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싱가포르가 인재 허브인 이유

도일 남건욱 2013. 11. 16. 10:00

싱가포르가 인재 허브인 이유

淸論濁說
남윤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산율 1.2명에 향후 15년 간 인구 150만명 증가. 앞뒤가 맞지 않는 숫자로 보인다. 이게 싱가포르 정부가 올해 초 공식 발표한 숫자다. 현재의 인구 530만명을 2030년까지 690만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민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외국인에게 문호를 활짝 연 이유는 간단하다. 싱가포르인만으론 더 이상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탓이다. 

싱가포르는 2030년까지 65세 이상 고령자가 지금보다 약 3배 증가하는 반면 20~64세 인구는 2020년부터 급감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에 따른 심각한 노동력 공백을 외국인으로 메우겠다는 뜻이다.

이는 사실 새로운 정책도 아니다. 싱가포르에선 지금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전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약 120만명으로 추산된다. 싱가포르 전체 근로자의 37%에 달한다. 잡역부나 가정부에서 첨단산업,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외국인들이 고루 분포돼 있다.

외국인들이 싱가포르 경제에 깊숙이 편입돼 있는 것은 다민족·다문화에 대한 개방성 덕분이다. 중국·인도·말레이계 민족들이 함께 살고, 불교·도교·이슬람교·힌두교·기독교·조로아스터교 등이 공존한다. 그런데도 충돌 없이 지낸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자기가 태어난 땅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해 사는 인구는 계속 증가 추세다. 유엔이 2010년을 기준으로 추산한 이주민은 세계적으로 2억1400만명쯤이다. 20년 새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전 세계 인구의 3.1%지만 이들이 지니는 사회·경제적 영향력은 3.1%를 훨씬 능가한다. 주요국 정상이나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자 중엔 이민 2세, 3세 출신들이 적잖다.

단일민족 우월주의에 중독되면 싱가포르처럼 실용적인 개방정책을 흉내 낼 수 없다. 우리의 경우 내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의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를 수입하거나, 농촌 총각들에게 국제결혼을 장려하는 것 정도다. 화교에 대해서도 박정하다. 또 ‘외국인 이민을 더 받자’고 하면 대뜸 ‘치안 악화를 책임질 거냐’고 반론이 나온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 아닌가.

뭐가 결정적인 차이인가. 결국 정책과 문화의 차이다. 싱가포르의 개방적·실용적 정책과 문화는 국제적 인재 허브로서의 탄탄한 인프라다. 그 덕분에 싱가포르에선 안심하고 돈 벌 수 있다, 심심한 줄 모르고 살 수 있다, 대접도 잘 받는다 하는 평판이 국제적으로 퍼졌다. 싱가포르 정부가 홍보를 잘 해서가 아니다.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외국인 없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는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 리더십이 이끄는 나라에선 반외자 정서나 ‘먹튀’라는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실용과 개방이 일으킨 적도의 기적’이라는 표현은 앞으로도 싱가포르를 설명하는 수식어로 남을 듯하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으면 싱가포르의 번영은 우리에겐 ‘흉내 낼 수 없는 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배우려면 우리 스스로 먼저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