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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비교문화경영 관련 과목을 가르칠 때 첫 시간에 보여주는 슬라이드가 있다. ‘동양이 서양을 만나다(East meets West)’라는 제목의 그래픽이다. 각각의 주제에 대한 동서양의 서로 다른 반응과 사고방식을 동양은 붉은색, 서양은 푸른색으로 구분해 비교해 놓았다. 가령 ‘의견(opinion)’이란 제목의 내용을 보면 동양은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고 서양은 직선이다. 문제해결 방식(Handling of problem)도 동양은 가운데 장애물을 에둘러 가는데 비해 서양은 가운데 장애물을 정면 돌파한다.
서양인의 직설적이고 동양인의 우회적인 태도는 ‘분노(Anger)’의 표현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적인 자리에서 동양인은 기분이 상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서양인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는 동양의 이른바 ‘체면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단주의 vs 개인주의
‘기분과 날씨(Moods and Weather)’와의 상관관계에서도 동양인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날씨에 관계없이 밝은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다. 여름 한철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흐리거나 비가 잦은 유럽의 경우는 날씨가 사람들의 기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날씨가 맑으면 명랑하지만 날씨가 궂으면 우울해지는 유럽인들이 동양인에게는 변덕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동양인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서양인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나’에 대한 생각이나 ‘삶의 방식(way of life)’에서 뚜렷하게 대비된다. 동양인에게 ‘나’는 전체의 작은 일부이지만 서양인에게는 세상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존재다. 동양인에게 삶은 누군가와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지만 서양인에게는 혼자 알아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나 혼자만의 삶이다.
동양인에게 ‘상사(boss)’는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별종, 넘볼 수 없는 특출한 사람이지만 서양인에게 상사는 직장에서 상사일뿐, 직장 밖에서는 우리와 대등한 사람일 뿐이다. 네덜란드의 비교문화경영학자 호프 스테드는 문화의 다섯 가지 차원 중 하나인 ‘권력 거리(power distance)’가 동양인은 멀고 서양인은 가까운 데서 이러한 차이가 빚어졌다고 설명했다.
중국 출신의 양 리유 베를린예술대학 디자인학과 교수가 제작한 이 그래픽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별도의 설명 없이 간단한 그래픽으로 표현해 세계 각국의 비교문화 관련 강의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1979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11세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한 양교수는 영국 브리스톨 대학을 졸업하고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석사를 받은 뒤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디자인 분야의 많은 상을 석권했다.
그는 동양인(중국인)으로서 서양(독일)에 살아가면서 자신이 겪은 두 세계의 차이를 그래픽으로 시각화했다. ‘줄서기(making a queue)’ ‘식당(Restaurant)’ ‘시간 지키기(Punctuality)’ 등에서는 질서의식, 시간엄수 의식이 박약하고 공공장소인 식당에서 고성으로 대화하는 등 공공의식·시민의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동양인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에 대해 배우고 문화적으로 상호 수렴해가는 현상을 그는 ‘최신 유행(what’s trendy)’ ‘운송수단(transportation)’ 등의 코너에서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동양에서 ‘최신 유행’은 포크로 집어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양식을 즐기는 것이라면 서양에서 최신 유행은 자신들에게 낯선 수저를 사용하여 동양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다.
중국에서 운송수단으로 과거에 자전 거를 주로 이용했다면 경제 발전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된 요즘은 웬만한 중산층은 자동차를 구입해 몰고 다닌다. 유럽에서는 과거에 자동차를 주로 이용했다면 요즘은 환경보전을 고려하여 공해없는 자전거나 롤러블레이드 등을 타고 출퇴근하는 것이 미덕이 됐다.
‘미에 대한 개념’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상대방의 피부색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역설을 보여준다. 한·중·일을 막론하고 ‘화이트닝’ ‘미백’이란 이름이 붙은 화장품이 대세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유색 인종인 동양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의 첫 번째 조건은 눈부시게 하얀 피부다. 태생적으로 흰 피부인 서양인에게는 그을린 구리빛 피부가 건강미의 상징이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여행(travel)’이다. 동양인에게 여행은 곧 낯선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것이지만 서양인에게는 문자 그대로 구경을 하는 것, 관광(sightseeing)이다. 그래서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일본·태국인 등 동양인에게 여행의 필수품은 카메라이고 여행에서 남는 것은 내가 그곳에 다녀왔음을 입증하는 ‘인증샷’이다.
미시간대 석좌교수(심리학)인 리처드 니스벳이 지은 『생각의 지도』는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동양과 서양이 매우 다른 사고방식과 인지 과정을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또 그 차이가 서로 다른 자연환경·사회구조·교육제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동양은 복잡성을 추구하고 고대 그리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서양은 단순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인은 좀 더 종합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부분보다는 전체에 주의를 더 기울이고 타인이나 사물끼리 맺은 관계를 통해 사람과 사물을 파악하려 한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순환하고 따라서 철학·의학·천문학이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상당히 전체론적(holistic)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서양은 큰 그림보다는 개별적인 사람과 사물 자체에 주의를 기울인다. 분류와 분석을 통해 사물의 특성을 발견하고 사물의 행위를 지배하는 규칙을 찾아내어 인과 관계를 추리한다. 상황적인 요인을 무시하고 단순한 모델로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려다 보니 과학 발전에는 유용하지만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동양이 서양을 만나다’ 그래픽에서 보았듯이 동양인의 가치관이 원형적이라며 서양인의 가치관은 직선적이다. 동양인들에게는 천지만물이 늘 변화하면서도 끊임 없이 본래 출발한 자리로 회귀하고자 한다는 순환적인 세계관이 있다. 금·수·목·화·토의 오행(五行), 동·서·남·북·중의 오방(五方)과 청·백·홍·흑·황의 오색(五色), 오대양(五大洋) 육대주, 간장·심장·비장·폐장·신장의 오장(五臟)육부, 매운맛·신맛·짠맛·쓴맛·단맛의 오미(五味) 등이 서로 대응하면서 자연과 인간 우주가 음양오행의 순환운동을 따른다는 것이다.
음과 양으로 대표되는 이원적인 가치관은 대립적이라기 보다는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이 존재할 수 없는 상보(相補)적 관계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전화위복(轉禍爲福)·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사자성어가 발달한 것도 이 같은 세계관이 바탕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순환적 세계관 vs 이분법적 세계관
서양인들의 가치관은 절대적이고 배타적이다. 초월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초월적인 존재를 향해 나아가려는 선(善)과 그로부터 멀어지려는 악(惡)을 규정했기에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 적과 동지의 이분법은 절대적이고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니스벳은 이런 사고의 차이를 고대 중국의 농경문화와 개별 도시국가들로 이뤄진 고대 그리스의 해양문화의 차이로 설명한다. 많은 인원의 노동력이 필요한 농경문화에서는 대가족이 오랫동안 같은 지역에서 살아왔기에 협동과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비해 일찍이 해상무역이 발달한 그리스는 해외 여행이 자유롭고 이방인들의 왕래가 잦아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이 중시됐다. 그로부터 2000여년이 지난 21세기, 세계화의 진전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이제 공자의 후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손들은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며 닮아가고자 한다. 양쪽의 장점을 취한 신인류의 출현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