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뜸 등 동양의학 접목해 미국인들 반응 좋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호스피스에서 이건주 소망병원장(왼쪽에서 둘째)이 의료진과 함께 환자 치료 방법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
지난 1월 24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남쪽 페이엇빌시에 있는 한 호스피스에서 72세의 바버라 슈미트가 숨을 거뒀다. 그는 2년 전 난소암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암과 싸워 왔다. 오랜 기간의 투병 끝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3개월 전부터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 왔다.
슈미트의 주치의는 조지아주 둘루스에 있는 소망병원의 이건주 원장. 슈미트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15년째지만 그는 1995년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난 첫 환자에게 암 판정을 내려야 했다. 슈미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딸, 며느리, 사돈까지 모두 단골이었다. 이 원장은 슈미트를 잃어야 하는 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원장은 슈미트의 마지막 안식처로 페이엇빌의 ‘닥터스 호스피스 오브 조지아(Doctors Hospice of Georgia, www.doctorshos piceofgeorgia.com)를 권했다. 이곳에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많지만 음울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햇볕이 잘 들어오는 쾌적하고 깨끗한 병상에다 병실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졌다.
병실 주변에는 안락한 분위기의 가족 면회실, 성직자가 상주하는 예배실을 갖추고 있다. 말기암 환자의 고통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슈미트는 호스피스에 상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적절한 진통제 투여로 고통을 덜었다.
독한 암 치료제와 모르핀에 취해 있는 대신 매일 면회 오는 가족들과 만나 마지막을 차분히 준비했다. 병원 소속 한의사에게서 시술받은 한국식 침뜸도 고통을 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인간다운 죽음의 제도화
호스피스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덜어줬다. 가족들은 호스피스의 전문 카운슬러와 상담하며 차분히 죽음을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 병원 내 식당에서는 슈미트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마지막 만찬을 즐기며 추억을 만들었다. 슈미트는 결국 입원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성직자와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존엄하고 편안하게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 지난달 27일 열린 슈미트의 장례식에서 유족들은 이 원장에게 “고인은 누구나 바라는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존엄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기를 바란다.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을 추구하는 것도 현대의학의 중요한 과제다. 현대의학의 이 어려운 과제에 한인 의료인들이 호스피스 사업을 통해 도전하고 있다.‘호스피스’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들이 편안한 임종을 하도록 도와주는 의료기관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생명은 끝까지 살려야 한다”는 한국적 사고방식과 달리 미국은 “가망이 없다면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줘야 한다”며 호스피스를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미국 시민은 누구나 정부 지원으로 호스피스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조지아주 페이엇빌 호스피스에서 이건주 소망병원장(가운데)이 의료진과 함께 말기암 환자를 간호하고 있다. |
정부가 호스피스 지원하는 이유?
슈미트를 간호한 ‘닥터스 호스피스 오브 조지아’는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입원 환자를 위해 자원봉사하는 의사들의 단체다. 소망병원 이건주 원장의 주도로 2005년 출범했으며, 현재 550여 명의 조지아 의료인이 가입해 있다. 리버데일, 페이엇빌, 유니언시티, 카터스빌 등의 지역에 호스피스 시설을 건립하고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다.
이 단체의 설립이사인 이 원장은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고통을 받지 않고 아름답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호스피스는 단순히 진통제로 고통을 덜어주는 곳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가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고, 종교인과 카운슬러가 정신적 안정을 가져다 주는 장소”라고 정의했다.
미국 정부가 호스피스를 지원하는 데는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미국 보건국 통계에 따르면 말기 환자가 병원에서 끝까지 소생 치료를 받을 경우 1인당 평균 50만 달러가 지출된다. 의료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국다운 상황이다.
조지 웨스트 ‘닥터스 호스피스 오브 조지아’ 재무담당 부사장은 “이렇게 말기 환자에게 지출되는 비용은 한 해 30조 달러에 달하며, 대부분 정부에서 지출해 재정적자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말기 환자가 호스피스를 이용할 경우 그 비용은 2만 달러에 불과하다.
최근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호스피스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다. 조지아주에서는 주정부와 주상원의 강력한 주도 아래 추진되고 있다. 케이시 케이글 조지아 부지사, 차기 주지사 후보로 유력시되고 있는 존 옥센다인 보험 커미셔너도 이 프로그램의 든든한 후원자다.
‘닥터스 호스피스 오브 조지아’는 현재 리버데일, 페이엇빌에 이어 유니언시티, 카터스빌 등 13개 지역에 호스피스를 건립 중이다. 조지아 내 159개 카운티마다 1개씩의 호스피스를 만드는 것이 이 원장의 야심 찬 프로젝트다.
이 원장은 “의료시설이 드문 조지아주 낙후지역의 경우 호스피스 시설은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지역 의료서비스 장소로도 환영받고 있다”며 “특히 카터스빌 호스피스 등은 한인들의 투자로 건립돼 한인들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닥터스 호스피스 오브 조지아’는 최근 한인들의 EB-5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EB-5 투자이민은 외국인이 미국 회사에 일정금액을 투자하고 10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면 미국 정부가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50만 달러를 투자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지만 요즘 같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는 원금 회수와 영주권 획득을 100% 보장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긴 하다.
그러나 EB-5로 호스피스에 투자할 경우 안정성이 높고, 영주권 확보도 훨씬 수월하다. 호스피스 입원 환자 1명마다 미국 정부에서 하루 640달러의 입원 비용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망하지 않는 한 수입원은 안정적인 셈이다. 또 시설마다 65~75명을 고용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조건도 큰 어려움 없이 충족시킬 수 있다.
영주권을 취득하면 기간 제한 없이 미국에 머무를 수 있으며, 자녀는 학비가 저렴한 공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소망병원 측 관계자는 “현재 1개 시설 건립에 필요한 투자금은 약 350만 달러”라며 “닥터스 호스피스 오브 조지아가 50만 달러, 한인 투자자 6명이 각각 50만 달러를 투자하는 형태로 지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호스피스 측은 “정부 수입원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연 5%의 투자수익률이 가능하며, 투자 4년 뒤에는 자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100년 전 미국 선교사가 한국에 ‘제중원’을 설립하고 현대 의학기술을 전파했듯이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도울 차례”라며 “호스피스는 단순히 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한인이 미국 의료계에 기여하고 미국 영주권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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