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라는 것도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이야기는
미국의 문제이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하고
있는 나라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주장입니다.
#1.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존재는 더 이상 공산주의도 파시즘도
아니다. 바로 현대 사회가 성장과 안정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신뢰의 지속적인 쇠퇴다.
성공할 기회를 자녀가 공정하게 누리리라고
대부분의 부모가 믿지 못하는 순간에 구성원의
자발적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와해되기 시작한다.
이때 사소한 절도, 사기, 부정, 반동, 부패 등
파멸을 불러오는 크고 작은 요소들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경제 자원의 구심점은 서서히 생산에서 보호 쪽으로 이동한다.
#2.
나는 해당 주제에 대한 관심이 분산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임원, 대기업 소속 변호사와 로비스트,
월스트리트 종사자와 그들의 정치 하수인, 수많은 부자를 비롯해
‘자유 시장’ 개념을 목청껏 지지하는 인물들은 자기 이익을
확보하려고 여러 해에 걸쳐 시장을 적극적으로 재조직해왔고
해당 주제가 집중조명 받지 않기를 바란다.
#3.
시장의 존페를 결정하는 요소는 재산(소유할 수 있는 대상),
독점(시장 지배력을 허용하는 정도), 계약(교환할 수 있는 대상과 조건),
파산(구매자가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하는 현상)을 지배하고
시행하는 규칙이다.
이러한 규칙은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 게다가 과거 수십 년 동안 대기업, 월스트리트, 부자가
정치 기관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규칙은 계속 바뀌어왔다.
#4.
이와 동시에 193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미국 중산층과
하위 중산층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노동조합,
소기업, 소액 투자자, 지방 정당 등 대항적 세력이 쇠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거대 부자들이 재산을 더욱 증대시키려고 시장을
조직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부가 중산층과 빈곤층에서 소수 집단인
부유층으로 유례없이 큰 폭으로 상향 이동하고 있다.
이렇듯 부의 상향 분배는 시장 내부에서 발생하므로
대부분 외부에서는 감지할 수 없다.
현실에서는 힘이 있어서 게임의 규칙을 정할 수 있는
사람에게 소득과 부가 더욱 집중된다.
#5.
시장 내부에서 부가 상위층으로 왜곡되어 집중되는 현상은
빈곤층과 하위 중산층에게 이전지출(실업수당이나 사회보장금처럼
정부가 다른 경제 주체에게 반대급부 없이 지급하는 것)을
지급하거나 부유층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을 통해 대규모로
부의 하향 재분배를 실시하라고 요구하는 시장 외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정부 크기를 둘러싼 자극적인 논쟁에
불을 붙일 뿐이다.
#6.
내가 뜻하는 현상은 세계 다른 국가에서 실시하는 자본주의에도
차츰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다른 국가도 미국의 현상에서
유추한 교훈을 적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각국의 규칙에 따라 비즈니스를 수행해야겠지만 국가와 상관없이
거대 국제기업과 금융기관이 규칙 성립에 점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경제와 시장규칙이 자신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
직면해 무기력에 빠진 일반 국민의 늘어나는 불안과 좌절은
치명적인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키고 인종차별주의와 반이민주의 정서를
부추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에서조차, 정치적 불안정을 자극한다.
#7.
게임의 규칙은 중립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영구적이지도 않다.
사회는 시대에 따라 다른 형태의 규칙을 채택한다.
부분적으로 규칙은 차츰 발전해나가는 사회 규범과 가치를 반
뿐 아니라, 이를 만들거나 영향을 미치는 힘을 소유한 사람의 주장을
반영한다. 하지만 ‘자유시장’이 ‘정부’보다 바람직한지의 여부를 놓고
끊임없이 토론하느라 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이익을 얻는지, 어떻게 해야 규칙을 바꿔 더욱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하지 못한다.
자유 시장이 기능하는 방식은 경제와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출처: 로버트 라이시, (자본주의를 구하라), 김영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