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칼럼

수산질병관리법 제정(안) 반대 이유서

도일 남건욱 2006. 5. 20. 02:39
수산질병관리법 제정(안) 반대 이유서

 

한국수의학교육협의회

 


국내 수의학 교육은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따라 의학계열 교육과정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수업연한이 6년인 교육과정에 의하여 전문동물의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수의사가 되기 위하여는 예과와 본과 합계 최소 215학점 이상의 교양 및 관련 교과목을 이수하여, 동물 전반의 질병과 공중보건 관리에 필요한 동물의학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동물 전반의 전문수의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전국 10개 수의과대학과 수의학과에는 모두 228명의 교수가 어패류를 포함하는 동물의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조직학, 발생학, 신경과학, 약리학, 독성학, 병리학, 기생충학, 미생물학, 면역학, 실험동물의학, 공중보건학, 어패류질병학, 환경위생학, 생물공학, 방사선과학, 전염병학, 조류질병학, 임상병리학, 외과학, 내과학, 산과학, 야생동물질병학 등의 동물질병 및 공중보건 관련 교과목을 교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민보건을 책임지는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교육과 마찬가지로 수의학교육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동물 전반의 질병 및 인수공통질병 관리, 방역, 검역, 축산물위생관리, 생태계 보전 등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는 수의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반면, 수산질병관리학과는 의학계열이 아닌 자연과학 계열의 한 학문분야로서 동물질병 전문의사가 아닌 수산질병관리사를 양성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수산질병관리학과의 교육연한은 일반 대학과 같이 4년이고 총 이수 학점은 평균 130학점입니다. 현재 수산질병관리학과는 전국 3개 대학에 설치되어 있으며 총 교수 수는 전국 합계 18명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수의학과 수산질병관리학은 그 교육과정 및 목표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수의학의 교육 목표는 동물 전반의 질병 및 공중보건 관리와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동물의사 양성임에 반하여, 수산질병관리학은 말 그대로 의사가 아닌, 수산양식과 관련된 질병관리사 양성이 목표입니다.

따라서 어패류질병학은 엄연한 수의학의 한 분야로서 정규 동물의학 교육을 받은 수의사의 영역이며, 수산질병관리사는 수의사의 감독 하에 수산양식과 관련된 질병을 관리하는 기사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그 본분입니다. 이는 국민의 질병과 보건 관리에 있어 의사가 하는 일과 간호사나 임상병리기사가 하는 일이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 분리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간호사나 임상병리기사가 인체의학의 일부를 배운다 하더라도 아무도 간호사에게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체 및 동물의학 관련 학문과 교육체계는 세계적으로도 확립되어 있는 원칙입니다. 왜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본적 의학교육에 최소 6년 이상 8년을 투자하고, 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후에도 소정의 인턴과정을 거쳐야 개원 할 수 있게 하며, 또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수 년 간의 수련의 과정을 밟아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의 전문의로서 진료에 임하게 하는 어려운 과정을 마련하였습니까. 왜 속성으로 4년제 대학에서 의사를 양성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건강을 위한 의학교육 제도는 인류사회가 오랜 세월동안 발전시켜 온 다른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에 의하여 다듬어져 오늘날 확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사가 되는 길은 고도의 전문성 교육 및 훈련과정이며 단순히 질병과 약, 치료법 몇 가지를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직종이며, 화학, 물리, 생물의 자연과학 및 인문사회학의 기초학문과 교양의 토대 위에 생명, 인류사회와 환경, 공중보건, 질병, 의학과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훈련받게 됩니다. 이러한 전문교육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의료기술자이지 의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사회가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물이라고 사람보다 생명의 복잡성이 덜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동물의사는 사람의사에 비하여 훨씬 많은 종들의 비교의학적 특성과 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동물, 동물질병 및 동물성 식품과 사람의 공중보건, 생태계 건강과의 관계에 대한 통합적인 통찰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동물의사도 사람의사와 같이 기초학문과 교양의 토대가 필요하며, 나아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 동물의 건강과 사람의 건강, 생태계의 건강을 연관시켜 이해하는 공중보건학적 지식, 사람과 동물의 생명현상에 관한 이해 및 의료인으로서 기본 교양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배우지 못한다면 수의사 또는 동물의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수산질병관리사 면허 소지자가 동물의사가 아닌 수산질병관리사라고 하는 공식명칭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현재의 4년제 수산질병관리학 교과과정으로는 정규 동물의학교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패류를 포함하는 모든 동물의 질병관리, 방역, 검역의 분야에서 사람의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세계동물보건기구(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또는 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에서는 어류의 이동과 방사 시 검역 절차에 있어 해당국의 수의사가 감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Quarantine and Health Screening Protocols for Wildlife Prior to Translocation and Release into the Wild, WOAH 2001). 또한 EU에서도 국가 간 수생동물의 수출입시 수의사의 위생증명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생동물을 포함한 모든 동물 질병의 관리와 방역, 검역은 단순히 특정 동물종에 다발하는 질병 몇 가지와 치료법, 약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 번 말라카이드 및 염산 파동에서도 보듯이 수생동식물에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은 사람과 생태계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양식어장은 수계를 오염시키고 환경과 생물다양성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습니다. 어패류 식품은 비브리오 식중독을 일으키는 등 사람의 공중보건 상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더구나 어패류의 기생충 등 여러 종류의 병원체는 사람 및 많은 동물 사이에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어패류의 질병관리와 방역 및 검역 업무는 단순히 양식 어패류의 생산성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사람의 공중보건 측면과 다른 동물, 생태계 및 환경 보전에 미치는 영향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는 전문가가 다루어야 할 분야입니다.

