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칼럼

[특파원칼럼] 홍콩이 다시 뜨는 이유

도일 남건욱 2006. 6. 26. 19:28
[특파원칼럼] 홍콩이 다시 뜨는 이유

▲ 송의달 특파원
얼마 전 홍콩 정부는 부동산·주식·사치품 등에 적용하던 상속세의 완전 폐지를 선언했다. 세수 감소액만 매년 최소 15억 홍콩달러(약 1950억원). 만성 재정적자에 시달려온 홍콩 당국으로선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민건련(民建聯)과 민주·자유당 등 여야 정치권도 일제히 지지하고 나섰다. 목적은 하나. 세계 각국의 부호들을 더 많이 유치해, 금융·부동산 시장 활성화와 국제금융 허브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함이다.

홍콩에는 이미 리펄스베이, 미드레벨, 섹오 등에 수백억~1000억원을 호가하는 저택들이 즐비하다.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 수준의 부자가 수천명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리펄스베이 부근에 있는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그룹 회장의 3000평짜리 3층 집은 기준가격만 200억원이 넘는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210여만명이 닭장 같은 10~15평 규모의 정부 임대주택에 사는 것과 비교하면, 좁은 땅에 살인적인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세계 4위(자금조달액 기준) 수준의 홍콩 증시도 마찬가지다. 홍콩상하이은행(HSBC) 한 회사가 차지하는 증시 내 시가총액 비중만 18%. 허치슨왐포아, 항성(恒生)은행 등 상위 5개사의 점유율은 40%에 육박한다. 나머지 1100여개 상장(上場)사는 ‘들러리’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빈부(貧富)격차 척도인 지니계수의 경우, 홍콩은 0.43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한국은 0.31, 2005년 UN자료).

이런데도 홍콩 링난대(嶺南大)가 최근 공개한 ‘홍콩 시민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71점이다. 다수가 현 생활에 만족한다는 얘기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시민들이 공통으로 꼽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다양한 선택. 가령 홍콩섬 완짜이(灣仔)에서 건너편 카우룽(九龍) 반도의 침사추이로 건너가는 교통편을 보자. 100홍콩달러(약 1만2500원·터널통행료 포함)짜리 택시부터 버스(1250원), 페리(200원) 등 각양각색이다. 식료품도 까이시(街市)라는 서민용 재래시장과 그보다 가격이 10배 이상 비싼 최고급 백화점, 중간급 수퍼 가운데 주머니 사정과 취향에 따라 맘껏 고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뺨치는 완벽한 기본생활 보장. 정부 공공병원의 경우, 일주일 동안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아도 퇴원시 200~300홍콩달러만 내면 된다. 중학3년까지 9년 동안 무상 의무교육과 주택 보조금 지원으로 대다수 시민은 의료·집·교육 등 세 가지 걱정은 잊고 지낸다.

리더들의 ‘소신’도 고래 힘줄 수준이다. 상속세 폐지가 빈부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헨리 탕(唐英年) 재정사장(경제 부총리)은 “빈곤 구제책은 교육기회 확대 같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덕분에 요즘 홍콩에는 갈수록 활력이 용솟음친다. 중국으로 주권 회복 후 ‘아시아의 용(龍)머리’ 자리를 상하이(上海)에 금방 뺏길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 도시의 경쟁력 격차는 한층 벌어지고 있다.

‘부자들의 천국(天國) 만들기’와 ‘시장은 이끌고 정부는 밀어준다!’ 아시아 금융위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충격으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던 홍콩이 부활하게 된 양대(兩大) 원동력이다.

송의달 홍콩특파원 edsong@chosun.com
입력 : 2006.06.26 00:20 43'