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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옆 혜화로- 소극장 몰리면서 골목상권 꿈틀대학로에서 옮긴 연극인 늘면서 발달…2013년 세계적 설계자가 만든 랜드마크 빌딩도 들어서

도일 남건욱 2012. 3. 6. 17:15

 

대학로 옆 혜화로- 소극장 몰리면서 골목상권 꿈틀
대학로에서 옮긴 연극인 늘면서 발달…2013년 세계적 설계자가 만든 랜드마크 빌딩도 들어서

연극 하면 서울 혜화동 ‘대학로’가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연극의 중심이 대학로에서 500m 떨어진 ‘혜화로’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대학로가 주요 상권으로 떠오르면서 연극 공연장의 대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연극인들은 대관료가 싼 혜화로 골목길에 몰려들었다. 그 후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던 혜화로의 상권이 꿈틀거리고 있다.

혜화로는 늦은 오후부터 활기를 띈다. 오후 5시 무렵 연우소극장·홍사소극장을 드나드는 공연 관계자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6시부터는 공연장 앞 매표소에 관객이 모여들었다. 낮에는 자리가 있던 카페에도 손님이 가득 찼다.

대학로 상업화되면서 혜화로 인기
혜화로의 변화를 이끈 건 소극장이다. 2000년대 후반 소극장은 대학로가 아닌 혜화로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2009년 게릴라극장이 처음 혜화로에 문을 열었고 홍사소극장·Mr.맛있는 극장 등이 뒤이어 들어섰다. 당시 연극계에는 ‘탈대학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대학로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질됐다는 이유에서였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학로에는 대형 술집과 식당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이 경쟁하듯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대학로에 흐르던 여유와 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연극계의 사정은 나빠졌다. 공연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2009년 대학로에는 무려 130개의 크고 작은 극장이 자리 잡았다. 2004년에는 80개에 불과했다. 공연의 인기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2004년 5월 8일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 많은 건물주가 자신의 건물에 공연장을 만들어서다. 공연장이 있는 건물은 관련법상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공연장이 늘어났지만 연극계는 되레 변질됐다. 일부 극장의 사장들은 더욱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이 강한 연극이나 공연만을 무대에 올렸다. 혜화역 입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대관료도 연극인을 압박했다. 돈을 벌기 위해 극장을 연 사장들은 턱없이 높은 대관료를 요구했다. 하루 30만원 하던 대관료가 지금은 50만~100만원으로 올랐다.

혜화로가 새로운 연극거리로 거듭난 데는 연극인의 이런 아픔과 고뇌가 숨어 있다. 혜화로는 사실 연극공연을 하기에 좋은 입지가 아니다. 교통이 불편해서다. 이곳을 찾기 위해선 혜화역에서 내려 10분 이상 걸어야 한다.

혜화로 극장들은 이런 약점을 작품성으로 극복하려 했다. 김제훈 키작은소나무극장 대표는 “2010년 처음 극장을 세웠을 땐 인지도가 낮아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관객들이 ‘이 극장에서 하는 공연은 수준이 높은 편이다’는 인식을 가지면서 지금은 공연장이 꽉 찰 때가 많다”고 말했다. 최윤우 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은 “혜화로에 있는 극장의 90%는 기획에서 연출까지 직접 담당하는 순수창작연극을 하고 있다”며 “혜화로에서 하는 공연은 개성이 강하고 실험적인 연극이 많아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극계의 이런 노력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달나라 연속극’을 보기 위해 혜화로를 찾았다는 김현주(32)씨는 “이 연극을 만든 김은성 작가의 팬”이라며 “곧 극을 내리는데 오늘 밖에 시간이 없어 퇴근하자마자 달려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 박준권(27)씨는 “혜화로에 소극장이 모여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며 “주변에 특이한 카페도 많아 앞으로 자주 들를 생각”이라며 웃었다.

소극장 임대료 2배가량 올라
연극 공연장이 인기를 끌면서 혜화로의 주변 모습이 바뀌고 있다. 북카페, 작은 공방 느낌의 카페, 이탈리아 정통 레스토랑 등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혜화로에서 한성대학교 방향으로 뻗은 골목에 자리 잡은 원룸촌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곳에 있는 일부 원룸 1층은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카페 ‘사흘’의 대표는 “늘어난 연극관객을 잡기 위해 직접 내린 원두커피를 팔고 있다”며 “처음 문을 열 때 임대료가 200만원이나 돼 망설였지만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업 초반에는 적자로 고전했지만 3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랜드마크 건물도 들어선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1120㎡(340평) 규모의 복합 문화·예술 공간 ‘혜화문화센터’가 2013년 완공된다. 이 센터를 짓고 있는 재능교육은 “공연장과 갤러리 등을 갖춰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도 다다오는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 설계자다. 박준호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건축이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라며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을 보기 위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상징성이 크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면 1~2년 내에 혜화로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혜화로의 변신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곳은 부동산이다. 혜화로를 거닐면 수십 개의 부동산 중개소를 볼 수 있다. 임대료도 뛰었다. 부동산 관계자는 “49.5㎡(약 15평) 기준으로 100만원이 채 되지 않던 월 평균 임대료가 소극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3년 전부터 뛰기 시작해 지금은 200만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벌써 올 초에만 3곳의 카페가 추가로 생겼다”며 “권리금이란 개념이 없던 동네였는데 최근에는 3000만~5000만원 정도의 권리금을 내야 하는 상점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9년째 성북동에 살고 있는 박재민(29)씨는 “혜화로와 맞닿아 있는 곳에 원룸촌이 있어 상가형성이 여의치 않았지만 최근에는 카페와 식당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어 혜화로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mpark2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