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Management - 3m, 1m, 46cm 거리의 숨은 뜻

도일 남건욱 2013. 7. 18. 15:01


Management - 3m, 1m, 46cm 거리의 숨은 뜻
김세원의 비교문화경영
김세원 가톨릭대 교수
밀접한·개인적·사회적·공적인 공간 존재 … 문화권마다 편안한 대면 거리 달라


‘3m 격식 있는 거리, 1m 일상 대화의 거리, 46cm 숨결이 닿는 친밀한 거리’. 개그우먼 세레나 허가 국민 남동생 이승기에게 점점 접근하는 동안 자막이 계속 바뀌며 거리 좁힘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지난해부터 등장한 LG생활건강의 ‘페리오46cm’ 치약 광고다. 이 광고는 최근 개그맨 김준현이 여장을 하고 나와 ‘3m 몸매가 눈에 띄는 거리, 1m 얼굴이 드러나는 거리, 46cm 하얀 미소가 닿는 거리’로 패러디 했다. 이 광고를 본 시청자들은 한번쯤 3m·1m·46cm 거리의 의미와 유래를 궁금해했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사람들이 영토권(동물이 특징적으로 한 영역을 설정해 동일종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그것을 방어하는 행동)을 바탕으로 타인과의 상황에 따라 공간의 크기를 선택하는 것을 밝혀내고 이를 네가지로 분류했다.

그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공간을 가족이나 연인 또는 가까운 친구에게만 허용하는 밀접한 공간(intimate space), 친구나 지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개인적 공간(personal space), 회의나 사교모임에서 사용되는 사회적 공간(social space), 강연할 때 연사 주변에 형성되는 공적인 공간(public space)으로 분류했다. 밀접한 공간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0.5m(46cm)이내, 개인적 공간은 1.2m 이내, 사회적 공간은 3~3.6m 이내, 공적인 공간은 7.6m 이내의 거리를 말한다.

46cm 이내의 ‘밀접한 공간’은 상대방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정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거리로 아무리 동료나 선후배 사이라고 하더라도 이성간에는 이 공간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이 공간은 자기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사적인 공간이므로 이 영역을 침범 당하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나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양팔을 벌려 원을 그렸을 때 만들어지는 ‘개인적 공간(46cm~1.2m)’은 격식과 비격식의 경계 지점으로 여기서 멀어지면 긴장감은 줄어들지만 친밀감이 떨어지고 좀 더 다가서면 긴장감이 고조된다. ‘밀접한 공간’과 ‘개인적 공간’을 사적 영역이라고 한다면 사‘ 회적 공간’과 ‘공적 공간’은 공적 영역에 속한다. 

‘사회적인 공간(1.2~3.6m)’은 직장에서 공적인 업무로 대화할 때 주로 사용되며 대화 도중에 참여와 이탈이 자유롭다. ‘공적인 공간(3.6~7.6m)’은 공중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나 강연 등에서 연사 주변에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공간이다.

홀은 이처럼 인간이 공간을 구조화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대인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만 아니라 문화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연구결과 를 종합해 ‘근접공간학(proxemics)’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근접공간학은 문화가 인간이 공간을 구조화하고 사용하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 접촉 꺼리는 영국인

필자가 1990년대 초반 로이터 펠로우로 프랑스 보르도에서 1년간 연수를 할 때 처음 겪은 문화적 충격은 프랑스식 인사법인 ‘비즈(bise)’였다. 소개를 받자마자 처음 보는 외간 남자가 가까이 다가와 몸을 바짝 붙이고 양쪽 뺨에 번갈아 뽀뽀를 하는 바람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비즈에 익숙해지면서 뺨을 서로 맞대고 입술로 키스할 때와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정식 인사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비즈의 횟수는 지방에 따라 달라 일반적으로는 두 번 이지만, 필자가 있던 보르도와 엑상프로방스는 세 번, 앙제와 파리는 네 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년을 프랑스에서 사는 동안 비즈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됐다 싶었는데 영국으로 이사를 가니 상황이 달라졌다. MBA 코스의 첫 수업시간, 습관적으로 동료 대학원생에게 가까이 다가가 뺨을 내밀었는데 상대방은 정작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어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 새롭다. 영국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악수가 일반적인 인사법이다.

불가근불가원 원칙 필요한 ‘공간의 사회학’

사실 영국과 프랑스의 공간 활용의 차이는 인사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한정된 공공장소에서 타인과의 신체접촉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이에 비해 영국의 대도시에서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국인들이 낯선 타인과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것이다. 승객들로 붐비는 러시아워에 행여 타인과 신체 일부가 닿을까 덩치 큰 영국인들이 잔뜩 움츠리고 서있는 모습은 진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홀은 프라이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인적 공간’의 크기가 문화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인과 북유럽인의 경우는 사방 팔 길이 정도의 개인적인 공간이 확보돼야 편안함을 느끼는데 비해 남유럽·중남미·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상대적으로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이 덜해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같은 유럽이라도 영국은 북유럽 중에서도 앵글로색슨 문화권에 속하고 프랑스는 남유럽 중에서 라틴유럽 문화권에 속해 각자 인식하는 개인적인 공간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인사법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신체 접촉의 허용 범위가 다른 것이다. 위계질서 개념이 철저한 아시아에서는 서로 잘아는 사이라도 지위가 낮거나 젊은 사람이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연장자와 나란히 앉을 때 존경의 표시로 가까이 앉기보다는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텐트 내의 공동생활이 일상화된 유목민의 전통 때문인지 아랍인들의 ‘개인적인 공간’은 남유럽인이나 아시아인들보다도 좁다. 부부가 아닌 이성간의 접촉은 금기이지만 가까운 동성끼리는 서로 콧등을 부비거나 포옹하는 인사법이 발달했다. 아랍어에 ‘프라이버시’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아예 없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아랍인들에게 친밀하거나 진지한 대화는 상대방의 숨결이 얼굴에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좁은 ‘개인적인 공간’ 개념을 가진 아랍인과 넓은 ‘개인적인 공간’ 개념을 가진 미국인이 비즈니스 협상을 하면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진다. 

아랍인은 협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수록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일정 수준의 개인적 공간이 확보돼야 편안함을 느끼는 미국인은 그럴수록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뒷걸음질칠 것이다. 아랍인은 자신이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나는 미국인에게 불신감을 느끼거나 뭔가 속이려고 한다는 느낌을 가질지 모른다.

앵글로색슨 문화권에 속하는 미국인과 게르만 문화권에 속하는 독일인은 ‘공적인 공간’의 범위가 서로 다르다. 가령 문을 열고 문지방 위에 서서 안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미국인에게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독일인에게는 사적인 영역의 침해라서 불편함을 느낀다. 

미국인들에게 닫힌 문은 음모나 소외를 상징하기에 대개 사무실에서 문을 열어둔 채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독일에게 열린 문은 업무의 해이와 태만을 상징하기에 근무 중에는 사무실 문을 닫아놓는다. 미국인에게 독립된 사무실은 공적인 공간이지만 독일인에게는 사적인 공간이다. 

미국의 사무실 문이 대체로 얄팍하고 가벼운데 비해 독일의 사무실 문이 육중하고 2중 문인 이유는 바로 이 ‘공적인 공간’의 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사무실 의자와 집기는 상황에 따라 재배치하기 쉽도록 대체로 가벼운 재질이지만 독일의 경우는 제3자가 ‘개인적 거리’ 이내로 침범하지 않도록 육중한 편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업 파트너와 비즈니스 협상을 할 경우, 이런 공간 개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동양의 현자들이 일찍이 설파한 인간관계에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