공중보건 상 국제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수산동물 질병 방역과 검역업무의 책임을 정규 동물의학 교육과정이 아닌, 어패류의 질병에 관한 단편적 지식이 주된 교과과정을 차지하는 수산질병관리학과에서 교육받은 수산질병관리사에게 맡긴다면, 국제사회가 이를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을 포함한 많은 종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의 전파기전과 독성물질의 작용기전 그리고 동물과 동물성 식품의 공중보건적 측면에 대한 이해와 훈련을 거친 전문가만이 동물질병의 방역과 검역을 일관성 있게 감독 및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유일하게 인정받고 있는 동물질병 방역 및 검역의 전문가는 정규 동물의학 교육을 받은 수의사 뿐 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수산질병관리사라는 직업으로 어패류의 질병을 진료하도록 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없으며, 더욱이 이러한 이상한 형태의 직종이 나라의 검역업무를 책임지게 하는 경우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패류의 질병관리를 다른 동물의 질병관리에서 분리시키고, 수산동물방역관의 자격을 수산질병관리사로 제한하는 등, 해양수산부에서 입법예고한 수산동물질병관리법제정(안)의 내용은 수의사와 수산질병관리사의 역할과 기능을 완전히 뒤바꾸어 본말을 전도시키겠다는 것으로, 전세계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의학 및 동물의학 교육 및학문, 공중보건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독자적 표준을 만들겠다는 매우 우려스러운 발상입니다.

