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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의 이른바 G2 리스크가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 의장이 출구전략 일정을 밝히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아직 돈 잔치를 더 즐기고 싶은 금융시장은 혼비백산했다. 주가가 급락하고 금리가 급등했다. 특히 뭉칫돈이 유입된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불안에 휩싸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신용경색 우려가 더해졌다.
전 세계가 경기 침체의 몸살을 앓는 가운데 그나마 성장의 키를 쥔 중국마저 신용경색 논란에 빠지면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마저 감돈다. 미국의 출구전략 논란으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혼란이 중국의 신용경색 우려로 공포로 변한 것이다.
너도나도 현금화 대열에
미국의 출구전략은 예정된 수순이다. 시장에서는 조금 더 돈놀이를 하고 싶겠지만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풀린 돈이 회수되면서 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다만, 출구전략이 전면 중단되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나빠지면 다시 대응 정책이 나올 수 있는데도 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최근 시장의 급락은 글로벌 금리 상승의 변곡점에서 발생하는 자산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정을 마치고 하반기에는 좋아질 것이라는 이른바 ‘상저하고’의 전망에 찬물을 끼얹는 변수가 바로 중국 신용경색 우려다. 중국 정부의 대출 규제를 피해 급증한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 문제의 발단이다.
중국 정부와 그림자 금융의 싸움이 단기 자금 경색을 일으키면서 중국의 단기 금리가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했다. 정부에서 통제 가능한 사안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만약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된다면 미국 금융위기와 맞먹는 충격이 예상된다.
시장이 이렇게 G2 리스크 탓에 출렁이면서 거액 자산가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거액 자산가들의 움직임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유동성 확보다. 주식·채권·부동산을 포함해 거의 모든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처분 가능한 자산은 가급적 처분해서 MMF(Money Market Fund)나 한 달, 석 달짜리 회전예금에 넣어 단기 자금을 확보한다.
특히, 홍콩 주가지수와 국내 개별 종목인 LG디스플레이 두 가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가입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올 10월이면 3년 만기가 되는데 만기까지 두 기초자산의 가격이 가입 때의 60% 이상을 유지하면 연 14%씩, 총 42%의 수익이 발생한다.
둘 중 하나라도 60% 미만으로 떨어지면 떨어진 만큼 손해를 본다. 공교롭게도 이 고객과 상담 당일 두 기초 자산 모두 60% 대 중반을 유지했다. 그런데 중도해지 수수료를 부담하고 중도에 해지하면 원금 수준만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해지해서 원금 정도를 받고 끝내느냐, 아니면 4개월을 더 기다렸다가 40%가 넘는 이익 또는 손실을 보느냐의 문제였다.
필자는 최근 시장의 급랭이 과도하다고 여겼다. 중국의 신용 경색 문제도 정부의 통제 범위에 있기 때문에 기다려 보자고 제안했다. 일부 해지가 가능했다면 70%는 해지하고 30%는 유지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일부 해지가 불가능한 상품이었다. 전부 해지 또는 유지 중 택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G2 리스크의 공포 속에서 5억원이라는 금액이 부담스러웠는지 고객은 끝내 해지를 선택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여부는 10월이 되면 알 수 있겠지만 두 기초자산은 다시 반등에 성공해 이익 실현의 가능성이 더 커졌다. 물론 그 고객은 수익보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여길 수 있으므로 선택에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G2 리스크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원자재 가격 또한 맥을 못춘다. 특히, 달러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금의 경우 단기간에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앞으로도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금이야말로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닌 위험 자산인데도 거액 자산가들의 ‘금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금 가격이 최근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그동안 금 매입 시기를 저울질하던 거액 자산가들의 뭉칫돈이 몰렸다.
중국펀드는 투자자들의 무덤
순도 99.9%의 은행 골드바는 품귀현상이 빚어져 대량 구매를 원하는 거액 자산가들이 3개월씩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모든 투자의 제일 원칙은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목표 수익을 가장 안정적으로 내는데 있다. 따라서, 가격이 급변할 때 투자에 나서는 건 금물이다. 지금처럼 가격이 요동칠 때 섣불리 바닥으로 보고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그러나 거액 자산가들의 금에 대한 집착은 막무가내다.
G2 리스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중국 펀드 투자자들이다. 2007년 차이나 펀드 열풍에 휩싸여 묻지마 투자에 나섰다가 큰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희망의 노래를 불렀건만 최근 들어 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 시진핑 정부가 성장보다는 안정에 치중하면서 ‘그림자 금융’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선 때문이다. 차이나 펀드에 발이 묶인 거액 투자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지금이라도 정리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실제 펀드에 10억원을 투자해 원금이 5억원으로 반 토막이 됐다가 8억원으로 회복한 한 투자자를 보자. 최근 다시 6억원 이하로 떨어지면서 정확히 잔액의 반을 부분 해지했다. 중국 증시가 장기적으로 오를 수 있겠지만 당분간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면 일부라도 현금으로 바꿔 다른 자산으로 갈아타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시장에서는 G2 리스크가 공포를 부르고, 공포가 손실 확정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사례가 줄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