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Business Book - 상품을 예술로 만든 디자인 거장

도일 남건욱 2013. 12. 28. 00:47


Business Book - 상품을 예술로 만든 디자인 거장
『일 벨 디자인』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저자 최경원 출판사 미니멈  2만5000원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예술적인 책이다. 알렉산드로 멘디니가 누구지? 디자인 업계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알기 어렵다. 그를 소개하자면 우선 두 가지를 언급하는 게 좋겠다. ‘굿 디자인(Good Design)’에 대응하는 ‘벨 디자인(Bel Design)’의 주역이다. 디자인이라면 기능성을 갖추어야 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야 하며 가격 역시 저렴해야 한다. 이런 디자인이 굿 디자인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독일 중심의 굿 디자인이 대세다.

멘디니는 그 반대 쪽의 흐름을 이끄는 인물이다. 그의 디자인은 굿 디자인이 채워주지 못하는 인간의 감성까지 담아낸 디자인으로 흔히 벨 디자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마디로 아름다운 디자인을 말한다. 독일 중심의 ‘굿 디자인’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이탈리아 중심의 ‘벨 디자인’이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접했을 제품인 와인 오프너 ‘안나 G’다. 그가 디자인 했다.

이탈리아에는 ‘벨라 파구라’라는 말이 있다. 시장을 보러 갈 때도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옷차림을 챙기는 이탈리아인의 일상적 관습을 말한다. 따라서 ‘벨’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런 예술적 취향에서 나온 말이다. ‘굿’이 기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면 ‘벨’은 기능성이 커버하지 못한 인간의 감수성에 무게를 둔다.

저자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작품 세계를 멋진 사진으로 책 가득히 채웠다. 게다가 저자의 해박한 멘디니 연구 결과물이 곁들여져 있다. 보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을 모두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서평자들이 별로 언급하지 않는 이 책의 가치를 말하고 싶다. 

마지막 파트인 7장에서 저자인 최경원 교수가 멘디니와 주고받은 질문과 응답이다. 멘디니는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어쩌면 나이 들어서 이렇게 멋지게 늙었을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외모를 가진 인물이다. 문답에서 멘디니가 일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 멘디니는 1931년생이다. 그가 굴지의 디자인 잡지사의 편집장으로 일하다 밀라노에서 동생 프란체스코 멘디니와 창업에 나섰을 때가 58세다. 놀랍지 않은가? 58세에 창업해서 한 시대를 이끄는 디자이너가 됐으니. 그의 작품 영역이 제품 디자인으로부터 공공디자인을 거쳐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기에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환생’이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멘디니는 도저히 한 명의 디자이너가 감당할 수 없는 광활한 범주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오고 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부터 다재다능한 손에 이르기까지, 건축에서 그래픽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인간형을 보여준다. 그를 보면 마치 500여년 전에 활약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환생한 듯하다.’

80세가 넘어서까지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내 방법과 나의 조직과 나의 호기심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년을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에 대해 “나는 경쟁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너그럽게 행동해 왔으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물을 보는 법을 배워왔다”고 답한다.

관조하듯이 살아가는 멋진 인생론이다. 멘디니는 디자인을 어떤 것으로 생각할까? “디자인이란 물체에 심미적이고 기능적인 특성을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좋은’ 디자인은 잘 디자인된 고품질의 기능적인 물건이나 유용한 도구다.”

젊은 디자이너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일까? “스스로를 강하게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겸손해야 하며 동료를 사랑하고 삶의 목표를 돈에 두어서는 안 된다.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을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날로 길어지는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 것일까? 

“퇴직하는 사람은 다이내믹하고 창조적으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일을 고안해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이 몇 십 년 동안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분야가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정신을 예리하게 유지시키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 또한 돈도 벌게 해 준다.”

책의 끝자락에는 이미지 인덱스가 실려 있다. 이 책에 담긴 이미지만 무려 300개가 넘는다. 그가 디자인한 제품 중 와인 오프너인 ‘안나 G’는 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원래 필립스 기자회견 기념품으로 500개 한정으로 만들었다가 반응이 너무 좋아서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그의 디자인 세계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작품은 ‘프루스트 의자’다. 앤티크 의자를 하나 산 다음에 점만 찍어서 파는 것이다. 점의 세계가 수없이 변형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프루스트 의자는 기존 디자인을 비판하기 위해서 작정하고 내놓은 실험정신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