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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은 정말 프리온 때문에 발생하나

도일 남건욱 2011. 12. 6. 13:10

광우병은 정말 프리온 때문에 발생하나

강기자의 과학카페 56

2011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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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여 년 동안 인간광우병을 비롯한 전염성 해면양뇌증(TSE)의 원인이 프리온이 아니라 바이러스라고 주장해 온 미국 예일대 의대 로라 마누엘리디스 박사. 실험도중 감염된 뇌조직이 눈에 튀어 100만 달러짜리 생명보험에 들기도 했다. (제공 예일대)

지난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의인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iCJD) 사망자가 나왔다는 발표가 ‘인간광우병’ 사망자가 나온 걸로 왜곡되면서 일시적인 혼란이 있었다. 인간광우병은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이 걸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의 별칭이다.

의인성(醫因性), 즉 의료행위 중에 감염되는 iCJD는 매우 드문 질환으로 CJD 환자의 조직에 오염된 의료기기나 이들의 조직을 이식할 때 감염된다. 이번 환자의 경우도 1987년 독일제 뇌경막 이식 수술을 받을 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환자가 사망한 건 지난해 11월로 1년이 넘었지만 보건당국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환자를 맡은 한림대병원 김윤중 교수팀이 11월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수년 전 인간광우병 괴담에 시달린 당국이 지레 겁을 먹고 쉬쉬한 게 아니었나 하는 얘기도 있다.

CJD는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변형돼 뇌에 축적되면서 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즉 일단 변형 단백질이 생기거나 몸에 들어오면 정상 단백질까지 변형시켜 뇌조직이 파괴된다는 것. 드라큘라에 물리면 드라큘라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이 관계를 알아내고 프리온이라는 이름을 붙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의대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는 1997년 단독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관련된 질환에 대해서는 이미 1976년 노벨상이 주어진 바 있다.

쿠루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어린이. 뉴기니 포레족에 만연했던 풍토병으로 식인 습관을 없앤 뒤 서서히 사라졌다. (제공 노벨재단)

호주에서 일하던 미국인 의학자 칼턴 가이두섹 박사는 1950년대 뉴기니 부족의 풍토병인 ‘쿠루’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이 병이 죽은 사람의 뇌를 먹는 풍습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망자의 3%가 쿠루일 정도로 만연했던 이 질환은 식인풍습을 금지하자 서서히 사라졌다.

가이두섹 박사는 쿠루로 죽은 사람의 뇌조직을 갈아 동물에 넣어주면 비슷한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병을 옮기는 인자를 찾으려고 매달렸지만 노벨상을 받을 때까지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벨상 강연 원고에서도 감염시는 별 증상이 없다가 수년 내지 수십 년 뒤에 발병하는 ‘슬로우(slow) 바이러스’가 원인일 거라고 추측하는데 그쳤다.

많은 연구자들이 사람에서는 쿠루 또는 CJD, 양에서는 스크레피, 소에서는 광우병(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이 병들의 공통적인 특징에 따라 ‘전염성 해면양뇌증(TSE)’이라고 통칭한다)의 원인인 병원체를 찾는데 뛰어들었지만 실패를 거듭했고 마침내 프루시너 교수가 1980년대 바이러스가 아니라 단백질이 병원체라는 ‘이단적’인 가설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만든 단어 프리온(prion)은 ‘단백질성 감염성 입자(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와 바이러스 입자를 뜻하는 ‘비리온(virion)’을 합친 단어다.

병원체는 당연히 유전정보인 핵산(DNA나 RNA)을 갖고 있는 생명체라는 상식을 깨는 주장으로 발표 당시에는 엄청난 반발에 부딪쳤지만 이를 지지하는 실험결과가 하나 둘 나오면서 '프리온 가설'이 서서히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노벨상까지 받게 된 것이다.

●프리온이 충분조건은 아닌 듯

그런데 지난 봄 이제는 당연시 되는 줄 알고 있었던 프리온 가설이 여전히 논란중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이 나왔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5월 27일자에 실린 미국 예일대 의대의 로라 마누엘리디스 박사의 이야기다. 올해 68세인 마누엘리디스 박사는 지난 30년 동안 TSE를 연구해오고 있는데 병의 원인이 프리온이 아니라 바이러스라고 믿고 있는 과학자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은 감염의 원인이 아니라 감염된 조직의 병리적 반응의 하나라는 것.

사실 프리온 가설이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데이터도 꽤 있다. 즉 감염성이 있는 동물의 조직에서 변형 프리온이 발견되지 않는가 하면 감염성이 없는 동물의 조직에서 변형된 프리온이 존재하기도 한다. 프리온 관련 데이터는 결과가 너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엄밀한 기준을 적용하면 변형 프리온을 병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마누엘리디스 박사팀이 TSE에 걸린 뇌조직에서만 발견했다는 바이러스성 입자(가운데 위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의 현미경 사진. 주변에 흩어져 있는 검은 점이 프리온 단백질 덩어리. (제공 PNAS)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영국에서 인간광우병 환자가 보고되고 1995년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대중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노벨상 위원회가 1997년 프루시너 교수에게 상을 수상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원인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공포를 더 증폭시키기 때문에 유력한 후보일 뿐 아직 입증되지 않은 프리온 가설에 노벨상을 줌으로써 이런 불확실성을 없앴다는 것.

그녀는 프루시너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 “노벨상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결정됐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그 뒤 이에 반하는 연구를 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프리온 가설을 입증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연구비도 받기 쉽고 좋은 저널에 논문이 실리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연구비를 따기도 어렵고 결과를 유력한 저널에서 잘 실어주지도 않는 다는 것.

마누엘리디스 박사팀은 지난 2007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TSE에 감염된 조직에서만 바이러스처럼 보이는 입자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 역시 이 입자의 실체를 밝히지는 못했고 물론 이 입자가 병의 원인임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현재 TSE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프리온 가설을 지지하는 다수의 주류측과 바이러스 가설 또는 다른 감염원을 찾고 있는 소수의 비주류측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들 사이에는 거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사이언스’에는 TSE가 생기려면 변형 프리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왼쪽은 박테리아에서 정제한 프리온을 변형시켜 넣어준 결과로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지질과 RNA를 함께 넣어준 뒤 변형시킨 프리온을 넣어주면 병에 걸린다(오른쪽). (제공 사이언스)
그런데 프리온 가설을 지지하는 쪽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프리온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즉 변형 프리온 단백질만으로는 TSB를 전염시키기 어렵다는 것. ‘사이언스’ 2010년 2월 26일자에 실린 논문을 보면 프리온 유전자를 박테리아에 넣은 뒤 이 박테리아가 프리온을 만들게 한 뒤(바이러스 오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화학적 처리로 변형 단백질을 만든 뒤 쥐에 넣어줄 경우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

그런데 단백질에 지질과 (간에서 추출한) RNA를 섞어준 뒤 변형 단백질을 만들어 쥐에 넣어주면 감염성이 아주 높아진다는 것. 이 실험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단백질이 감염에 관여한다는 걸 증명하면서 동시에 단백질 외에 다른 요소도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다른 요소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사실 노벨상까지 받은 유력한 학설을 반대하며 수십 년 동안 외로운 연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마누엘리디스 박사 같은 과학자가 있기에 웬만한 선에서 결론을 내고 끝낼 연구에 더 매달리게 되고 그 결과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서 좀 더 정교한 이론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아직 마누엘리디시 박사가 승리할 가능성이 ‘제로’인 것도 아니다!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