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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재앙 ‘아베겟돈(아베노믹스+아마겟돈)’ 우려 기로에 선 아베노믹스

도일 남건욱 2014. 2. 6. 09:11


세계 경제의 재앙 ‘아베겟돈(아베노믹스+아마겟돈)’ 우려
기로에 선 아베노믹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아베 지지율 하락 속 소비세 인상 예정, 극단적 통화팽창 계속하면 일본경제 파국 맞을 수도


일본 도쿄 금융시장의 2013년은 ‘아베 트레이드(Abe trade)’가 지배한 한 해였다. 아베 트레이드란 엔화를 빌려 일본 주식을 사는, 다시 말해 엔화 약세와 주가 강세에 베팅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래기법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일본 증시는 엔화가 약세를 보일 때마다 강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수출기업의 이익이 살아난다는 논리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맹위를 떨치던 아베 트레이드는 그러나 지난해 5월 23일 급제동이 걸린 적이 있다. 닛케이 지수는 7.3% 폭락했다.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증시가 이렇게까지 떨어진 적은 없었다. 밤사이 미국의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의장이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줄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의 금리가 대폭 뛰어 오르자 일본의 금리도 함께 수직 상승한 탓이다.

불가능한 삼위일체에 도전

당시 트레이더들은 경제학의 전통적인 명제인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를 떠올리게 됐다. 자본시장 개방과 환율, 독립적 통화정책의 세 가지 모두를 원하는 대로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쓰는 나라는 (고금리를 노린) 외자 유입으로 인한 자국 통화 가치의 절상을 감수해야만 한다. 1980년대 초 미국이 겪은 경험이다. 이걸 피하려면 자본시장의 개방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브라질이 토빈세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아베노믹스는 정반대에 해당한다.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기 위해 화폐를 증발하고 시장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싶은 일본은 엔화 가치의 하락을 피할 수 없다. 만약 일본 정부가 엔화의 추가 약세를 원하지 않는다면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과 저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금리의 상승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아베노믹스의 좌초를 의미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물가의 상승은 채권의 실질 수익률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채권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경우 더 높은 명목 수익률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금리의 상승을 원하지 않는다. 경기를 긴축시킬 뿐아니라 정부의 빚 부담을 늘리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천문학적인 국채 매입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채권을 기피하는 수밖에 없다. 이들이 일본 국채시장에서 무질서하게 이탈할 경우 엔화의 가치는 급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역시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자본의 해외 이탈을 통제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엔화는 해외 중앙은행들이 비상시를 대비해 보유하는 외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자본을 통제하면 해외 중앙은행들은 더 이상 엔화를 보유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은 헐값에 외자를 빌려 쓸 수 있는 특권을 상실하게 된다.

새해 들어 달러-엔은 5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105엔선을 상향 돌파했다. 닛케이 지수는 6년 2개월 만에 1만6000고지 위에 올라섰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가 “물가상승률이 2% 수준에서 유지될 때까지 양적완화를 계속하겠다”며 사실상 무기한 화폐증발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이미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지난해 12월 초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70%를 웃돌던 지지율이 50% 안팎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일본의 총리는 통상 지지율이 10%대로 낮아지는 경우 자진사퇴하며 조기총선을 실시해왔다. 따라서 지지율의 추락은 아베노믹스의 정치적 기반이 잠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지율의 추락은 야당의 극심한 반대에도 특정비밀보호법 입법을 강행한 데 따른 후폭풍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경제적 요인도 작용했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국민들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지난해 5월 아키라 장관이 “엔화 조정은 끝났다”고 선언했던 것도 이런 부작용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더구나 오는 4월에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하는 계획까지 잡아놓았다. 세계 최악의 상태에 빠진 일본의 재정을 지탱하고 국채 투자자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는 세금 인상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2015년 10월에 소비세를 10%로 추가 인상할 예정이다.

아베노믹스는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물가를 끌어 올리고 세금을 인상해 재정을 개선하는 정책은 계속 밀고 나가되 임금 인상을 유도해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다. 임금이 오르면 디플레이션을 탈피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견상 그럴듯해 보이는 이 구도는 그러나 역시 동시에 모두 성취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임무(mission impossible)였다.

소비세가 인상되면 물가가 일거에 뛰어 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비가 위축되고 말 것이다. 기업들의 수지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부의 시책에 호응해 임금을 올려줄 수 있는 기업은 매우 드물 것이다. 정부가 설사 행정적으로 강제해도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기업들은 매출 부진과 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때문에 투자와 고용을 줄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의 효과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점도 현실적인 고민이다. 일본 후생성에 따르면, 대기업체 직원은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중소업체 임직원이다. 중소업체 중에서는 아베노믹스로 재미를 보기보다 급등한 에너지 가격 때문에 수지만 악화된 곳이 상당히 많다. 임금 인상은 기껏해야 대기업 노동자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일본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전체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이 38.2%에 달한다. 

이들 비정규 직원들의 임금 인상은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금융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다시 구원투수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소비세 인상으로 경기가 위축되면 돈을 더 풀어서 경기를 띄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렇게 경기가 더 살아나 준다면 아베노믹스의 정치적 기반도 보전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일본은행이 돈을 더 푼다면 엔화의 가치는 더 떨어질 확률이 높다.

임금 인상 효과도 미지수

그러나 여기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수입물가가 계속 오르는데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중국 등 가뜩이나 사이가 나빠진 주변국들이 본격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0년대 초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재무성에서 엔화 평가절하 드라이브를 걸었던 때도 한국과 중국이 공조한 반발에 부딪쳐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무한 화폐발행에 대해 금융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여부가 불확실하다. 국채시장이 극도로 왜곡되고 자산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등 금융 불안정이 심화될 소지가 있다. 만약 일본이 요행히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고 경기가 활성화될 경우 엄청난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릴 수 있다. 미국 연준이 양적완화를 결국 축소·종료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극단적인 통화팽창을 선택할 경우 엔화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가 급작스럽게 추락할 수도 있다. 이는 일본 금융시장과 경제는 물론 세계적인 재앙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이른바 ‘아베겟돈(아베노믹스와 아마겟돈의 합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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