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기사모음

구제역과 시험관 고기

도일 남건욱 2010. 12. 21. 20:49

구제역과 시험관 고기

[강기자의 과학카페]<18>

2010년 12월 20일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을 시작으로 퍼지고 있는 구제역으로 17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가 매몰됐다. 우리나라 가축 매몰 역사상 최악이다. 게다가 상황이 아직 진행 중이고 더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심각한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소 330만 마리, 돼지 990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합치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수치다. 이처럼 많은 가축이 살고 있는 건 물론 우리가 그만큼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이다. 한 사람당 1년에 소고기는 7kg, 돼지고기는 18kg 소비한다. 한 세대 만에 소비량이 2배 가까이 늘었다. 식생활 서구화란 말이 실감난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광우병 같은 문제가 터지면 기자는 늘 ‘이참에 채식주의를 실천하자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한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육식을 포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고기 맛을 알아버린’ 우리들에겐 너무나 큰 희생이기 때문일까.

●성체줄기세포 배양해 근육 만들어

과학저널 ‘네이처’ 12월 9일자에는 기괴한 기사가 실렸다. 니콜라 존스란 자유기고 저널리스트의 글로 ‘시험관 고기(in vitro meat)’의 연구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연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기자로서는 ‘미래의 얘긴가?’하고 읽어봤는데, 웬걸 이미 수년째 진행되고 있는 연구였다.

글은 시험관 고기 연구자인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대 마크 포스트 교수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포스트 교수는 원래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조직공학자였는데 이를 의학에 이용하는 것 보다 스테이크를 만드는데 써먹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돼지에서 얻은 근위성세포(근육 성장과 재생에 관여하는 성체줄기세포)를 배양해 증식시킨 뒤 세포 덩어리를 틀에 고정시켜 전기충격을 줘 실제 근육 같은 조직을 만들도록 유도했다. 그냥 세포 덩어리는 ‘씹히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살코기는 결국 동물의 근육이다).

이 ‘시험관 고기’ 연구는 네덜란드 정부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200만 유로(약 30억 원)를 지원한 ‘진지한’ 프로젝트다. 물론 현재는 시험관 고기를 만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 시험관 고기로 소시지 하나를 만들려면 25만 달러(약 3억 원)가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프로세스가 개선되고 대형화되면 승산이 있다고 포스트 교수는 주장한다. 물론 그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돈을 대줄 투자자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포스트 교수는 시험관 고기가 친환경적이고 인도적이라 채식주의자들도 죄의식에서 벗어나 고기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시험관 고기는 어떤 맛일까. 최근 포스트 교수의 실험실을 찾은 러시아의 방송 저널리스트가 고기를 집어 먹는 ‘돌발행동’을 했다고 하는데, 먹어보고 나서 “육질은 괜찮은데 맛은 없네(It is chewy and tasteless)”라고 평가했다고.

복제가축의 고기도 (시장에 나올 경우) 먹을까 말까 고민해야하는 마당에 시험관 고기라니 너무 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시험관 고기는 지금은 필요악인 사육과 도축도, 역병이 돌아 가축 수십만 마리를 땅에 파묻어야 하는 곤혹스러움도 피할 수 있는 대안일 순 있겠지만.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