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관련되어 동양고전에
등장하는 멋진 시구들을
잘 정리한 책이 선을 보였습니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이
꽃 이야기와 잘 버무려진 책입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른 봄날의 이야기에는 (...)
1. 퇴계 이황은 매화를 몹시 사랑하여 항상 매화를
가까이 두고, 매화를 매형(梅兄)이라고 높여 불렀습니다.
평생 100여 수가 넘는 많은 매화 시를 지었는데,
그중에서 62제 91수를 친필로 쓴 별책의
(매화시집)을 남겨놓았습니다.
퇴계에게 매화를 산림처사를 종신하겠다는 마음의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서울의 벼슬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도산의 매화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21세 때의 일입니다.
선생의 깊은 맹세 한매에 붙였는데
서울의 풍진 속에 잘못 홀로 왔네
돌아갈 생각 드넓은데 봄이 저물지 않아
진정 성긴 그림자 사랑하며 시듦을 위로하네
-기대승, ‘삼가 퇴계 선생의 매화 시에 차운하다’
2. 고봉(高峯) 기대승이 퇴계의 매화 시에 차운하여,
퇴계에 대한 사모와 이별의 정을 담은 시입니다.
고봉 또한 수십 수의 매화 시를 남겼습니다.
그대 모진 눈과 바람 속에 맡겨두고
창 안에서 맑고 고고하게 탈 없이 지내네
고향에 돌아와 누워 그리움이 그치질 않는데
신선의 참됨이 티끌 속에 있으니 애석하구나
-이황, ‘기명언이 분매 시에 화답하여 보내온 것에 차운하다’
3. 퇴계가 고향에서 한양의 고봉에게 보낸 매화시입니다.
고봉은 32세 때에 퇴계를 처음 만나 13년 동안 백여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리학에 관해 논쟁했습니다.
이 논쟁은 조선 철학사에서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26살이란 나이 차이를 초월한 두 사람의 학문적 우정은
참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매화 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물어보자 산중의 두 옥선이여
봄을 머물러 어찌 뭇 꽃들이 핀 날에 이르렀는가
상봉하니 양양관 같지 않은데
미소 띠고 추위 속에 내 앞을 향했네
-이황, ‘도산에서 매화를 찾다’
‘나는 임포선인의 환골선태인데
그대는 돌아온 학이 요동 하늘로 내려운 것 같구려
서로 만나 즐거움 하늘이 허락한 것이니
양양으로 선후를 비교하지 마시오
-이황, ‘매화가 답하다’
4. 도산으로 귀거래한 퇴계는 도산의 매화와
상봉의 기쁨을 주고받았습니다.
시에서 언급한 양양관은 경북 예천에 있던 군청 청사입니다.
(...) 퇴계는 매화와 문답하는 시를 많이 지었는데,
이 세상에서 매화야말로 진정한 지우였던 것입니다.
퇴계는 결국 고산처사 임포처럼 속세에
발걸음을 끊고 매화 옆에서
영원히 도산처사가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매화를 사랑한 퇴계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매화와 함께 있었습니다.
5. 이날 아침(1570년 12월 8일) 모시고 있던 사람에게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오후 다섯 시경에 누운 자리를 정돈하랴 하셨다.
부축하여 일으키니, 앉으신 채 조용하게 떠나가셨다.
-‘퇴계집’ 연보 중에서
*기태완, (꽃, 들여다 보다), 푸른지식, pp.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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