에 PB지점을 내고 지난해 5월부터 영업을 하고 있다. 이 동네 부자들에게 주로 파는 상품은 산업금융채권과 환매채. 주변 시중은행 점포들은 산업은행이 들어올 때 “국책은행이 무슨 도곡동에 지점을 내느냐”면서 탐탁지 않게 여겼었다.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인 만큼 금리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심 긴장했었다는 후문이다. 실제 산업은행 지점은 입점 이후 500억원 수신 실적을 올려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곳의 최동현 지점장은 “도곡동은 금리 경쟁이 워낙 치열해 0.1%라도 더 준다고 하면 손님들이 발길을 돌리곤 한다”고 전한다.

최 지점장은 타워팰리스 2차에서 반경 100m 거리에 있는 이른바 ‘타워팰리스 존’에 있는 10여 개 은행 지점들 수신액은 2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 정자·서현역도 ‘황금 상권’

지난 5월 문을 연 국민은행 도곡렉슬지점은 특이하게 도곡렉슬아파트 단지 내 상가 4층에 있다. 이 지점도 원래는 1, 2층을 원했지만 이 동네 은행자리 경쟁이 치열해 결국 4층으로 올라갔다는 후문이다. 이 상가 2층에는 우리은행이 들어와 있다.

분당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탄천 변을 따라서 길쭉하게 들어선 분당은 부동산 가격이 서울 강남에 맞먹는 수준으로 오르고 있어 주목받는 곳이다. 이에 따라 탄천 변에 있는 분당 정자동과 서현역을 비롯해 야탑·미금·오리역 같은 주요 금융 상권은 분당권 최대의 금융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정자동의 신한PB분당센터의 조인호 PB팀장은 “분당의 경우 양대 금융 중심지로 3년 전부터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정자동 주변과 서현역 주변을 꼽을 수 있다”면서 “분당 부촌의 대표격인 주상복합들이 벨트로 연결된 정자동이 서현동 일대 지점들을 숫자 면에서 압도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기실 정자동과 서현동과 같이 쌍벽을 이루는 금융권이다. 그런데 정자동은 한 술 더 뜬다. 조인호 PB는 “예를 들어 서현역이 점포당 수신액이 최소 1000억원이라면 정자동은 최소 2000억원은 될 것”이라며 은근히 지역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야탑역이나 미금역, 오리역에도 금융권 지점 점포들이 밀집해 있지만 1인당 수신액을 감안하면 이 지역들은 정자동이나 서현동 수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이곳 은행 PB들은 보고 있다”고 전한다.

은행들이 분당 부자들을 잡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지난 6월 외환은행은 서현역 인근에 분당 부자들을 잡기 위해 PB센터를 하나 내고 싶었지만, 적당한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야탑역 인근에 냈다. 다른 은행들은 “원래 외환은행도 분당 부자 1번지인 정자동 지역에 내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 야탑역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부자 손님이 많은 점이나 부자 고객 수준, 이들을 잡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동분서주하는 건 도곡동이나 분당이나 똑같다.

“우리 손님들도 강남 도곡동 정도는 됩니다.” “여기 부자들도 도곡동과 엇비슷할 겁니다. 일단 여기 집값이 도곡동 못지 않습니다.” 분당 PB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정자동은 실제 강남에 버금가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의 벨트로 연결되어 있다.

분당 파크뷰를 비롯해 분당아이파크·동양파라곤·미켈란쉐르빌 등이 바로 그것인데, 파크뷰는 평당 3000만~4000만원으로 타워팰리스와 맞먹는다.

‘많고 많은’ 분당 부자들 덕에 분당 은행들 실적도 만만치 않다. 신한 PB 분당센터는 1년6개월 전 문을 열었지만 수신액이 6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서울 잠실이나 서초 PB센터보다 좋은 실적이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는 “분당을 지방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현동·정자동 지점에 근무하는 은행 직원들의 실적 목표가 매년 가파르게 20% 정도씩 올라가는 것은 역시 도곡동과 같다. 때문에 임대보증금이 도곡동처럼 만만치 않다. 서현역 일대의 경우 통상 평당 전세가가 4000만원인데 센 곳은 5000만원, 좀 빠지는 곳도 3000만원 수준이다.

탄천에 돈이 얼마나 몰려 있나?
“시내 점포 수신액의 2배”

탄천과 양재천 변에 있는 은행 점포들은 부자들 돈을 집중적으로 빨아들이는 ‘흡입구’나 다름없다. 부자들은 대출·외환·부동산·해외부동산·신용카드·예금 같은 모든 은행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손님들이다. 또 거래 단위도 크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꼭 잡아야 하는 최고의 예비 고객이다.

도곡동은 한국 최고의 부촌으로 떠오르면서 ‘한국의 비벌리힐스’로 불리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이 동네 은행들도 만만치 않은 수신액을 자랑한다. 이 동네 제일은행 권영로 PB팀장은“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통상적으로 이 동네 은행 지점의 경우 여신과 수신을 합쳐 통상 2000억~3000억원, 많으면 5000억~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중 수신이 70%에 달할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한다.

도곡동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곳 은행·증권사 지점을 50개로 치고, 지점당 최소 1000억원의 수신 기록을 갖고 있다면 이것만 해도 5조원이나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시내 다른 지역의 은행 지점 수신액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실적이다.

분당 지역 은행들도 수신액이 만만치 않다. 서현동 외환은행 지점 관계자는 “적어도 서현역 일대의 40여 개 은행, 증권사 같은 금융기관들이 점포당 최소 1000억원의 수신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면 이것만 해도 4조원이나 된다”고 분석한다.

정자동 신한은행 조인호 PB팀장은 “분당에 와보면 생각보다 부자들이 너무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고 이곳의 ‘부유한’ 분위기를 들려준다. 이곳 PB들 주장에 따르면 분당을 대표하는 금융상권인 정자동, 서현역·야탑역·미금역·오리역 등지의 인근 금융기관에 몰려 있는 돈만 해도 10조원은 간단히 넘어설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