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interview - 박세일 국민생각 대표] 성장·고용 빠진 복지정책 지속할 수 없다취약층 복지는 세금 거둬 재분배

도일 남건욱 2012. 3. 6. 18:19

 

[interview - 박세일 국민생각 대표] 성장·고용 빠진 복지정책 지속할 수 없다
취약층 복지는 세금 거둬 재분배
북한이 친한국형 개혁·개방하도록 유도해야
이필재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jelpj@joongang.co.kr

“자유무역협정(FTA)이란 곧 시장의 확대입니다. 야권이 FTA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국내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 조치가 충분치 않아 반성을 한다면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FTA 자체가 틀렸다고 하면 합리적인 진보가 아니죠.”
박세일(64) 국민생각 대표는 “정권을 담당할 때 한·미FTA를 추진한 사람들이 이제 와 반대로 돌아선 건 정파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EU FTA보다 한·미FTA가 우리에게 훨씬 유리합니다. 기술적으로 검증이 끝난 사안입니다. 지금 한·미FTA에 반대하는 건 반미의 일환으로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박 대표는 “FTA는 올바른 정책이고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FTA 부정하면 합리적 진보 아니다
그는 지난해 말까지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있었다.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이란 민간 싱크탱크를 만들어 운영했고 최근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연대를 주장하며 국민생각을 창당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사회복지수석을 지냈고 17대 국회 때 1년 간 비례대표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을 지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시절 그는 사법·교육·노동·복지 개혁 등 세계화 개혁을 주도했다.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발전론·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정책위의장을 지낸 정책통이기도 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대립각을 세웠다. 선진화라는 비전을 실현할 철학과 정책이 빈곤해 결국 선진화의 궤도에서 중도하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공으로는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를 상대적으로 일찍 극복한 것과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인 것을 꼽았다.
“경제위기 극복엔 성공했지만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복지정책도 개혁적인 보수로서 신복지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사이비 진보가 주장하는 것을 흉내내는 데 그쳤습니다.”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에 대해 시장과 국가 영역의 조화, 성장과 복지의 조화, 정신과 물질의 조화 등을 꼽았다. 무엇보다 경제 발전의 목표를 성장 극대화에서 고용 극대화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서는 금융 쪽에서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 장점은 그것대로 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그는 사회복지수석으로 있으면서 복지 분야의 개혁에 힘썼다. 그가 생각하는 복지정책의 큰 틀은 이렇다. 복지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큰 복지와 작은 복지이다. 큰 복지는 다시 두 차원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민족 복지이다. 남북한 간의 경제적 격차를 어떻게 줄여나가고 통일 후 북한의 복지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공부한 복지주의자조차 민족 복지엔 눈을 감는다고 그는 비판했다.

다른 하나의 큰 복지가 국민복지이다. 이 복지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파이를 키우는 성장론을 논외로 한 국민복지란 있을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마지막 작은 복지가 바로 취약층 복지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만들어져도 몸이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층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금을 거둬 재분배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진짜 복지주의자라면 이 세 가지 복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건지 나름의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국민복지에 대한 해결책 없이 펴는 취약층 복지정책은 지속가능 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복지를 다 실현하려면 결국 통일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고요. 지금 여야는 마지막 취약층 복지에 대해서만 떠들고 있습니다. 복지 포퓰리즘이죠. 책임 있는 개혁적 보수주의자라면 복지수요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복지정책의 효율화부터 하고 그러고 나서 복지 재정을 확대해야 합니다.”

복지 재정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그는 예산조정으로 충당이 안되면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성 정당과 차별화된 주장이다.
“우선 세금 안 내는 사람 수를 줄여야 합니다. 임금을 받는 노동소득자와 자영업자 가운데 각각 40%가량이 세금을 한 푼도 안냅니다.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면세자 비율을 높여왔기 때문이죠. 부자들 대상으로 증세해 봐야 더 걷힐 세금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근로소득자 중 상위 1%가 근로소득세의 약 80%를 냅니다. 대기업 상위 1%가 법인세의 약 70%를 내고 있어요. 중산층도 세금을 더 부담하고, 저소득층도 단돈 1000원이라도 세금을 내야 합니다. 세원이 포착되지 않는 전문직 종사자도 많아요.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고 국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감세를 한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는 복지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신성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성장 정책의 축으로 그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교육 개혁, 과학기술 분야의 획기적 혁신, 서울과 지방 간의 격차 해소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를 풀어야 우리나라가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소득층 1000원이라도 세금 내야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과거 정부가 편 햇볕정책의 부작용을 막은 건 잘했지만 여전히 분단관리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 통일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야 모두 분단관리형 정책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가다가는 북한이 중국의 변방, 속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2~3년 안에 북한의 지도자가 개혁개방을 하기로 결정을 하게 될 겁니다. 이때 개혁개방이 친중국형이 아니라 친한국형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원하든 원치 않든 통일의 시대는 옵니다. 그것도 빨리 올 거예요. 그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정부가 국민들을 설득하고 통일세에 대해 설명했어야 합니다.”

