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칼럼

미국이 상속세를 폐지하려는 이유

도일 남건욱 2006. 5. 17. 02:50
 미국이 상속세를 폐지하려는 이유

발행일 : 2006.05.09 / 여론/독자 A35 면 기고자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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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정몽구가(家)의 경영권 편법 승계가 된서리를 맞자 재계는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부(富)의 승계는 빈부 차이를 항구화시킨다면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 미국의 거부(巨富)들이 상속세 폐지에 반대한다면서, 한국의 거부들은 사회적 책임의식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왜 미국이 한 세기 만에 상속세 제도를 아예 폐지하려고 하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에선 상속세를 ‘사망세(死亡稅)’라고 부른다. 지난 2000년 공화당이 발의한 ‘사망세 폐지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는데, 클린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당시 대통령 후보이던 조지 부시는 상속세의 완전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 후 상속세율을 점진적으로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상속세 완전폐지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로 지연되었는데, 작년에 하원이 ‘사망세 영구 폐지법(안)’을 다시 통과시켜서 현재 이 법안은 상원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사망세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순간에 정부가 돈을 거두어가는 반(反)윤리적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사망세는 기업, 농장 등 가업(家業)의 승계를 불가능하게 하고, 살아 있을 때 흥청망청 쓰고 죽는 풍조를 조성하며, 노인들이 뒤늦게 재혼하도록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미 세금을 낸 후에 남겨 놓은 재산에 대해 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비난도 있다.

상속세는 부유층의 부(富)의 계승을 차단해서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실제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정작 상속세를 낼 사람들은 변호사를 동원해서 절세 대책을 강구하기 마련이다. 사고나 급환으로 별안간 사망한 사람의 자식들이 세금 벼락을 맞는 것은 그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속세는 가장 불행한 순간에 가혹하게 다가 오는 것이다. 반면에 아주 부유한 사람들은 재단을 만들거나 세금이 적은 외국에 신탁계정을 만들어 세금망(網)을 빠져나간다. 조지 소로스와 에드워드 케네디가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것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재산을 이미 처리했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은 상속세를 내지 못해 매물로 나온 기업을 사들여서 돈을 벌기 때문에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것이다.

상속세는 가업을 일으킨 사람들에게는 악몽(惡夢)이다. 상속세를 걱정해서 투자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상속세 때문에 경제성장이 저해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상속세는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벌을 과하는 측면이 있다. 한 예로 캘리포니아의 갈로 가(家)를 보자. 갈로 형제는 금주법으로 파산한 끝에 자살한 아버지가 남긴 폐허 같은 양조장을 인수해서 굴지의 와인 회사로 키워냈다. 오늘날 이 회사는 창업주의 손자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정상적으로 사업을 늘려온 이들에게 고율의 상속세를 물려 경영을 궁지로 몬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상속세가 소수 부유층에만 해당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경제규모가 커진 데 비해 상속세 면세점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선대(先代)가 일으킨 사업체를 팔고 멀쩡히 살아온 집마저 내놓기도 한다. 정부가 상속세를 거두어 간다 해도 정부는 돈을 헛되게 쓰는 경향이 있어 국가경제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상속세를 폐지해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며, 기업을 일으켜서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도 많이 내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상속세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캐나다, 호주, 중국, 멕시코, 스웨덴, 러시아 등 많은 나라가 상속세를 두고 있지 않거나 폐지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李 相 敦 중앙대 교수ㆍ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