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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면 ‘대박’, 못 쓰면 ‘쪽박’

도일 남건욱 2007. 8. 29. 19:57
잘 쓰면 ‘대박’, 못 쓰면 ‘쪽박’
천재 금융 기술자들이 만든 첨단 상품…시장 규모 415조 달러 추산
파생상품이 궁금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뉴욕증시는 하루하루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사진은 개장 전 증권 중개인들이 매매전략 회의를 하는 모습.

“파생상품은 첨단의 이기인가, 재앙인가.” 파생상품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로 또다시 국제 금융시장의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 금융시장의 1%(1조5000억 달러) 수준인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만든 것은 바로 파생상품이란 첨단 금융기법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파생상품이란 원자재, 농산물, 환율, 금리, 주식 등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 의해 그 가치(가격)가 결정되는 금융상품을 말한다. 다른 무언가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고 해서 파생상품이라 부른다. 파생상품이 만들어진 이유는 가격 변동이라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국내 수출기업들이 수출대금을 달러로 받을 때 선물환 거래를 하는 것도 이 때문.

예를 들어 국내 수출기업이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일 때 100만 달러어치의 제품을 수출했다고 치자. 수출 대금을 받을 때 환율이 900원으로 떨어졌다면 기업은 1000만원(달러당 100원)의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들은 선물 거래를 이용한다.

제품 납품 시점에 100만 달러를 1억원(달러당 1000원)에 팔 수 있는 선물환 매도를 하는 것이다. 환율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거래라고 해서 선물환 거래라고 부른다. 기업들은 이 같은 선물 거래를 통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파생상품은 기초자산에 따라 크게 상품(Commodity·농산물 및 원자재) 파생상품과 금융(주식, 환율 등) 파생상품으로 구분되고, 거래 형태에 따라 선도·선물 ·옵션·스왑 등 네 가지로 나뉜다.

최근에는 금융기법이 발달하면서 기업의 신용(회사채, 매출채권 등)을 기초로 하는 신용 파생상품, 날씨를 기초로 하는 날씨 파생상품, 파생상품 자체를 기초로 하는 파생상품 등 그 종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지고 있고, 상품구조도 복잡해지고 있다.

파생상품이 처음 시작된 것은 17세기 일본 도쿠가와 막부 시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쿠가와는 지방 제후들을 견제하기 위해 제후들을 1년 중 6개월 이상 수도인 에도에 머무르게 했다. 제후들은 에도에 머무르면서 생활 경비를 스스로 충당해야 했는데 주로 자신의 땅에서 수확되는 농산물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고 한다. 농산물이 수확되면 이를 팔아 빌린 돈을 갚는 일종의 선도 거래를 한 것이다.

파생상품 거래가 국제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848년 미국 시카고 상품선물거래소가 설립되면서부터다. 이후 1971년 금본위제인 브래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각국의 변동환율제가 본격화하면서 파생상품 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각국의 돈 가치가 달라지면서 모든 기초자산 가치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IBS)에 따르면 2006년 12월 현재 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415조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GDP의 8배에 달하는 규모다.

파생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 효과다. 즉 소액 투자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실례로 주가지수선물은 전체 금액의 15%만 있으면 거래가 가능하다. 1억5000만원만 있으면 10억원짜리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 금액이 늘어날수록 전체 거래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파생상품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한 데는 투기성도 한몫했다. 당초 위험 회피를 위해 개발된 파생상품이 오히려 차익거래, 투기거래에 더 많이 사용되면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레버리지 효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반대로 시장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경우 원금, 그 이상을 손해 볼 수도 있다. 파생상품의 투기성과 위험성을 잘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95년 파산한 베어링은행이다.

233년의 역사를 지닌 베어링은행은 직원 단 한 명의 파생상품 거래 실패로 금융권에서 사라졌다. 당시 베어링은행 싱가포르 현지법인인 베어링선물회사의 직원 닉 리슨(92년 부임 당시 25세)은 선물거래로 8억6000만 파운드(13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는 베어링은행의 전체 납입 자본금(4억7000만 파운드)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이 손실로 베어링은행은 결국 파산했고, 단돈 1파운드에 네덜란드 금융보험그룹 ING에 팔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파생상품의 투기성과 위험성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한순간 바보로 만들기까지 했다. ‘블랙-숄스 모델’이라는 주식옵션 가격결정 공식을 개발해 97년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마이런 숄스와 로버트 머튼이 바로 그 주인공.
‘블랙-숄스 모델’은 한마디로 생물학 분야에서 DNA 구조를 발견한 것과 비견되는 것으로 파생상품 시장의 혁명을 불러왔다. 이들은 자신이 개발한 공식을 토대로 94년 ‘천재들의 헤지펀드’라 불리는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를 설립했다.

출발은 좋았다. 10억 달러로 시작한 이 헤지펀드는 97년 75억 달러로 불어났다. 하지만 이듬해 이 헤지펀드는 엄청난 손실을 입고 파산했고, 숄스와 머튼은 개인적인 자산은 물론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마저 잃어버렸다.

‘블랙-숄스 모델’을 공동으로 개발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피셔블랙은 94년 당시 LTCM으로부터 참여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당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LTCM)은 지금 리스크를 쌓아가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피셔블랙은 95년 세상을 떠나 노벨경제학상을 받지 못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글로벌 신용경색 위기로 확대된 것도 파생상품의 투기성과 위험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들은 추가대출 자금 마련을 위해 연체 위험이 높은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을 기초로 고수익 채권을 발행했고, 투자은행들은 이 채권에 투자하면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파산스왑(CDS)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 판매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1건에 10개의 파생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고수익을 노린 헤지펀드와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이 파생상품을 대거 사들였다. 게다가 헤지펀지들은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돈을 빌려 투자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모기지 회사들이 타격을 받았고, 곧바로 모기지 회사의 채권을 사들인 투자은행들이 손해를 보게 됐다. 이어 CDS 등 고수익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한 헤지펀드들의 파산이 이어졌다. 또 헤지펀드에 투자한 글로벌 금융기관들과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손실이 커지자 금융권에서는 안전자산만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됐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위한 채권발행이 막히면서 신용경색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파생상품이라는 ‘촉매제’로 인해 글로벌 신용경색 위기로 확대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