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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노력·경쟁의 가치 인정돼야

도일 남건욱 2008. 5. 19. 08:35
성공·노력·경쟁의 가치 인정돼야
식어버린 투지 살리려면…
부자보다 기업인 우대해야 … 기업인 스스로 열정 되찾는 노력도 필요
‘부자는 되고 싶지만 기업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요즘 사람들의 심리다. 많은 사람이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가진 부자를 바라지만 스스로 창업을 하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꺼리고 있다. 왜 이런 심리가 생겼을까?

기업가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반(反)기업가 정서가 가장 큰 이유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재벌은 개혁의 대상, 기업은 반칙과 변칙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기업가를 폄훼하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뤘다. 시민단체들은 기업들을 부패 세력으로 몰아 여론의 단죄를 받게 했고, 그 결과 기업인들은 이들이 뱉어낸 침에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돈에 대한 가치는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부자에 대한 선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힘든 제조업 대신 부동산이나 머니게임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기업가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있다.

기업하는 사람을 우대하진 못할망정 역차별하는 규정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보다 기업을 자식에게 상속할 때 상속세가 더 많은 규정이다. 30억원 이상의 자산을 상속할 때 상속세율은 똑같이 50%지만 기업의 주식을 상속하면서 지배주주일 경우 대기업은 가산세 30%를, 중소기업은 10%를 더 물어야 한다.

같은 30억원을 상속할 경우 부동산 세금은 15억원이지만, 기업 승계는 대기업의 경우 19억5000만원, 중소기업은 16억5000만원이다. 고용을 창출하고, 제품을 생산한 기업가가 부동산 부자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사장들은 공장을 물려주기보다 공장을 팔아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으로 상속하는 경우가 더 많다. 골치 아픈 회사 경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절세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업가보다 부자를 우대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각종 규제도 걸림돌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올해 계획했던 3조6000억원의 투자액 중 최대 1조원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이닉스 고위 관계자는 “투자하려고 해도 규제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공장을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다는 얘기다.


경영권 방어 대책 마련해야

기업의 투자액은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반도체 업체는 매년 매출의 35~40%를 재투자한다. 그것도 적기에 해서 경쟁자들을 따돌려야 한다. 반도체 는 순환 주기가 빨라 스피드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오늘날 세계 1위의 반도체 업체가 된 것도 과감한 투자 때문이었다. 하이닉스가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계 반도체 가격 약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이닉스 고위 관계자는 “규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주주 눈치 보느라 투자 결정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공장 하나 지으려 해도 규제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 첫째 이유. 달라진 지배구조가 둘째 이유다.

규제 개혁에 기업가 정신을 살리는 답안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그동안 규제의 혁파·철폐만 강조돼 왔다”고 지적하며 정책목표를 뚜렷이 할 것을 강조했다.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바꿀지를 정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행히 이명박 정부는 친기업 정부를 표방함으로써 ‘전봇대’를 뽑겠다고 하고 있다. 최근 ‘성장 친화적 규제 개혁을 위한 조건’이란 보고서를 발표한 LG경제연구원의 홍석빈 연구원은 “고용의 80%를 점하고 있는 중소기업 관련 규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풀어주는 현장 친화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나 금산분리제와 같이 현재 개혁대상으로 떠오른 대부분 규제들은 30대 그룹과 관련된 것이다. 홍석빈 연구원은 “30대 그룹과 관련된 규제 개혁에 대해선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잡혀있는 만큼 원칙에 입각해 이른 시간 내에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발전은 경제적 차별(economic discrimination)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줘야 기업가 정신이 살아난다”고 충고했다. 좌 원장은 그런 차원에서 “평등·분배의 가치 대신 성공·노력·경쟁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돼야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주주자본주의, 주주행동주의 시대에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앞서 문제를 지적한 하이닉스 관계자는 “금융권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액을 투자하는 부담을 기업 혼자 짊어지려고 한다면 투자심리가 위축되기 싶다. 투자의 길을 열어주거나 금융권에서도 함께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면 주주를 설득하기도 쉬워질 것”이라고 방안을 제시했다.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포스코 사외이사회 의장)는 “언제 누가 경영권을 빼앗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영자는 투자보다는 M&A 방어책으로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적대적 인수합병 때 경영권 방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이제 우리나라 이사회도 장기적 투자나 미래 성장동력 발굴 등 기업가 정신을 해치지 않는 세심한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영달 해태 크라운제과 회장은 “기업가 정신을 가진 기업가에게 힘을 주길 바란다”면서 “친기업적인 환경이란 기업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인에 문제는 없는가
“눈먼 돈만 좇아 반기업 정서 키워”

“기업하면서 언제까지 환경 탓만 할 수 있습니까? 규제 많아 공장 짓기 어려우면 중국 가 지으면 되고 자금 조달 국내에서 안 되면 해외에서 하면 됩니다. 그것이 글로벌 전략입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인 정서까지는 기업가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겠지요.”

제조기술 벤처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양덕준 레인콤 전 대표는 “진정한 기업가 정신은 어떤 환경에서도 꽃피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 전반에 반기업가 정서가 나타나고 있다면 “기업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현대경제원에서 매년 점수를 매기는데, 지난해 말 조사에 따르면 “2007년 하반기 기업호감지수(CFI)가 46.6점(100점 만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에 대해 기업인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게 양덕준 전 대표의 설명이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지난해 말 한국경영자총협회 연찬회에서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최근 반기업 정서 때문에 기업을 못하겠다는데, 반기업 정서가 왜 생겼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며 “기업이 정직하고 투명 경영을 해야 진정한 혁신도 가능하고 반기업 정서도 사라진다”고 지적한 것이다.

10년 전 한때 벤처사업가였던 S씨는 “나는 투자자와 정부를 속였던 가짜 기업가”라고 말했다. “그때는 국민은행을 통해 벤처투자자금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금리가 10%가 넘었는데 대출 금리는 고작 3~4%였죠. 저 같은 사람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출받아 은행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어요.”

S씨는 “눈먼 돈만 좇았던 몇몇 벤처인이 반기업 정서를 키웠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