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무해하다” vs “길게는 해롭다” 팽팽 ‘美 유전자 조작 밀’ 안전성 논란

도일 남건욱 2013. 7. 18. 14:55


Science - “무해하다” vs “길게는 해롭다” 팽팽
‘美 유전자 조작 밀’ 안전성 논란
조현욱 중앙일보 객원 과학전문기자
미국 오리곤 주에서 유전자 조작 밀 나와 … 한·일 미국산 밀 수입 중단


제초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옥수수와 콩, 살충제 성분을 스스로 생산하는 면화…. 미국에서 왕성하게 키우는 유전자 조작 작물이다. 이에 비해 유전자 조작 밀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재배 승인을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5월 미국 오리곤 주에서 이런 품종이 확인됐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미국산 밀의 수입을 중단했고 유럽연합(EU)은 수입되는 미국산을 면밀히 조사 중이다. 소비자들이 안전성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다. 6월 5일 과학뉴스 사이트 ‘라이브 사이언스’는 ‘유전자 조작 밀은 안전한가?’라는 기사를 싣고 이 문제를 조명했다. 결론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몬산토가 6월 5일 새로운 품종의 유전자 조작 밀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한 것도 안전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개발은 2011년 이미 시작됐으며 현재 미국 노스다코타주에서 시험 재배 중이라고 한다.

유전자 조작 밀, 시장 나온 일 없어

유전자 조작 밀은 시장에 출하된 일이 없다. 하지만 이는 안전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 단순히 경제 문제일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에서 밀은 수출 위주인 농산물이다. 그런데 유전자 조작 밀에 대한 세계 시장의 수요는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에서 자연산 밀이 아닌 품종을 키울 이유가 없다.” 미 코넬대에서 식물 육종 및 유전학을 담당하는 마거릿 스미스 교수의 말이다. 

몬산토가 유전자 조작 밀의 판매 승인을 받으려면 미 농무부에 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신청을 한 일이 없다. 실험용 재배의 승인을 받은 일이 있을 뿐이다. 대중이 이런 제품을 잘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본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농부들이 이 품종의 상용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인 것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인이 먹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대부분은 고도로 가공된 형태이다. 면화씨 기름, 콩 단백질 등의 성분이 그런 예다. 이런 성분이 식품에 들어있다고 해도 소비자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한국에서는 가공 식품에 들어가는 주요 성분 다섯 가지를 표시하게 돼 있다. 

다시 말해 함량이 5위 이내에만 들지 않으면 유전자 조작 농작물이 과자 등에 들어있더라도 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밀의 경우는 다르다. 스미스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밀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서 “이런 농작물을 먹을 때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 밀의 재배 실험은 식품 공급계통에 섞여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엄격한 관리 하에 이뤄진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밀 육종과 유전학을 담당하는 클레이 스넬러 교수의 말이다. 그는 “시험 재배가 끝난 밀밭은 반드시 불을 질러 태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설사 몬산토의 유전자 조작 밀이 유출됐다고 하더라도 식품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

이 밀에 삽입된 유전자는 ‘라운드 업 레디’ 제초제에 내성을 지니게 해주는 것이다. 밀에 앞서 이미 옥수수·콩(대두)·면화에 삽입된 것이다. 스넬러는 “유전자 조작 콩의 95% 이상이 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면서 “이 콩은 세계 전역에 수출됐지만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킨 일은 없다”고 말했다. 몬산토는 이미 200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이 밀이 식품으로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전자 조작 작물이 식품으로서 안전하다는 과학적 연구결과는 수없이 많다.” 소비자 단체인 ‘과학과 공공의 관심 센터(CSPI)’에서 바이오테크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그리고리 재프의 말이다. 미국인들은 1995년 이래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먹고 있지만 건강에 해롭다는 보고가 나온 적은 없다. 

하지만 안전치 못한 유전자 조작이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 예? 졍?일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을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식물에 삽입될 수 있다. 현재 유전자 조작 농산물로 식품을 만드는 회사는 FDA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FDA는 이들 농산물이 안전하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은 시판에 앞서 승인을 받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CSPI는 강조한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이를 밝히는 라벨을 붙여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많은 토의가 진행 중이다. 재프는 “라벨을 붙이는 것으로 안전을 대신 담보할 수는 없다”면서 “안전성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있는 농산물은 시장에 출하되지 않아야한다”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밀의 발견 경위는 최근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가 상세히 보도했다. 한 농부가 자신의 농지커에 제초제를 살포했다. 씨도 뿌리지 않았는데 여기 저기서 잡초처럼 자라는 밀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밀은 몬산토의 강력제초제 ‘라운드 업 레디’에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당혹한 농부는 오리곤주립대에 샘플을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검사 결과 ‘라운드 업 레디’에 내성을 주는 유전자가 확인됐다. 유전자 조작 작물이라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5월 30일 미국 농무부도 이같은 결과를 재확인했다. 문제는 이 밀이 어떻게 해서 그곳에 있느냐는 점이다. 이 종자를 개발한 것은 미국의 세계 최대의 곡물 종자회사인 몬산토다. 1998~2005년 오리곤을 포함한 미국 16개 주에서 시험 재배했다. 하지만 회사는 시장 전망이 어둡다는 이유로 상업화를 포기하고 해당프로그램을 폐기했다.

2006년 ‘유전자 조작 쌀’ 사건과 비슷

그 밀은 어떻게 해서 10년 가까운 시차를 뛰어넘어 부활했을까. 하나의 시나리오는 과거의 시험 재배지에서 바람에 날려간 씨앗이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 때문에 문제의 농장 단 한곳에서 싹을 틔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바람에 날려간 종자가 지속적으로 인근 밀밭을 오염시켜왔다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간의 실수로 종자를 뒤섞어 팔아왔다는 것이다. 미스터리가 증폭되는 것은 두 종자의 개화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험 종의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갔다 할지라도 이번에 문제된 종자를 수분시킬수는 없다. 과거 시험 재배한 것은 봄에 씨를 뿌리는 종류고 이번에 발견된 것은 겨울에 파종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06년 발생한 ‘유전자 조작 쌀’ 사건과 비슷하다. 당시 농무부는 수출용 쌀에 유전자를 조작한 특정 품종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 식품 승인을 받지 않은 실험·연구용 품종이었다. EU는 즉각 미국 장립종(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종류) 쌀의 수입을 중단했고 쌀의 국제 시세는 곤두박질쳤다. 이 쌀을 개발한 독일의 바이에르 크롭사이언스는 피해보상에 최대 7억50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2011년 합의했다. 오염의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FDA는 당시의 쌀이나 이번의 밀에 대해 식품용으로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사람이 장기간 복용했을 때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세계 소비자의 반응도 차가운 편이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와 콩은 사료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식품으로서의 안전성은 그다지 우려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생태계 교란을 염려한다.

영국 ‘왕립협회보 B’에 실린 논문을 보자. 유전자를 조작한 대서양 연어와 브라운 송어 사이에 수퍼 잡종이 탄생했다. 캐나다 연구팀에 따르면 잡종 치어의 생장 속도가 유전자 조작 연어보다 빨랐다. 이에 앞서 FDA는 환경 영향 평가에서 ‘유전자 조작 연어가 야생에서 생존·번식할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하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잡종이 출현·생존했을뿐 아니라 경쟁력도 더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인공유전자가 야생 개체군에 흘러 들어가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위험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당 연어는 상업화를 위한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연구로 체면을 구긴 FDA가 어떤 방침을 택할 것인지가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