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Business Book - 인간 존엄 담보한 과학기술 『테크노 인문학』

도일 남건욱 2013. 11. 21. 22:58

Business Book - 인간 존엄 담보한 과학기술

『테크노 인문학』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과학기술은 기술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삶의 모습을 크게 바꿔놓을 때가 많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기술이라면 얼마나 영향이 클까? 저자는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시도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총론 성격의 1부에서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적 사고의 힘에 대해 말한다. 본론에 해당하는 2부와 3부는 각각 가상현실과 사이보그를 다룬다. 1부는 ‘왜 과학기술이 인문학적 성찰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사실 과학기술은 이윤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되면 합법의 테두리에서 어떤 실험도 가능하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은 ‘기술은 인간의 권력 행사다. 그것은 하나의 행위 형식으로서 모든 인간 행위가 그런 것처럼 도덕적 시험을 받아야 한다’는 한스 요나스의 주장에 동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21세기의 과학기술이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에까지 힘을 미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주요한 ‘인간 향상 기술’은 인간의 존엄과 품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서 ‘인간 향상 기술’은 늘 ‘인간 존엄 기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인문학이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필요에 따라 탄생한 인문학을 두고 ‘테크노 인문학’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테크노 인문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전통적인 인문학과 다르다. 첫째, 인간은 과학기술과 함께 진화한다. 둘째, 과학기술의 세계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계 이상의 것이다. 

셋째, 과학기술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라는 집단의 문제다. 가공할 만한 힘을 발휘하는 기술 권력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 마련에 인문학이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과학기술은 ‘생각하지 않는 활동’이 돼버렸다. 가장 똑똑하고 영리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이지만 과학기술이 추구하는 공동의 선(善)에 대한 성찰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테크노 인문학이 검토 대상으로 삼을 분야는 가상현실과 사이보그다. 두 분야는 파급효과가 큰 데다 과학기술의 근본 방향을 상징하기 때문에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저자는 컴퓨터를 통해 구성되는 가상현실이 만드는 ‘이미지’와 이런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미디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미지 테크놀로지는 현실보다 현실 같은 이미지를 생산해 현실 세계와 가상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전통적 형이상학은 인간을 몸과 영혼의, 즉 이미지와 본질의 결합으로 이해했다. 반면 가상현실에 바탕을 둔 이미지의 철학은 인간을 이 두 요소의 분리의 결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이미지는 이미 권력이 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미지가 지시하는 실제를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미지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가라는 인식론적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 가라는 존재론적 문제와 직결돼 있다. 미디어의 영향이 커지면 커질수록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우리들의 몸이다. 몸은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를 결합하는 수단이면서 현실 세계와 사이버 시계를 연결하는 주체다. 

몸이 정신을 표현하는 단순한 물질적 수단으로 인식할 때는 필연적으로 인간소외가 발생한다. 하지만 의식이 다양한 미디어가 빚어 내는 수단으로 파악할 때 인간의 본성은 왜곡되고 만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의 소외를 극복하려면 정신과 육체를 각각 절대화해서 이원론적으로 대립시키기보다는 둘 사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또 사이보그로 상징되는 현대 과학기술의 경향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생명·나노·로봇공학을 결합해 인간의 능력을 급진적으로 향상시키려는 현대의 첨단 융합기술은 우리의 신체성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에 기인하는 사멸성마저 극복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우리는 사이보그”라고 미국의 생물학자인 도나 해러웨이가 선언했듯 저자 역시 “21세기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이보그”라고 말한다. 과학기술에 힘입어 수명·건강·인지능력 등 모든 면에서 강화됐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은 필연적으로 인간소외와 정체성의 문제를 낳는다. 마치 산업사회의 인간소외가 상품에 의한 노동의 소외로 나타났듯 이 시대는 새로운 차원의 인간소외를 만나게 된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기술적 트랜스 휴머니즘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이디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인간 본성의 변형을 통해 인간 존엄의 파괴로 연결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인문학이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기술 탓에 인간의 본성이 변해가더라도 여전히 바람직한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과학과 기술이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인문학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