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Management - 시간은 돈 vs 시간은 시간일 뿐

도일 남건욱 2013. 9. 28. 09:24


Management - 시간은 돈 vs 시간은 시간일 뿐
김세원의 비교문화경영
김세원 가톨릭대 교수
문화권에 따라 시간관념 딴판 … 영화 ‘인 타임’은 시간 중시하는 미국적 가치관 반영


커피 한 잔에 4분, 점심 식사비 30분, 버스비 2시간, 최신 스포츠카 구입비는 59년…. 2011년 말 개봉한 할리우드 SF액션 스릴러 영화 ‘인 타임’은 ‘시간은 곧 돈’이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격언이 현실화된 미래가 배경이다. 사람들은 모두 팔목에 형광생체시계가 내장된 채로 태어난다. 

이 시계는 유전자 조작으로 노화가 정지되는 25세가 되는 순간 작동을 시작한다. 남은 시간은 1년.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서 빈부의 격차는 수명과 직결된다. 수백 년의 시간을 저축해 놓은 부자는 꽃다운 외모로 영원히 젊음을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부지런히 일을 해서 시간을 벌거나 빌려야 하루하루 연명할 수 있다.

지폐와 동전이 모두 사라진 세상, 모든 거래는 시간으로 결재된다. 사람들은 생산 활동의 대가를 시간으로 받으며, 그 시간으로 물건을 사고 식사도 한다. 걸인은 “5분만 달라”며 시간을 구걸하고 잔여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귀금속을 전당포에 맡기고 시간을 빌리기도 한다. 거리엔 ‘무조건 99초 상점(현실 세계의 1000원숍)’이 즐비하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보유 시간의 일정분을 떼어내 은행에 예금하고 이자 시간을 받기도 한다. 주의할 점은 한 가지. 주어진 시간을 모두 다 쓰고 잔여 시간이 0이 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사람은 노동을 해서 하루를 버틸 시간을 벌거나, 은행에서 빌리고 그도 안 되면 훔쳐야 한다.

주인공 윌 살라스(저스틴 팀버레이크 분)는 하루 노동으로 하루씩 수명을 연장하는 날품팔이 노동자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와 함께 빈민가에 산다. 뭔가를 소비하지 않아도 시간은 쉼없이 흐르기에 윌은 남은 수명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십번씩 손목에 새겨진 생체시계를 들여다 본다. 어느 날 일을 나갔다 귀가 길에 버스삯이 기습 인상되는 바람에 버스를 포기하고 전력질주를 하던 월의 어머니가 시간이 다해 윌의 코앞에서 죽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시간은 문화에 지배되는 관념

시간에 관한 우리의 관념은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시간이란 객관적 실재라기보다 일종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어떤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나의 활동을 다른 사람과 어떻게 일치시키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문화권에 따라 시간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시간관을 ‘단일 시간(monochronic time)’과 ‘복합 시간(Polychronic time)’ 으로 구분한다. ‘단일 시간’ 문화권은 시간을 선형적이고 관리가능하며 세분된 대상으로 본다. 영국·미국·캐나다 등 앵글로 색슨, 독일·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의 게르만·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단일시간 문화권에 속한다. 

이들은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을 선호한다. 일에 집중하며 어떤 시간적 순서에 따라 각 단계를 진행시켜야 할지 미리 규정한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더 많은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돌발적인일로 일정표를 던져버리게 되는 상황을 몹시 싫어한다. 영화 ‘인타임’은 극단적인 예이지만 단일 시간 문화권에서 시간은 돈, 다시 말하면 부족한 재화이다.

이른바 ‘복합 시간’ 문화권의 사람들은 시간을 총체적으로 취급하며 정한 시간 없이 수시로 하는 활동을 중요하게 여긴다. 최후의 목표는 있지만 목표에 다다르는 데에는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수많은 징검돌이 존재한다. 사람은 최종 목표로 가는 도중에 몇 개의 돌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복합 시간 문화권에서 시간은 실체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따라서 단일 시간 문화권에서처럼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시간관은 자연발생적이며 비구조화된 특성을 지닌 라이프 스타일을 만든다. 아랍·아프리카·스페인·중남미 등 복합 시간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끝내려 애쓰기보다는 사람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홀은 저서 『침묵의 언어』에서 시간관이 다른 사람들이 비즈니스 협상을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를 사례로 들었다. 홀은 ‘복합 시간’ 문화권의 일본인 협상자들이 상대방 미국인들의 귀국 비행기편이 언제인지 확인하고 출발 예정일 직전에 중대한 양보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단일 시간’ 문화권의 미국인들은 일정이 어그러지기보다는 차라리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편을 택할 것이라고 보고 일본 협상자들이 시간을 끈 뒤, 승부수를 둔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비교문화경영학자 폰스 트롬페나스는 시간을,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차적인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미래에 대한 예측과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결합돼 현재의 활동을 형성하는 ‘동시적인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시간관을 분류했다.

트롬페나스의 ‘순차적 시간관’은 홀의 ‘단일 시간관’과, 그의 ‘동시적 시간관’은 ‘복합 시간관’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순차적 시간’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소모되는 상품으로 보며 시간과 시간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해 꽉 짜인 일정을 잡는 경향이 있다고 트롬페나스는 지적한다. 따라서 모임에 지각하는 것은 ‘시간이 곧 돈’인 세계에서 다른 참석자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행위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시적 시간’ 문화는 시간 엄수를 고집하지 않으며 모임 시간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 앞뒤로 15~30분에 걸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범위는 지역에 따라 달라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 유럽 라틴문화권은 15분 내외, 중남미는 몇 시간, 중동·아프리카는 하루 온종일이 될 수도 있다. 

‘동시적’ 또는 ‘복합 시간’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를 들면 여행사 발매 창구에서 일하는 여성이 비행기표 발권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친구와 통화하는 식이다.

유럽의 15분이 아프리카에서는 하루 종일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는 ‘순차적 시간’ 문화권의 사람은 본의 아니게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동시적 시간’ 문화권의 사람을 모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트롬페나스는 그의 책 『문화와 세계경영(Riding the wave of culture)』에서 네덜란드 회사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 관리자가 네덜란드 본사에서 네덜란드인 상사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충격과 실망을 사례로 들었다. 

한국인 관리자가 상사의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그의 네덜란드인 상사는 전화 통화 중이었는데 자신을 보고 왼손을 잠깐 들어 보이고는 자신이 방에 없는 것처럼 계속 전화를 하더니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맞아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전화를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 당장 환영하지 않은 것, 용건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반가운 감정을 억누르고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동시적 시간’ 문화권의 사람에게는 일종의 무시나 모욕으로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순차적 시간’ 문화권의 사람이 일정을 핑계로 뜻하지 않은 시간에 불쑥 나타난 ‘동시적 시간’ 문화권의 사업 파트너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사업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한 문화가 시간을 규정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그 문화의 구성원들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주장한다. ‘순차적 시간관’과 ‘단일 시간관’이 극단적으로 구현된 현실을 묘사한 영화 ‘인 타임’이 미국에서 제작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인 타임’이 ‘동시적 시간관’과 ‘복합 시간관’을 가진 유럽의 라틴문화권이나 아랍·중남미 국가에서 흥행에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