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경제기사모음

핵융합실험로 ‘KSTAR’, 돈 되는 기술 낳는다

도일 남건욱 2009. 5. 28. 19:03

핵융합실험로 ‘KSTAR’, 돈 되는 기술 낳는다

MRI·SiC 나노분말 국산화…선박평형수 정화장치 개발

2009년 05월 25일
글자 크기+-이메일프린트오류신고



국가핵융합연구소의 한국형 핵융합실험로 ‘KSTAR’. KSTAR에 적용된 기술이 의료, 재료, 환경 등 다양한 분야로 응용되고 있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국산화, 탄화규소(SiC) 나노분말 제조, 16조원대 시장 선박평형수 정화장치 개발…

의료, 재료, 환경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이 연구성과들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한국형 핵융합실험로 ‘KSTAR’다. 이들 기술은 모두 3년 안에 국내 상용화될 예정이다.

핵융합발전을 위한 기술이 다양한 분야로 응용되고 있다. 핵융합이란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원리로, 가벼운 수소(H) 원자핵들이 융합해 헬륨(He) 원자핵으로 변하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만드는 반응이다. 바닷물 1L 속 수소 원자로 석유 300L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낼 수 있다. 핵융합은 태양의 중심처럼 1억도가 넘는 초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발생한다. 플라스마는 초고온에서 원자가 쪼개져 원자핵과 전자로 분리되는 상태를 말한다. 흔히들 고체∙액체∙기체에 이은 제4의 상태라고 말한다.

KSTAR는 핵융합 반응에 필요한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강력한 자기장 속에 가두는 장치이다. 땅 위에 설치된 한국산 ‘인공태양’인 셈이다. 기술의 핵심은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초전도자석과 플라스마를 가두는 도넛 모양의 진공용기에 있다. 플라스마를 가둘 때는 원자핵과 전자로 분리된 플라스마 입자들이 전기적 성질인 ‘전하’를 띤다는 점을 이용한다. 진공용기에 강한 전류를 흘려 지구자기장의 14만배에 이르는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면 전하를 띠는 플라스마는 도넛 모양의 용기 내부를 자기력 방향으로 회전하게 되는 것. 초고온 플라스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아두면서 제어할 수 있는지가 핵융합반응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관건이다.

한국은 1995년 국가핵융합기본개발계획을 수립, 개발에 착수한지 11년 8개월만인 지난 2007년 9월 세계에서 6번째로 핵융합실험로 KSTAR를 완공했다. 이 때까지 총 309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KSTAR 프로젝트의 이같은 막대한 사업비는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과 함께 지속적으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내렸다. 2050년이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실제 핵융합발전까지 너무 오래 기간 기다려야 하고 성공할지의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관련 연구기관들은 핵융합 기술 구현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생기술과 부가가치를 부각할 수 밖에 없다. 권면 국가핵융합연구소 KSTAR운영사업단장은 “KSTAR를 운영하며 얻은 초전도자석과 플라스마 기술을 활용해 MRI, SiC 나노분말, 선박평형수 정화장치에 관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KSTAR에 적용된 초전도자석 설계·제작 기술은 국산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개발에 활용된다.
(좌) 핵융합실험로 KSTAR에 실제 설치된 D자형 초전도자석 (우) 초전도자석의 단면

MRI의 핵심부품인 초전도자석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일부 기업들만이 설계∙제조 기술을 보유하면서, 지맨스 필립스 등 5개 기업이 시장점유율 87%를 차지하는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MRI 공급가격도 꾸준히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 MRI 시장의 규모는 33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국가핵융합연구소가 팔을 걷어붙였다. KSTAR를 운영하며 쌓은 초전도 관련 기술 노하우를 MRI에 적용하겠다는 것.

초전도자석은 전류가 통과할 때 저항이 0인 자석을 말한다. 도넛 모양의 KSTAR 진공용기 안에서 플라스마를 허공에 띄운 채로 잡아두려면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강한 전류를 오랫동안 흘려줘야 한다. 하지만 전기저항으로 발생되는 열 때문에 전류를 흘려주는 것에 한계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전기저항이 0인 초전도자석을 써야만 하는 이유다.

KSTAR에 적용된 초전도자석 설계·제작 기술은 지난 4월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 납품 계약을 맺을 만큼 세계 정상급 수준이다. 김혁종 미래전략기술부장은 “다음달 MRI 영상처리 기술을 가진 국내 벤처기업 사이메딕스와 초전도자석 내 전선 제작기술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 KAT 등과 MRI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며 “3년 내 국산 MRI의 개발과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지난해 나노 크기(20~30nm)의 고품질 SiC 가루를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SiC 나노분말은 2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딜만큼 내구성이 뛰어난 고부가가치 재료로 미국, 일본 등은 전략물질로 관리하고 있다.
(좌) SiC 나노분말 발생장치 (우) SiC 나노분말

SiC 나노분말은 2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딜만큼 내구성이 뛰어나 고부가가치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비행기나 고속철도의 제동장치, 군수분야의 방탄재, 로켓이나 인공위성의 고온내열재 등 여러 첨단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이에 미국, 일본 등은 전략물질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생산기술이 없어 전량 수입해 쓰고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지난해 실리콘 염화물 등의 기체에 플라스마를 쏴 나노 크기(20~30nm)의 고품질 SiC 가루를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김 부장은 “플라스마의 강력한 에너지가 기체 분자를 이루는 내부 원소 간의 화학적 연결고리를 끊어버린 뒤 일종의 원소 간 ‘헤쳐 모여’와 같은 재조합 반응을 일으켜 SiC 나노분말을 만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iC 나노분말은 차세대 핵융합로에서 내벽 재료로 쓰일 예정이다. 연구소 측은 6월 국내 벤처기업인 ABC나노텍에 기술 이전을 진행한 뒤 SiC 나노분말의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최근 선박평형수를 배 안에 실을 때 플라스마 반응기에 통과시켜 정화시키는 기술을 특허 출원했다.
(좌) 선박평형수 정화 실험장치 (우) 플라스마 반응기

핵융합 기술은 선박평형수 정화장치에도 활용된다. 선박평형수는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배의 밑부분 공간에 싣는 바닷물이다. 선박이 여러 나라의 항구를 다니면서 선박평형수를 싣거나 배출하기 때문에 해양 오염, 외래수중생물 유입 등이 국제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국제해사기구(IMO)는 2012년부터 모든 선박에 선박평형수 정화처리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규제를 마련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선박평형수 처리장치가 연 16조원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최근 선박평형수를 배 안에 실을 때 플라스마 반응기에 통과시켜 정화시키는 기술을 특허 출원했다. 15kV 내외의 강력한 전압이 걸린 플라스마가 바닷물 속 유해 조류, 미생물의 70%를 배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멸균 처리한다. 또 바닷물 속 물과 산소는 플라스마와 반응해 오존(O3), 과산화수소(H2O2), 수산기(OH) 등을 생성하고, 이 기체성분은 소독∙살균 기능이 있어 플라스마 반응기를 통과한 나머지 세균과 오염물질을 말끔히 정화한다.

이 기술은 최근 삼성, 현대 등 국내 대기업 조선업체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플라스마 응용연구를 이끄는 이봉주 응용기술개발부장은 “조선업체 한 곳과 선박평형수 정화장치의 상용화를 위한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 기술은 폐수 처리, 적조 퇴치 등에도 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sypy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