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박사가 쓴 (국가, 유학, 지식인)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유학 연구자의
입장에서 쓴 색다른 책입니다.
#1.
‘21세기, 중국의 자기인식은 가능한가?’
이 질문은 지금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과연 중국의 세기는 가능한 가”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적, 윤리적 연계와 무관하게 중국의 세기는
가능할 수도 있다.
제국의 부상은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2.
그렇지만 ‘인문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의 자기인식이 가능할 때야 비로소 중국의 세기가
유의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인문학적 가치’란 중국굴기의 역설적인 측면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중국의 굴기를 문명의 굴기로 이해하고자 할 때,
역설적인 측면에 주목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내부의 문제적 상황을 충분히 자각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사회주의 경험과 개혁개방 30년 동안
진행해온 중국식 자본주의의 신화를 반성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여러 차원에서 책임과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4.
지배의 정당성 때문에 모든 중국왕조는 제국성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는 유파를 불문하고,
제국성에 대해 거의 강박 수준의 관심을 보여준다.
제국론과 관련해 또 하나 고민해야 할 문제는 “중화제국의
언설 자체가 이민족에 대한 지배 여부나 다민족의 대일통(大一統)
실현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국민국가체제를 본류를 하는
‘근대’의 이념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제국)의 저자 뮌클러에 따르면 패권적 우위와 제국적 지배사이의
전환은 유동적인데, 패권은 형식적으로 평등한 정치적 행위자들로
이루어진 집단 내의 우세함인 데 반해
제국은 이 최소한의 형식적 평등마저 없애고
약한 국가들의 지위를 종속국이나 위성국으로 낮춘다고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지정학적으로 제국에 인접해 있는 한국으로서는,
그것을 수용하든 거부하든,
제국론은 간단히 흘려버릴 수 없는 문제라고 하겠다.
#5.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 20세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은 곧 주체의식과 목적의식의 과도함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 반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경제성장일 수 있다.
중국의 굴기는 세계 자본주의를 연장해줄 수 있는지는 몰라도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중국 사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안이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6.
현재 중국의 민족주의는 가장 중요하게도 자본주의적 근대화라는
시대적 임무를 바탕에 깔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울트라 민족주의의
요소를 띠어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 중국의 민족주의는 자유와 독립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상실한 지 오래이며
그것을 보수세력이 담당함에 따라 갈수록 전통을 강조하고,
국익을 강조하고, 사명감을 강조하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7.
중국의 천하주의로 민족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든가
서양의 근대 이론체계 자체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주장 등,
최근 등장하고 있는 다종다양한 중국문화 구세설은 모두 중국의
보수적 민족주의에서 엿볼 수 있는 언설이다.
#8.
중국에서는 한번도 자유주의가 주류가 된 적이 없다.
이를 토대로 나는 감히 중국에서 자유주의가 주류가 된다는
것은 중국의 많은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조경란, (국가, 유학, 지식인), 책세상, 20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