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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前代未聞)의 ‘수퍼 버블’ 출발점일 수도 美 양적완화 축소 발표 그 후

도일 남건욱 2013. 12. 28. 01:11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수퍼 버블’ 출발점일 수도
美 양적완화 축소 발표 그 후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양적완화 시행 기간 연장 … 제로금리 유지로 자산 가격 상승 유도


미국 정가에서 회자되는 금언 중에 ‘정치에서 우연한 사건이란 없다’는 말이 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이라고 한다. 

마치 돌발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듯이 보이는 정치적 사건들도 사실은 이미 준비되고 계획됐으며 배후에서 조종된 것이라는 얘기다(루즈벨트는 실제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은 있다).

시장에서도 우연한, 돌발적인 또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수가 또는 일부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12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양적완화 규모 축소를 결정했다. 어차피 시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며, 규모도 시장 예상치와 부합했다. 그러나 이에 대비하고 있었다던 시장 반응은 놀라왔다. 

미 증시는 1% 이상 급등했다. 다우존스 산업지수와 S&P500 지수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변동성 지수(VIX)는 10% 이상 폭락했다. 달러는 강세를 보였다. 달러·엔 환율은 급약세로 돌아섰고, 유로화는 약보합세를 보였다. 미국 국채시장은 강보합에 머물렀다. 그러나 2년물과 5년물은 한때 오히려 수익률이 하락(가격 상승)했다. 

일본 중앙은행이 5년물을 매입하고 있다는 루머가 트레이더 사이에 돌았기 때문이었다. 달러가 강세가 되면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되던 국제 유가(WTI 기준)는 오히려 상승 반전했다. 금 값은 FOMC 성명서 발표 직후에는 하락했지만, 곧 상승 반전했다. 달러화 환율(강세)과 위험 자산(증시) 랠리라는 서로 상반되는 논리가 작동했다.

“부양 축소가 목표 아니다”

시장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형적인 위험 자산 선호, 또는 인플레이션 예상 랠리다. 연준이 무엇을 했길래, 양적완화 규모를 줄였는데도 세상은 이처럼 행복해할까? 물론 변화들은 있다. 첫째, FOMC는 그러나 양적완화 제공 기간을 ‘일러도 내년 말까지’로 연장했다. 제로금리 유지 시한 역시 일러도 2015년 말, 혹은 아예 2017년 이후로 늘렸다. 양적완화 존속 기간은 6월 FOMC에서 축소를 처음 시사하면서, 내년 상반기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어차피 축소 개시 시점이 늦어졌기 때문에(애초 예상은 9월 FOMC), 이는 당연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FOMC와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미국 경제의 회복세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면서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다시 끌어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양적완화 조치들은 ‘부양을 축소하기 위해 디자인한 게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또 이 같은 결정에 그동안 양적완화에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던 에스더 죠지 캔자스시티 연준 총재가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축소가 결정됐으니 찬성표를 던진 것은 당연하다.

둘째, 제로금리 정책 지속의 기준이 되는 실업률 기준을 ‘6.5%를 한참 하향하더라도’로 좀 더 강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 또한 버냉키 총재의 지난 발언에서 거듭 확인된 바다.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 제시한 실업률 전망에 따르면 2015년 중반에는 실업률이 6.5%를 하회한다. 그리고 2015년 말에는 6%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 향후 2년간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기존의 약속을 수치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또 양적완화 축소가 ‘긴축’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그동안 누차 해왔던 말이다. 또한 이번 결정에 차기 총재 후보인 재닛 옐런 위원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결국 성명서 상으로는, 그리고 벤버냉키 총재의 기자회견 발언 상으로는 기존의 인식과 아주 작은 차이밖에 없다. 굳이 이번 FOMC 회의 결과를 시장이 예상하고 있던 기존의 연준 입장에 비해 더 ‘완화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심지어 골드먼삭스는 ‘이번 FOMC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약간 긴축적’이라고 밝혔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시장의 반응, 그것도 일반적으로 예상될 수 있는 (양적완화 축소는 자산 가격에 부정적이다라는) 관측과는 정반대 방향의 반응뿐이다. CNBC의 연준 담당 앵커인 스티브 라이스만조차도 시장 반응에 놀라 “왜 증시가 상승하는지 설명하려는데 진땀이 흘렀다”고 밝혔다.

자산 가격 상당 수준까지 올라야

다른 측면에서 이번 FOMC 회의 결과의 성과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즉, 무엇이 시장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 인과관계는 고려치 말고, 시장 반응이라는 결과에 대해 투자자들이 후행적으로 어떤 인식을 형성하는지만 가늠해보자. 첫째, 연준이 양적완화를 축소해도, 자산 가격은 오히려 상승한다. 또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는 오히려 더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둘째, 시장 반응은 양적완화 축소는 긴축이 아니며, 오히려 경제상황이 호전돼 취한 조치라는 기존의 연준의 주장을 강화시켰다. 

셋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인데, 연준이 시장에 풀어내는 돈의 규모는 줄지만 그럼에도 성명서 혹은 버냉키의 발언으로 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시장 반응으로 입증했다. 연준은 ‘돈’이 아니라, ‘말’로써 시장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FOMC에서의 양적완화 축소의 성과는 연준의 힘을 재확인한 데 있다. 연준은 시장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이 같은 해석은 FOMC 직후 발표된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인 핌코의 CEO인 모하메드 엘-에리안의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연준이 단기적인 경제전망에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옳은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엘-에리안은 이같은 확신이 그다지 ‘압도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기는 아직도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세번째 결론은 비록 몇 개 안 남기는 했지만, 연준이 아직 정책적 유연성을 다 소진해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연준이 초과지준금(IOER)에 대한 이자률을 손대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에 이 부분이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준의 조치에 시장은 명확하게 화답했다. 이로써 시장은 완전히 정박점 없는 항해에 나섰다. 아마도 멀지 않은 미래에 서머스가 제안했고, 버냉키가 오케이 신호를 보냈으며, 시장이 화답한 버블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면, 당분간 현실(경제지표)이 얼마나 안 좋게 나타나든 자산 가격은 상승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구도대로라면, 자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경제가 좋아 보일 수밖에 없는 정도까지 상승해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이 체제는 높은 인플레이션률을 목표로 한다. 지난 11월 국제통화기금(IMF)의 컨퍼런스를 총평하면서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랭챠드는 “버블 붕괴 이전 단계에서 인플레이션율이 아주 높아야만 버블 붕괴 뒤에 지금과 같은 디플레이션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버블로의 여정이 어떤 과정을 밟을지는 미정이지만, 그 끝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수퍼 버블’로 나타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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