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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술렁’, 수험생 ‘흔들’, 직장인 ‘두근’

도일 남건욱 2006. 1. 9. 11:51
고시촌‘술렁’, 수험생 ‘흔들’, 직장인 ‘두근’
2008년부터 로스쿨제 도입 확정

▲ 서울 신림동 고시촌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2008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을 결정함으로써 40여년간 유지돼온 사법시험제도가 2013년 전격 폐지된다. 2008년 첫 로스쿨 신입생이 입학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2011년 새로운 법조인 자격시험이 치러지면서 법조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일반 직장인들은 로스쿨 도입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 벌써부터 ‘사법고시연구회’ 같은 온라인상의 사시준비생들 모임에서는 미국·일본식 LSAT(Law School Admission Test) 기출문제가 돌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다음에는 ‘로스쿨준비위원회’까지 생겼다. 벌써 회원만 1500명에 이르는 데다 오는 10월 13일에는 직장인들만의 정모(정기모임)가 예정돼 있다. 이 모임 주인장은 직장인 박종필(32)씨. “일반 기업들은 미래가 불투명하고 자기 발전에 한계가 있잖아요. 변호사나 검사직은 전문 지식만 있으면 평생 일할 수 있으니까 직장인들은 일단 욕심이 나는 거죠.” 회원 중 많은 수가 사시를 준비했었으나 낙방한 경험이 있는 직장인들로 법률사무실이나 대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공기업 4년차인 이모(29)씨 역시 ‘로스쿨 준비위원회’ 카페 게시판에 ‘직딩(직장인들)끼리 한번 모이자’는 글을 올리고 함께 공부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중이다. “공사가 안정적인 직장이긴 하죠. 그래도 우리 부서 사람 중 30대 초중반들은 다 로스쿨 소식에 솔깃해해요. 벌써 일본 LSAT 기출문제집을 번역해서 공부하는 스터디가 있을 정도라니까요. 로스쿨 정원이 1000명을 조금 넘는다니까 경쟁은 진짜 치열할 거예요.”

로스쿨 준비생들 중에는 전문직 종사자도 있다. 개원의 박모(33)씨도 로스쿨제 도입안이 확정된 것과 동시에 다음 카페에 가입한 경우. 박씨는 “의사라는 직업이 점점 경쟁도 치열해지고 비전이 없어 로스쿨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야말로 로스쿨 입학이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영어도 잘하고 한창 두뇌회전이 빠른 최상위권 학부생들과 경쟁한다면 합격은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고시 전문학원.
직장인들 벌써 로스쿨 입학준비

사시를 준비하다 L기업에 입사한 이모(30)씨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로스쿨 입학을 고민 중이다. 그는 “직장인들이 그간 쌓아온 커리어를 활용하면 분야별로 특화된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도박하는 심정으로 사시 하나 통과해 신분상승 이루겠다며 몰려드는 젊은이들도 줄고 법조인들의 특권의식도 없어질 것”이라며 로스쿨제 도입을 찬성했다. 몇몇 사법고시 준비생들도 로스쿨제 도입을 환영하는 눈치다. H대 법학과에 재학 중인 김성문(25)씨는 4년째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1년 후에도 합격하지 못하면 아예 공부를 접고 로스쿨에 진학할 생각이다. “다방면에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운명을 결정지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죠. 10~15년씩 법전 들고 고시촌 귀신으로 떠도는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사시준비생들도 시험제도가 국가적 낭비란 생각은 다들 하는 거죠.”

서울 신림동 고시촌은 로스쿨 도입안이 발표된 후 술렁이고 있다. “원래 이때면 방이 100% 다 차야 하는데 지금 반 이상은 비었어요. (사시 1차에서) 토플시험 친다고 장수생들 나가고 로스쿨 생긴다니까 어린 학생들 발 끊기고…. 요즘은 서울이고 지방이고 방 구하는 사람이 없다니까.” 지난 11월 6일 낮 12시, 서울 신림 9동 고시촌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김순옥(여·52)씨는 고시원 앞마당 자판기에 캔 음료를 채우며 한숨부터 쉬었다. 방이 안 나가 한 달 전부터 자판기를 설치하고 ‘녹두거리’에 ‘방 있음’ 광고지도 붙여보았지만 지난 10월 초 로스쿨제 시행이 확정된 후 그나마 걸려오던 문의전화도 뚝 끊겼다는 것이다.

5년째 호프집을 해오고 있다는 이정선(여·53)씨도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생들이 고시촌으로 직행하는데 로스쿨제가 시행되면 고시촌 특수는 영영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고시촌에서 25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해왔다는 이재선(62)씨는 “원룸들 40%쯤은 다 비어있는 상태”라며 “장수생들이 몰린 (신림)9동 꼭대기 쪽 집들 중에는 경매 넘어간 곳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룸텔과 하숙집들이 몰린 신림 9동 골목에는 ‘방 있음’ 쪽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집 임대료 역시 작년에 비해 20%가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가정집을 원룸식으로 신축했던 업자들도 다시 집 구조를 리모델링 하고 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사법고시 전문 학원인 A업체 관계자는 “당장 학생들 사이에 동요는 없다”며 “학원들은 이거 망하면 다른 거 하자는 식이지만 학원 강사들은 자기 살길 찾으러 물밑작업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 한 사시준비생의 공부방 풍경.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기까지 읽어야할 책들을 한줄로 쌓아 보았다.
“사시 준비생들에게는 불리할 것”

대학 졸업 후 대학원 1학기에 재학 중인 김모(26)씨는 로스쿨제를 “사시 준비생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고시 준비하느라 학점 관리는 뒷전이었는데 로스쿨이 도입되면 학부 성적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활동 및 경력도 입학성적에 포함되므로 20대 초중반의 사시준비생들은 일단 직장에 들어간 후 로스쿨에 대비하겠다는 반응이다.

