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욕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
기업사냥꾼 된 S&LA , 천재들의 집결소 LTCM 몰락이 주는 교훈 역사에서 배운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로 세계경제가 패닉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원인이야 대충 밝혀졌다지만 처리 방식이나 결과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긴급자금을 풀고, 금리를 내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과 연체율을 낮추자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어떤 해결책이든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자금을 풀자니 그 규모가 문제고, 금리를 내리자니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묵인한다는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 역사를 알면 경제가 보인다. 금융자유화와 세계화가 가속화되던 1980년대 후반 이후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가 최소 10차례는 있었다. 그중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사한 사례도 두 번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미국 저축대부조(S&LA, Savings and Loans Association)의 파산 도미노와 98년 세계적인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도산이 그것이다. 이 위기의 발생 원인과 처리 과정, 결과를 보면 현 위기의 문제를 알 수 있다. 89년 미국 저축대부조합 연쇄 파산 “홈런을 친 기분이야.” 1982년 의회를 통과한 ‘간-세인트 저메인법(Garn-St. Germain Bill)’에 서명하며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규제완화와 자유시장을 주창하던 레이건은 이 법안을 “금융권 위기가 올 것”이라며 반대하던 규제론자들의 저항을 이겨낸 ‘쾌거’로 여겼다. 이 법안의 핵심은 S&LA에 대한 규제완화였다. S&LA는 이 법을 근거로 정크본드와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경영상 어려움에 처해 있던 S&LA로서는 그야말로 기회였다. S&LA는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주고 예금을 받은 뒤 부동산을 담보로 좀 더 비싼 이자로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는 전형적인 상업은행이다. 70년대만 해도 건전하게 운영됐지만 80년대 들어 심각한 부진을 겪다 89년 말 대대적인 연쇄 도산으로 미국과 세계경제를 위협했다. 문제는 7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S&LA는 70년대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를 줄이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펼치자 곧 어려움에 처했다. 고정금리에 장기·소액 대출이라는 경영구조여서 고금리정책이 펼쳐지자 심각한 ‘역 마진’ 환경을 맞게 된 것이다. 레이건 정부가 내놓은 ‘규제완화책’으로 S&LA로서는 ‘돈 장사’가 가능해졌다. S&LA는 당시 새로운 기법으로 각광받던 정크본드 시장에 적극 나섰다. 정크본드란 ‘투자부적격 채권’을 말한다. 투자금융사는 이를 발행해 높은 금리로 팔고 다른 기업을 사 값을 올린 뒤 되파는 방법으로 엄청난 차액을 챙겼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적잖은 S&LA가 큰돈을 벌었고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자 도덕적 해이가 기승을 부렸다. 나중에 언론은 “대부분 ‘9-6-3’ 체제로 경영했다”고 비아냥거렸다. “9%에 돈을 빌려 6%에 돈을 빌려주고 3시에 퇴근한다”는 얘기였다. 이 같은 상황이 오래갈 수 없었다. 89년 정크본드 시장 자체가 붕괴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S&LA 역시 도산을 면할 수 없었다. 89년 7월 의회는 S&LA가 보유한 정크본드를 청산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미 늦었다. 한때 큰돈을 벌었던 S&LA들의 연쇄 도산이 시작됐다. 89년 말 1400개 이상의 S&LA가 문을 닫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금융위기”라고 말했다. 미국은 대대적인 지원과 금리 인하로 겨우 이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후유증은 엄청났다. 정부는 보장을 약속했던 예금액을 물어줘야 했고 40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실 자산을 처리해야 했다. 90년 S&LA를 위한 또 하나의 법안이 처리됐다. 금융기관 개혁 및 규제강화법(FIRREA)이다. S&LA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2261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핵심. 금융기관의 돈놀이 대가로 국민이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했다 해서 이 법안은 ‘분노의 법안(Act of Anger)’으로도 불린다. S&LA의 문제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다. 서민을 위한 부동산 담보대출 기관이었다는 점, 이유야 어쨌든 경영이 부실했다는 점, 처리과정에서 엄청난 공적 자금이 투입됐고 금리를 인하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S&LA 자신이 문제의 주체가 됐다거나 문제의 파급이 미국 내에 국한됐었다는 점 등은 이번과 다르다(표 참조). 98년 미국 헤지펀드 LTCM 파산 “아니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는군요.” 98년 9월 20일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이 미국의 세계적인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를 듣고 내뱉은 말이다. 당시 LTCM과 관련된 얘기를 들은 사람 대부분의 반응이기도 했다. 위기를 맞은 LTCM을 두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94년 회사를 설립한 존 메리웨더는 살로먼브러더스 부사장을 지내면서 이미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 월가의 대스타였다. 그의 주 종목은 선물시장의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 현물 가격에 금융비용을 더한 가격과 선물가격의 차이를 이용한 거래방식이다. 그는 이미 70년대부터 이 방식으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LTCM이 더욱 성가를 높인 것은 97년 일련의 금융 엘리트를 영입하면서부터다. 메리웨더는 파생금융상품의 가격결정이론으로 그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런 숄스 MIT대 교수와 로버트 머튼 하버드대 교수, 그리고 그린스펀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데이비드 멀린스 FRB 부의장을 영입했다. ‘스타 집결지’가 된 LTCM은 투자자들이 돈을 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회사로 성장했다. 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었고 자본금의 1만%까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무위험 차익거래’. LTCM이 개발한 신상품은 한마디로 ‘금리격차’를 활용한 국채거래상품이었다. 숄스는 “두 나라의 금리 차이로 인한 수익이, 선물환의 매입 비용을 치르고 남을 정도라면 아무 위험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당시 LTCM은 이 이론을 근거로 선물시장에서 지나치게 금리가 오른 러시아 국채를 대거 매수하고 미국 국채를 공매도(실제 채권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해 차익을 실현하려 했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망가지면 이론은 쓸모가 없어진다. 98년 8월 17일 러시아 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상황이 졸지에 바뀌었다. 대거 사들인 러시아 국채는 휴지조각이 된 반면 자금이 안전한 자산을 찾으면서 공매도를 한 미국 채권 값이 급등한 것이다. 결제일까지 미국 채권을 사야 했는데 이것이 불가능했다. LTCM은 1250억 달러를 투자해 10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LTCM이 파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최근 50년 사이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은 4일 만인 9월 24일 15개 주요 채권금융기관이 총 37억3000만 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하도록 주선했다. 금리도 내렸다. 미국 FRB는 29일 연방기금 금리를 5.5%에서 5.25%로 0.25%포인트 낮췄던 것이다. 이번 사태로 LTCM이 다시 한번 주목을 끌고 있다. 비록 모기지 회사의 부실이 문제였지만 부실 자산을 근거로 발매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대거 매입한 헤지펀드가 위기의 ‘핵’이기 때문이다. 긴급 자금지원이 이뤄졌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LTCM 문제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이라는 금융 외적 변수가 원인이었다거나 국채를 다뤘다는 점에서는 다른 부분이 있다(표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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