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매파’가 ‘시장 비둘기’ 잡아
최강(崔姜)라인 최강(最强)고집이 문제 시장을 ‘힘’으로 눌러 이기겠다는 것 … IMF 때 맺힌 한이 환율주권론으로 굳어 |
최근 고유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삐걱거리고 있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환율을 용인해야 한다는 기존의 ‘환율주권론’이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성장 위주 정책은 여전하다”고 일축했다. 시장 역시 “극도로 불안한 민심에 ‘잠시’ 고개를 숙였지만 언제 다시 목을 빳빳하게 세울지 모른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취임 첫날 기자간담회에서부터 “환율은 일종의 전쟁이고 시장에 맡기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며 환율주권론을 시사했다. 그는 2005년 펴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환율을 관장하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을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주권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강 장관의 복심(腹心)이라 불리는 최중경 재정부 1차관도 강 장관 못지않게 외환시장 개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왔다. 지난 3월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과 최종구 국제금융국장이 내정되자 4명의 관료 성을 따서 ‘최신최강’라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환율 매파 4인방으로 시장에서 주목 받는 인물들이다. 한 외환 담당자는 “이른바 ‘최강라인’이 환율 상승의 근본 요인은 아니더라도 환율이 오르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며 “강 장관의 발언이 시장의 투기 세력을 부추겨 경제 불확실성을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고집’한 탓에 국내 경제에 인플레이션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강 장관은 평소 한번 정한 소신을 잘 바꾸지 않고 뚝심으로 밀어붙이기로 유명하다. 1977년 재무부 시절 부가가치세(VAT) 도입 때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강(한)고집’으로 끝내 이를 관철시켰다. 장관 임기 초기의 뚝심이 점점 고집으로 비침에 따라 별명도 달라졌다. 요즘 시장에서는 강 장관을 ‘오럴 리스크(Oral risk)’ ‘트러블 메이커’라고 부른다. 최 차관 역시 외환위기(IMF) 때 금융협력과장으로 구제금융 협상에 참석한 자리에서 IMF 대표에게 ‘사기’ ‘무효’라는 단어를 쓰며 고함을 칠 만큼 자기 주장이 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책 실행 과정에서도 거침이 없어 ‘최틀러’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런 두 사람이 유난히 환율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경제 전문가들은 “단기간 성과에 급급한 모습”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 장관 스스로 만든 대선공약인 ‘대한민국747’(경제성장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의 늪에 빠져 외부 여건을 무시하고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이 목표라면 중장기적으로 가야 하는데 단기 성과를 보이기 위해 효과를 빨리 볼 수 있는 환율, 금리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의 수출 성과는 한눈에 드러나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전 국민이 나눠 져 당장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고환율 정책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공직자의 마음을 6개월, 1년 안에 다 보여주려고 하니 원래 누구를 위한 정책이었는지 망각하게 된 ‘주객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고환율에 ‘한(恨)’이 맺힌 것이라는 해석도 조심스레 나온다. 실패의 아쉬움이 ‘집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강 장관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과 선진 6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한국이 잘나가는 ‘개도국’에서 하루아침에 ‘문제아’ 취급을 받게 된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IMF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10년 만에 다시 얻게 된 경제 발전 기회에서 왜곡된 자신감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차관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외환과 금융정책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외화자금과장, 금융정책과장, 국제금융국장 등을 지냈지만 2004년 외국환평형기금으로 역외선물 거래를 하다 1조4000억원의 손실을 본 그는 2005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두 사람 모두 그동안 뼈아픈 ‘책임론’에 시달리다 어렵게 공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 자리인 만큼 쉽게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보다 현실적인 평가도 있다. 1970년대와 달라진 경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이코노미스트는 “70년대에는 물가상승만큼 임금상승률도 높았지만 요즘은 임금상승률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물론 달라진 현실이나 발전한 경제학 이론에 대해 실무진이 충분히 보좌하겠지만 한두 사람이 너무 큰 목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 목소리가 묻힐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시장 관계자들은 “새 정부가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최우선”이라고 충고했다. 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국민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능숙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뒤를 잇는다.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경제라는 것은 흐름이 있는데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인드는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경우 신뢰를 크게 잃을 수 있다”며 “시장의 흐름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 관계자도 “새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지만 100일 동안의 정책을 보면 시장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발언 하나 하나가 효과는 없이 충격만 남기는 것을 보면 시장을 힘으로 누르겠다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의 평가를 한마디로 하면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고집이니 소신이니 하고 말들 하지만 진정 고집조차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시중은행보고 ‘S(사)기 세력’이라고 했다가 며칠 후 ‘애쓰는 세력’이라고 말을 바꾸는 것을 보면 주변 여건, 언론 동향에 따라 갈지자(之) 행보를 보이는 형국”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요즘 정부에 대한 의견을 언론에 노출했다가 기획재정부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시장 관계자들이 있다”며 말을 아꼈다. 지금은 은퇴한 전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간을 신경 쓰면 폐에 병이 나고, 폐만 신경 쓰면 간에 병이 난다”며 “통화 팽창, 추경예산, 금리 인하 같은 확장정책보다 지금은 불경기 해소가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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