법학을 전공하는 1~2학년생들 사이에서도 로스쿨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S대 법대 1학년생인 오모(20)씨는 “주변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당연히 로스쿨에 진학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단순 암기로 합격되는 게 아니라서 벌써부터 학점 경쟁도 치열하고 스터디 만들어서 영어공부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작년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한 최문기(25·서울대 법학4)씨는 “아직 구체적인 안(安)도 발표되지 않은 데다 학비가 비쌀 거라는 소문까지 돌아 1~2학년생들은 고민이 많은 눈치”라고 말했다.

사회활동경력이 화려한 일반인들과 경쟁할 때 학점과 영어성적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학부 졸업생들의 불안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로스쿨제 도입을 반대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인구가 많은 것도, 소송 건수가 많은 것도 아니거든요. 세부적인 대책도 없이 미국 모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로스쿨이 시행된다고 갑자기 양질의 교육이 제공된다는 보장도 없고, 교수님들도 로스쿨 운영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이렇게 불쑥 도입한다고 발표만 하면 준비생들은 혼란스러운 거죠.”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도 손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수능시험 준비에 한창인 이형모(19)군의 꿈은 ‘검사’지만 법대를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2006년도부터 법대가 없어질 수 있다면서요. 법대를 나온다고 해도 로스쿨 입학 때 가산점이 있는 게 아니니까 차라리 경영이나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후 로스쿨에 가 내 분야를 특화시키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군은 전공선택을 두고 담임교사와 상담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으로 로스쿨 관련 기사를 검색하기도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중학교 3학년생인 딸을 둔 학부모 유수연(45·주부)씨는 “일단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가 폐지된다는 데 환영하지만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고시’가 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로스쿨 어떻게 시행되나?] 전공 관계 없이 6학기 수업 전국 6~10개 대학에 설치될 듯

Q: 일반인들도 입학 할 수 있나?

A: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만 입학할 수 있다. 전공과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으며 법학을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혜택은 없다. 학사과정에서의 성적·어학능력·적성시험 성적·사회활동 및 봉사활동 경력 등을 종합해 입학 여부가 결정된다. 적성시험은 미국의 로스쿨 입학시험(LSAT)과 비슷하게 행해지며 법률지식이 아닌 수리능력과 논리력 등을 테스트하도록 구성될 계획이다.

Q: 수업 이수 학기는?

A: 원칙적으로 6학기(3년) 이상으로 하며, 구체적인 교과과정은 각 법학전문대학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Q: 기존 법대는 어떻게 되나?

A: 로스쿨을 설치하는 대학들은 학부에서 법대를 폐지해야 한다. 로스쿨을 설치하지 않는 대학은 법학부를 그대로 둘 수 있다. 따라서 2006년부터 법학부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 대학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로스쿨을 인가받은 대학이 자기 대학 졸업생을 많이 선발하는 부작용이 생길 것에 대비해 해당 대학 학부 졸업생의 선발비율을 제한하는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Q: 로스쿨 설치 대학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가?

A: 로스쿨 입학정원, 로스쿨 설치 대학 수 등은 합의없이 기준만 제시했으나 총 입학정원을 1200명(대학별 200명 이하)선으로 제시해 전국에 6~10개 대학에 로스쿨이 설치될 전망이다. 로스쿨을 설립하려면 전임교수 최소 인원 수가 20인 이상이어야 하며, 전임교수 대 학생 비율이 최소 1:15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 사개위 다수 의견이다.

Q: 현재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사시는 2012년까지 유지되므로 지금 당장 사시 준비를 그만둘 필요는 없다. 다만 현재 사시를 준비 중이라면, 로스쿨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조인 자격시험과 사시가 함께 치러지는 2011~2012년 2년 동안은 로스쿨 졸업생 때문에 사시 합격자 수를 줄일 거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Q: 응시횟수 제한은 있나?

A: 로스쿨 입학 시험은 물론, 로스쿨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법조인 자격시험에도 응시횟수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몇 회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정되지 않았다.

Q: 로스쿨 졸업 후 법조인 자격시험 통과는?

A: 로스쿨을 충실히 다녔으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경우, 합격률은 전체 로스쿨 졸업생 중 80% 수준인데 사개위도 그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자격시험에 통과한 사람들 가운데 판·검사 희망자들은 로스쿨 성적을 반영하거나 별도의 시험을 거쳐 임용될 것으로 보인다.

Q: 법조인 자격시험 합격자 수는?

A: 현재 연간 사시 합격자 수(1000명선)보다 장기적으로는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법조인 수 증가 추세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로스쿨 제도에는 법조인 수를 늘려 법률서비스를 확대하려는 목적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김남인 주간조선 기자(artemi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