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 생각이란 항상 짧고 부족하다. 특히 그것은 현장과 동떨어져 현실의 벽에 부닥치기 일쑤다. 최근 논란을 불렀던 ‘근로시간 단축’과 이를 통한 ‘고용창출’이 딱 그렇다.
한마디로 이는 ‘일자리 나누기’다. 기존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줄임으로써 생긴 공백에 실업상태에 있는 유휴인력을 투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전자에게는 삶의 질이라는 복지가, 후자에게는 작은 월급통투가 주어진다. 정책 당국자들은 어쩌면 ‘이 쉬운 궁리를 왜 진작 못 했을까’하며 무릎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까다롭게 법규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최장근로 52시간(주 40시간에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을 더한 것) 룰을 지키기만 해도 일자리는 절로 생긴다는 것. 최고 75만명의 추가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계산까지 나왔다. 이는 전체 근로자 1740만명의 21.8%인 380만명이 52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는 통계(2011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근거로 정교하게 산정한 결과였다.
정말 근사한 아이디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노동계는 근로자 삶의 질을 높이는 취지에 동의하면서, 다만 전체 임금을 줄지 않게 해달라는 짧은 요구사항만 던졌다. 경영자측은 비숙련공의 현장투입과 과다 임금지출로 인한 생산성 추락을 우려했다.
생산현장의 사연 한 토막까지 옮겨보면 상황이 더 분명해진다. 경남 창원공단에 있는 한 기업의 공장장 말이다.
“얘기를 듣는 순간, 화염병과 최루가스가 난무하는 노사분규 현장이 먼저 어른거렸어요. 대개의 사람들은 공장의 평일 연장근무와 휴일 특근이 강제로 이뤄진다고 오해하나 봅니다. 케이스별로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택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스스로 ‘아오지 탄광’ 운운 우스개로 자조를 하면서도 기꺼이 응하죠. 말하기 좀 뭐하지만 돈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계비는 수당까지 감안해 맞춰져 있거든요. 그런데 임금이 줄어든다고요? 그것을 그냥 바라보고 있을 근로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 이렇게 공장의 평화가 또 깨지는구나 싶었죠.”
최근 수년 우리네 산업현장이 평온하다 싶더니 통계수치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파업은 총 65건으로 2010년에 비해 24.4% 줄었다. 갈등이 극에 달했던 1987년 3749건의 파업을 떠올리자면 격세지감이고 외환위기에 숨을 죽였던 1997년 78건보다도 적었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거기에 다시 불씨를 던지는 일이 벌어질 판이었다.
정부도 낌새를 알아차린 듯했다. 2월 17일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근로시간 단축은 제도가 아닌 문화의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이미 2010년 노사정 대타협에서 (2010년 기준 2193시간인) 연간 근로시간을 2020년까지 1800시간대로 줄이기로 합의한 만큼 정부가 강제적인 제도를 만들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밀어붙이는 대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 더 용기 있게 보인 것은 왜였을까?
모든 경제정책은 ‘트레이드 오프(trade-off: 역상관관계)’ 트랩에 걸린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혹은 성장률)도 마찬가지여서 그 유명한 ‘필립스 커브(Phillips curve)’까지 탄생시켰다. 일반론으로 말하면 ‘On one hand(한편으로는)’ ‘On the other hand(다른 한편으로는)’의 반복이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외팔이 경제학자 어디 없느냐”고 푸념을 늘어놓았겠는가.
일자리는 머리를 굴려 나오는 게 아니다. 투자와 성장으로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방법뿐이다. 바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고 길은 에둘러가야 하는 법. 그 잣대는 ‘정부개입’이 아니라 역시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