그는 지난해 중국을 방문해 그쪽 관계자들과 회의를 했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북한에서 3대 세습이 순조롭지 않아 제 세력이 서로 격돌하고 주민 학살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 쪽에서 국경을 넘겠다고 말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중국 측 멤버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학자 중 누구도 북한이 어려워지면 우리가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사람이 없다. 오히려 중국이 북한에 진입할 건지 묻더라. 통일은 당신네 나라 문제인데 왜 우리 쪽에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 묻느냐.’ ”

그는 통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회라기보다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소국(小國) 의식, 변방의식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된 데는 사실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통일은 취업난과 양극화를 일거에 해결하는 기회입니다. 북한은 엄청난 인적자원과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술과 경험, 자본을 축적하고 있죠. 사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건 돈이 아닙니다. 바로 생산적 투자의 기회죠. 골드먼삭스의 보고서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2050년 1인당 소득이 세계 2위로 뛰어오를 거라고 예측합니다. 정교하게 계산한 건 아니지만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는 거죠. 우리 국민이 통일에 소극적이면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를 요리하려 들 가능성이 큽니다.”

 

4대강 사업은 실적주의가 문제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그 내용보다 추진방식과 속도가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사업 자체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한꺼번에 밀어붙인 실적주의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은 양자가 성장의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도 1960년대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목을 맸지만 70년대 들어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자 갑을 관계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임기를 1년 남겨둔 현 정부에 세 가지를 주문했다. 공정한 선거관리, 무책임한 포퓰리즘적 입법에 대한 제동 그리고 다음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 정리다.

“인기영합적이고 무책임한 포퓰리즘적 입법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겠죠. 꼭 필요한 일이라면 새로 벌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올해는 선거의 해다. 모든 정당의 목적은 하나다.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의 정치적 꿈은 어디까지 뻗어 있을까.
“당을 만든 것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그러나 당에서 저의 총선 출마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따르는 게 옳다고 봅니다. 대선은 아직 생각할 시점이 아닙니다.”

박세일 대표는 누구인가
경세가에서 중도 정당 대표로 변신
진보 성향의 중견학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박세일 대표를 가리켜 경세가(經世家)라 불렀다. 그에 따르면 경세가란 학문과 정책을 동시에 담당하는 사람이다. 뜻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면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치고 그럴 상황이 아니면 물러나 학문 연구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다. 김 교수는 경세가란 조선시대의 사대부 같은 존재라고 규정했다.

세종시 원안 추진에 반대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와 정면으로 부딪친 후 2005년 탈당한 박세일은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제시했다. 그가 고안한 선진화론은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에 선진화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이들은 민주화세력에 맞서 선진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200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김 교수는 이 점에서 “박세일은 수사학적으로 표현하면 보수세력에 숨은 신(神) 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평가한다.

박세일은 선진화와 더불어 통일을 대한민국이 꿈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고 통일에 성공하려면 국가의 구성과 운영 원리로 공동체 자유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개념화한 공동체 자유주의에 대해 그는 공동체적 연대 가치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자유주의가 이기적인 방향으로 폭주하면 공동체의 가치가 파괴돼 지속가능성이 감소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공동체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라야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 자유주의는 일견 형용모순처럼 보인다. 역시 경제학자 출신인 김종인 새누리당 비대위원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주의엔 어떤 수식어를 얹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런 지적에 대해 “집단주의·전체주의는 자유주의와 상충하지만 가족, 종교단체, 임의적인 사회단체 같은 자발적 공동체는 자유주의와 모순관계에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자발성을 기초로 하고 교육과 설득을 통해 유지된다는 점에서 국가적 강제가 작동하는 집단주의·전체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국민생각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 통합 정당을 지향한다. 영호남의 지역패권을 넘어서고 노·장·청 간 소통을 중시하는 국민 통합 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은 만만치 않다. 보수의 분열을 야기해 보수 진영의 재집권 가능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비판의 시선도 따갑다. 이런 인식에 대해 그는 지난해 말 내놓은 대담집 『이 나라에 국혼은 있는가』 머리말에서 이렇게 답했다.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발전한다. 결코 현실주의자들의 승리를 통해 발전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