이러한 법안이 제안되었다는 것 자체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거니와, 통과될 리도 없겠지만 만일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전반적인 동물질병관리 및 검역체계와 능력에 대한 신뢰성에 매우 심각한 손상을 주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 법안은 국제통상 및 공중보건관리 분야에서 한국의 수산물 뿐 아니라 농수축산물 전반의 질병관리 및 검역능력, 그리고 인수공통전염병 관리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지난 수 년 간 구제역, 광우병,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등 해외악성전염병의 국내 유입과 발생을 막기 위해 기울인 피나는 노력의 결과 획득한 이들 동물질병 및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청정국 지위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이어질 우려가 다분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농수축산물 수출입이나 위생의 문제를 넘어 전반적인 국가신뢰도에까지 영향을 주어 국가적 재앙을 부를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광우병,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같이 많은 동물질병이 사람에게도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국제사회는 한 국가의 동물질병 관리와 방역 및 검역체계를 국가 신뢰도와 직결시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동물의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산질병관리사가 사람에게 심각한 위해를 줄 수도 있는 동물검역 일부를 책임지고 있는 나라에서 발표되는 동물질병 관련 자료를 어느 국제기구에서 인정해 주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임상병리사가 국내에 사스나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서 발병한 적이 없다는 검증 결과를 국제사회에 발표하는 것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국내에서 생산된 농수축산물의 안전성 관리체계에 대하여 그렇지 않아도 꼬투리를 잡으려는 외국의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우리가 수출하는 농수축산물에 대한 수입국의 수입규제에 대한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농수축산물에 대하여는 검역체계의 신뢰성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여, 외국의 무차별적 수입개방 압력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국가 능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제대로 된 수입 식품에 대한 검역 관리가 불가능하여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일부 이익단체에서는 어패류의 생리는 다른 동물과 매우 다르고, 정규 수의학 교육과정에 있어 어패류 관련 교육과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수산질병관리사가 어패류 질병 방역과 검역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동물의학교육과 의료체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말이거나 고의로 사실을 왜곡시키는 말입니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포유류와 매우 다른 해부와 생리 체계를 가진 새와 닭, 오리를 위한 조류의사 양성과정이 따로 있어야 하며, 파충류 의사, 양서류와 양식 개구리 의사, 고래류 의사 양성과정이 모두 따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종류의 무척추동물에 대하여도 각기 별개의 의학교육과정을 따로 만들어 아마도 전국에 수 백 개의 다른 종류의 동물에 대한 의학교육과정이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이런 식의 모든 동물류에 대한 별도의 의학교육과정이 불필요하며 자원의 낭비일 뿐이라는 점을 오래 전에 인식하였기 때문에, 모든 동물의학 교육과정을 수의학이라는 학문 분야로 집결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수의학 교육과정은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동물전반에 대한 일차 진료가 가능한 수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동물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조직학, 발생학, 신경과학, 약리학, 독성학, 병리학, 기생충학, 미생물학, 면역학, 공중보건학, 환경위생학, 생물공학과 같은 과목은 종이나 전공분야에 상관없이 동물의학의 기초 또는 준임상 분야로서 이수해야 하는 과목들입니다. 또 실험동물의학, 어패류질병학, 조류질병학, 야생동물질병학과 같은 과목은 특수한 동물종에 대한 전문임상과목이며 방사선과학, 외과학, 내과학, 산과학, 임상병리학, 전염병학과 같은 과목은 종과 상관없이 진단과 진료를 다루는 전공임상과목들입니다. 그러므로 정규 수의학 교육의 목표는 특정 종에 대한 전문의 양성이 아니라, 주요 종에 대한 일반적 진료를 할 수 있는 일반의를 양성하고, 특수한 종에 대한 전문의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본자질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특수한 종에 따른 전문분야와 전공과목별 전문의를 위한 심도 깊은 임상훈련은 수의학과 졸업 이후 수련의 과정이나 대학원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사람 의사 양성 제도와 같습니다. 즉, 정규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모든 기초의학과목 및 전공임상과목에 대한 일반적인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여 기본적인 일차진료를 할 수 있는 일반의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이후 수련의 과정에서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전공과목에 대한 전문의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집니다. 간호사나 조산사가 아무리 조산 훈련과 경험이 의과대학 교육을 받은 의사보다 많다고 하더라도 정규의학교육을 받은 의사를 대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간호사나 조산사를 교육시켜 되는 것이 아니라, 정규의학교육을 받은 일반의를 전문의 교육과정을 거쳐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양수산부가 수산질병관리사를 진정한 동물의사로서 활용하고자 한다면, 기초교양과목과 기초학문의 토대 위에, 위와 같이 전반적인 동물 생리와 질병, 공중보건에 관한 기초의학교육을 시키고, 전공임상과목 수련의 과정에서 어류질병에 대한 전공교육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갖기 위해서는 당연히 의과대학 및 수의과대학과 같은 6년이나 그 이상의 교육연한이 필요하며, 최소한 한 과에 수 십 명 이상의 전공교수와 이에 따른 막대한 실험실습 시설, 그리고 전문의 수련과정이 또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동물질병 및 인수공통전염병 관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준에 부합되고 국민보건을 위한다면 해양수산부는 수산질병관리학과가 교육연한, 교수 수, 교육환경 면에서 수의학과에 버금갈 정도로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해양수산부가 진정으로 기르는 어업 육성을 위한 어패류질병 전문가를 양성하기 원한다면 수산질병관리학과에 중복 투자하여 국가적 자원낭비를 초래하고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기존의 동물의학 체계에서 교육받은 수의학과 졸업생이 어패류질병학에 관심을 갖고 어패류질병 전문분야의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수의학교육 전문가와 협력하여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국제적인 학문과 교육의 기준을 준수하면서 어패류질병과 공중보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